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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n 21. 2017

01. 무언가 다른 아이

<행복한 서번트, 캘빈 이야기>

추수감사절에 태어난 캘빈은 터키보이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갓 태어난 아이가 많이 울지도 않고 눈을 뜨면 병실을 두리번거리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밤에 울거나 보채지 않아서 병실에 있던 다른 부모들이 부러워할 정도였다. 신생아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아이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는데 캘빈은 너무나 규칙적으로 잠을 자는 수월한 아이였다.


집중력과 감성이 강한 아이

캘빈이 30개월이 되었을 무렵 영화 <타이타닉>이 아카데미 상을 휩쓸었다. 평소 영화를 좋아하던 우리 부부도 비디오를 사서 보았는데 캘빈은 소파에 앉아 꼼짝 않고 영화에만 집중했다. 주인공 디카프리오가 물에 가라앉는 장면에서는 캘빈이 울어서 너무 놀랐다. 3살이 채 되지 않은 아이가 영화 내용을 이해하고 운 것인지 의아했지만, 우리는 감성이 풍부한 아이로만 여겼다.

그 뒤로도 캘빈은 <타이타닉>만 보려고 했는데 계속 보여주는 것이 좋지 않을 것 같아 캘빈 나이에 맞는 비디오를 보여주려고 했다. 그렇지만 캘빈은 이 영화에만 집착했다. 또 영화를 볼 때면 본인이 주인공이 된 것처럼 감정을 이입하는 바람에 가급적 위험한 영화는 피하려고 노력했다. 무서운 영화나 소리가 큰 영화는 손을 귀에 갖다 대면서 거부했기 때문에 일부러 보여줄 필요도 없었다. 말이 늦어서 교육 프로그램들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캘빈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모든 아이들이 좋아하는 <세서미 스트리트>도 보지 않았고, 화면이 빨리 돌아가는 만화 영화만 보려고 했다.

아이의 행동이 점점 난폭해지면서 우리는 비디오 보는 시간을 줄이고 그 시간에 장난감이나 다른 것으로 놀이를 하도록 유도해보았다. 그러나 캘빈은 장난감을 주어도 가지고 놀 줄을 몰랐다. 집에 있는 장난감은 무조건 망가뜨렸고 유아용 책상과 의자는 항상 엎어놓았다. 집에 있는 가구들도 모두 엎어놓고 싶어 해서 웬만한 가구들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야 했다.

그림책을 주면 읽는 것이 아니라 모든 책을 일렬로 세워놓았다. 별 생각 없이 책을 치우려는 순간 캘빈이 달려들더니 내 팔을 물고 울면서 난폭한 행동을 했다. 하루하루가 벅차게 느껴지던 즈음 유치원에 들어가게 되어 마음이 놓였다. 유치원에 다니면서 또래 아이들과 지내면 좀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한 것이다. 내 아들에 대한 상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유치원만 보내면 사회성이 늘고 과격한 행동들이 수정되리라고 믿고 싶었던 것 같다.


자폐 진단을 받다.

캘빈은 2살부터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이곳의 보조 교사 앤(Anne)이 아니었으면 캘빈의 자폐증을 발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선생님은 캘빈의 행동이 다른 친구들과 다르고 자폐아인 자기 아들의 어릴 때와 아주 비슷하다며 자폐 진단을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그때가 캘빈이 32개월 무렵이었다.

아이가 아직 어렸기 때문에 자폐증 검사에도 많은 시간이 요구되었다. 동네에도 자폐 판정팀이 있었지만 우리도 개인적으로 보스턴 소아병원에 검사를 의뢰했다. 아동 심리학 의사, 소아과 의사, 언어치료사들이 한 팀을 이루어서 몇 주간의 검사를 시작했고 결국 자폐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검사 결과가 나오던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닐 수도 있겠지’라는 기대를 했지만 막상 결과를 듣고 나니 지금껏 이해하지 못했던 아이의 행동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가르쳤어야 하는 아이를 우리 기준에 맞추어서 교육했던 지난 시간 동안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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