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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n 22. 2016

05. 60년이 서러운 탈북 용사님(마지막 회)

<죽은 자들의 증언>

어느 날 포로로 끌려가 그곳에 남겨져 무려 60여 년을 억류되었던 용사님이 만주로 탈출하여 우리나라로 돌아와 보금자리를 만든 후 전우를 찾으러 저희를 찾아왔습니다. 그날은 토요일로 공휴일이었지만 저는 출근하여 전사 책과 과거 발굴 자료와 제보 목록을 읽어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부대를 찾아온 용사님을 만날 수 있었고 기막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온갖 상상력이 발동되겠지만 솔직히 어떻게 살아서 그곳에서 장가도 들고 북한군에게 인정받고 살았냐고 물으면 입장이 난처하다고 합니다. 상식선에서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한 번도 고향(지금의 일산지역)을 잊은 적 없고 부모 형제와 사랑했던 여인을 잊은 적 없다고 합니다. 그래도 목숨은 길어서 아프지 않고 이렇게 살아서 다시 오게 될 줄이야 본인조차 꿈에도 그려보지 못했답니다. 하지만 우연히 종교 단체의 도움을 받아 탈출할 수 있었고, 북에 두고 온 가족이 아쉽지만 60년간 그려 본 고향으로 왔다고 합니다. 북쪽 가족에게 너무나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함께한 중년 여인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 줍니다. 처제라고 합니다.
     
국가에서 준 정착금으로 일산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드디어 사랑했던 여인을 찾기 시작했답니다. 물론 먼저 가족을 찾았지만 고향에는 아무도 없었고 먼 친척조차 쉽게 확인할 수 없었답니다. 현수막을 5만원 들여 몇 개 만들어 곳곳에 매달았습니다. 전쟁 전 앞집에 살던 여인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그런데 운명이랄까요? 이 현수막을 어느 어린 아이(나중에 만나게 되는 할머니의 손녀 딸)가 보았는데 자기 할머니 이름과 같은 것을 알아본 것입니다. 집으로 달려가 할머니께 이 사실을 말하니 할머니도 궁금해 그곳으로 가서 확인해 본 것입니다. ‘설마 내가 아니겠지.’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전화라도 해 봐야겠다고 다이얼을 돌렸습니다.
     
사실 이 할머니는 오래 전 할아버지와 사별하고 자식과 합께 살고 있었습니다. “아, 누구신데 이 이름의 여자를 찾나요? 내가 같은 이름인데…….” “아, 그러세요. 그럼 혹시 ○○○ 아세요? 제가 그 사람인데 북에서 살아 돌아왔수다.” 두 분은 황혼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죽었다는 첫사랑이 살아 돌아오는, 인생에 이런 일도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소설 같은 이야기가 탄생한 겁니다.

  
그 할아버지께서 현충원에 오신 목적은 함께 포로가 되었다가 포로 교환 때 헤어졌던 전우를 찾으러 온 것입니다. 살았는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여 알아보러 오셨던 것입니다. “이름은? 소속은? 혹시 군번은?” 하지만 용사님이 찾는 그 전우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유해가 돌아오지 못한 전사자 위패 명단에 비슷한 이름이 있었으나 자료가 미비하여 확인이 불가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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