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 걷기>
나는 걸으면서 명상에 잠길 수 있다. 나의 마음은 나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_루소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의 이 한 마디에서 그의 걷기가 몰입 걷기였음을 알 수 있다. ‘다리와 마음이 함께 작동하는’ 걷기란 복잡한 생각들에서 벗어나 오직 걸음과 호흡에 집중함으로써 몰입에 이른 상태를 설명하는 말이다. 18세기의 프랑스로 돌아가 루소에게 직접 물어볼 수는 없지만, 그가 몰입 걷기를 통해 걷는 자체의 즐거움은 물론, 하나의 목표(주제)에 생각을 고도로 집중시키는 훈련을 함으로써 위대한 학문적 이론과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고 믿는다.
얼마 전,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지인과 오랜만에 통화를 하게 됐다. 마침 제주공항에서 서울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3박 4일 동안 제주 올레길을 걸었다는 그에게 소감을 물었더니 아주 간단한 답이 돌아왔다.
내가 왜 걸었지?
머릿속 한가득 복잡한 생각을 안고 올레길을 향할 때만 해도 그는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문제를 해결할 만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높았다. 걷기 초반에는 좋았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산만한 생각들은 여전히 그의 머리와 마음을 지배했다. 나중에는 일정을 소화하는 데 급급해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결국 3박 4일 동안 올레길 코스를 완주하는 외적 목표는 이뤘지만 내적 성과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걷기와 몰입 걷기의 차이다. 몰입은 그냥 걷는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몰입을 위한 제대로 된 방식의 걷기를 통해서 이뤄진다. 걷기의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걷는 행위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 산만한 정신을 걸음과 일치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신과 행위가 하나가 될 때 걷는 ‘지금 순간’을 온전히 즐기는 몰입 걷기가 완성된다.
1만 시간의 법칙이란 말이 있다. ‘한 분야에서 1만 시간 동안 훈련하면 전문가가 된다’는 뜻으로 작가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아웃라이어》에 소개되어 유명해진 말이다. 끊임없는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매우 흔하게 인용되는데, 여기에서의 노력은 과정 자체보다 결과로서의 성공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1만 시간 법칙’의 실제 연구자인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슨은 2016년 미국의 언론 <비즈니스 인사이더>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론에 등장하는 ‘1만 시간’은 특별한 의미가 아니라 단지 바이올린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거장의 자질을 보이는 학생들이 20살이 될 때까지의 평균 연습량일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1만 시간을 연습해도 누구나 거장이 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훈련의 방식(사려 깊은 훈련, deliberate practice), 즉 어떻게 훈련을 하는가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세기의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히는 나탄 밀슈타인(Nathan Milstein, 1904~1992)은 어릴 적 스승에게 곡 하나를 제대로 연주하기 위해 필요한 연습시간을 물었다. 그러자 스승은 “아무 생각 없이 연습한다면 하루 종일도 부족하다. 하지만 온 신경을 집중한다면 2~3시간이라도 가능하다”는 답을 주었다. 몰입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위대한 철학자와 예술가, 실리콘밸리의 창조적 리더들의 성공 습관 중 하나로 언급되는 걷기 역시 그냥 걷기가 아닌 몰입 걷기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성공의 진짜 비결은 1만 시간이 아닌 바로 ‘몰입’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