<웍트>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장면 중 하나는 바로 센트럴파크에서 캐리와 그의 친구들이 산책이나 조깅을 하는 장면이다. 가벼운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뛰거나 빨리 걷기를 하면서 한 주 동안의 스트레스와 연애사를 털어놓는 그녀들의 주말 풍경은 뉴요커들에게는 일상적인 장면이다.
뉴요커, 런더너, 파리지앵들의 걷기 트렌드
얼마 전 뉴욕의 한 매거진에서 걷기에 관한 흥미로운 기사를 보았다. 바로 ‘뉴요커들이 시골에 사는 사촌들보다 더 오래 사는 이유’에 관한 것이었다. 언뜻 생각하면, 도시보다 공기 좋은 시골에 사는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높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바쁘게 사는 뉴욕 사람들의 걷기 습관에 있었다. 역사적으로 교통체증이 심하고, 그런 만큼 대중교통이 발달한 뉴욕에서 사람들은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닌다. 그런데 이때 바쁜 뉴요커들은 느긋하게 걷는 것이 아니라 빠르게 걷는다. 이렇듯 빠르게 걷는 습관이 곧 뉴요커들의 장수 비결인 것이다.
뉴욕 못지않게 매력적인 도시, 런던에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출근시간의 런더너들은 뉴요커만큼이나 빠른 걸음을 재촉한다. 이들은 서너 정거장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걸을 정도로 일상 속에서 걷기를 즐긴다. 우리가 흔히 ‘이 정도 거리라면 걸어가야지’ 하는 것보다 훨씬 먼 거리도 기꺼이 걷는다. 게다가 도심 빌딩들 사이에 하이드파크와 세인트제임스파크 등 오래된 공원들이 있어서, 점심시간에 공원을 산책하거나 뛰며 운동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걷기를 독려하는데, 2012년에는 템스강 주변에 차가 다닐 수 없는 보행자만을 위한 가든브리지를 만들겠다는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런던의 중심가인 소호에서도 차를 거의 볼 수 없다.
런던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걷기 좋은 도시로 꼽히는 파리는 어떨까? 몇 년 전 파리 여행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그곳의 멋진 건물이나 유적지가 아니라 곳곳에서 걷기나 조깅을 하며 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뉴요커와 런더너처럼 파리지앵도 걷기를 사랑한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수많은 유적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센강 주변에서는 연인과 함께 걸으며 대화를 하거나 혼자서 뛰는 파리지앵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특히 파리에는 100년 이상 된 건물이 많은데, 대부분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누구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데 익숙하다.
그 덕분일까? 『프랑스 여자는 날씬하다』라는 책을 보면, 프랑스 여성의 비만율은 불과 2~3%라고 한다. 그 대표적인 이유가 바로 천천히 오랫동안 먹는 식사습관과 일상생활 속에서 꾸준히 걷는 습관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녀들은 걷기를 생활의 일부분으로 여기기 때문에,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줄 때도 유모차를 이용해 일부러 지름길을 두고 먼 길을 돌아서 간다. 또 스스로 생각하기에 하루 동안 충분히 걷지 못했다고 판단되면 계단 오르내리기를 통해 부족한 걸음을 채울 정도로, 삶 속에 걷기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