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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May 12. 2017

05. 결정적 시기를 준비하라.

<리더의 비전>

수문제 양견(楊堅)



개황지치의 칭송을 받는 수문제 양견 

수문제 양견(楊堅)은 사가들로부터 ‘개황지치(開皇之治)’를 이뤘다는 칭송을 받는다. 그는 위진남북조시대의 말기 서위 문제 대통7년(541)에 태어났다. 북중국을 통일한 북위가 동위와 서위로 갈리고, 남조의 양나라는 양무제의 실정으로 인해 크게 흔들리던 때였다. 난세의 한복판에 태어난 셈이다. 그는 4백 년에 걸친 분열시대인 ‘위진남북조시대’를 종식시키고 천하를 통일했다. 그의 천하통일은 ‘관롱집단’을 적극 활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관롱집단’은 역사학자 진인각이 주장한 개념이다. 북위 말, 무천진을 중심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무천진 관롱집단’으로 불리기도 한다. 관롱집단은 서위(西魏) 이래 중국 북주(北周)에서 수, 당 때까지 관중지방과 농서지방 출신을 중심으로 배출되었던 지배층을 뜻한다. 북주, 수, 당의 황실 및 공신들은 모두 관롱집단의 핵심, 8주국의 후예들이었다. 8주국은 서위의 ‘8대주국’에서부터 시작된다. ‘주국’은 장군의 호칭이다. 우문태(宇文泰), 원흔, 이호, 이필, 조귀, 어근, 독고신, 후막진숭이다. 8주국 아래 12대장군이 있어 통상 ‘8주국 12대장군’으로 불렸다.

우문태는 북주를 일으켰고 당나라를 창업한 이연은 이호의 손자였다. 독고신의 장녀는 북주 명제의 황후, 넷째는 당고조의 어머니, 일곱째는 수문제의 황후였다. 수문제의 아버지인 양충은 12대장군이었다. 이들은 서로 폐쇄적인 통혼을 하며 하나의 거대한 정치세력을 형성했다. 서위의 무인귀족집단이었던 8주국 중 가장 세력이 강한 것은 우두머리격이었던 우문태였다.

우문태는 선비족이 세운 북조 최초의 왕조, 북위의 마지막 황제 효무제 원수를 황제로 올려 서위를 세웠다. 우문태의 정적 고환은 동위를 세웠다. 북위가 동위와 서위로 갈라진 것이다. 서위의 효무제는 25세 되던 해 우문태에 의해 독살되었다. 이후 문제, 폐제, 공제를 차례로 세웠으나 그들은 재위 중에는 허수아비 황제였고 그마저도 죽거나 쫓겨나거나 스스로 물러났다. 그 중심에는 우문태가 있었다. 서위는 30여 년 유지됐지만 사실상의 황제는 우문태였다.


북주·수·당 황실 혈연표


그러나 556년 우문태가 병사했다. 다음 해, 그의 조카인 우문호가 우문각을 옹립해 새 왕조를 세웠다. 이때 북주 성립에 공을 세운 공신 중 하나가 양견의 아버지인 양충이었다. 당시 17세였던 양견은 아버지를 도와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효민제 우문각은 폐위되었고 우문태의 맏아들 우문육이 보위에 올랐다. 명제(明帝)였다. 연호를 무성(武成)이라 했다.

이 와중에 북주는 북제를 멸망시켜 중국 북부를 통일했다. 이때 양견은 젊은 나이로 전쟁에 나가 큰 공을 세웠다. 북주 2대 황제 명제는 젊은 양견을 견제하며 은밀히 양견의 관상을 보게 했다. 관상가의 “장군감이지 군주의 관상은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안심했다. 그러나 명제는 우문호에게 독살당하여 560년에 2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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