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Jul 14. 2017

07. 돈 놓고 돈 먹기?

<행복한 살림살이 경제학>

이자와 화폐와 달러

빚이란 무엇인가? 갚아야 할 돈이다. ‘원금’과 ‘이자’가 구성요소다. 이슬람 사회처럼 원금만 갚으라면 좀 낫다. 갚을 마음만 있으면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이자는 다르다. 특히 복리 이자가 문제다. 이자에 이자가 붙으니, 하루하루가 무섭다. 시간이 흐르는 것이 두렵다. 그래서 빚에 허덕이던 사람은 행방불명자가 되어 사라지거나 심지어 자살을 통해 시간의 흐름(생명)을 끊어버린다. 요즘에는 그런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개인파산을 신청하고 일정한 절차를 밟거나, 장발장은행 같은 곳을 통해 빚을 정리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는가? 집값이 오를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급속히. 남편의 월급보다 부인의 부동산 투자가 훨씬 많은 소득을 낳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부동산시장도 매력이 떨어졌다. 한편에서는 고용불안과 소득불안 때문에 ‘비싼’ 집을 살 사람이 예전처럼 많지 않다. ‘묻지 마 투자(투기)’가 급감했다. 다른 편에서는 아파트 같은 주거 양식의 매력이 떨어졌다. 새집증후군, 시멘트독, 환경호르몬, 층간 소음, 개인의 고립, 자연과의 분리 등이 문제다.

사람들이 빚을 내 집을 사는 것은, 금융업과 건설업이 시민사회와 유기적으로 맞물려 잘 돌아갈 때 이야기였다. 그러나 소득이 줄고 돈이 돌지 않으니 빚을 내 집 사기가 겁나는 세상이 왔다. 이미 거액의 빚을 진 사람들은 빚 갚기가 버겁다. 이자와 원금을 갚지 못하면 담보로 잡힌 집이 압류당해 경매로 넘어간다. 이것을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는 ‘박탈에 의한 축적’이라고 했다.

여기서는 ‘이자(利子, interest)’가 핵심 문제임이 분명하다. 이른바 ‘돈 놓고 돈 먹기’의 시작이 바로 고리대금업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빈부 격차가 생기면서 돈 있는 자가 돈 없는 자에게 돈을 빌려주고 높은 이자를 받기 시작했다. 이슬람교의 전통에서는 이런 이자놀이를 죄악시한다. 반면에 유대인들은 돈놀이의 귀재로 알려져 있다. 『제1권력』이나 『화폐전쟁』 등에 나오는 세계 금융자본의 큰손들은 대체로 유대인 금융자본이다. 나치 세력이 유대인을 대량 학살한 배경에, 금융을 멋대로 하면서도 잘 협조하지 않는 유대인에 대한 집단적 증오감이 자리 잡고 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유대인’에 지나치게 방점을 찍을 필요는 없다. 자본에게는 국적도, 민족도, 인종도 단지 활용의 대상일 뿐 본질적 중요성을 띠지는 못한다. 노동에는 국적이 중요하게 작용하나 자본에는 국적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 비대칭성’이야말로 자본에는 자유를, 노동에는 억압을 가한다.

한국 경제의 발전 과정에서 농민 위주의 농업경제가 파탄에 이른 지 오래인데, 이제는 노동자 위주의 산업경제 또한 거의 파탄에 이르렀다. 사람들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 열심히 일해도 별 보람을 찾지 못하는 시점이 왔다. 이제 땅 투기, 돈 투기만이 대박을 터뜨리는 수단이다. 오로지 약삭빠르고 정보력 강한 자, 권력 있는 자들만이 큰돈을 거머쥐는 세상이 왔다.

국토부나 도시계획과 공무원들이 가진 고급 정보는 그 연줄망을 통해 투기꾼이나 약삭빠른 자들에게 전달된다. 그러니 정보력과 투자력이 있는 자들만 돈을 번다. 돈 놓고 돈 먹기 게임이 한동안 이어지다 일시에 거품이 터지면 ‘IMF 구제금융 사태’ 같은 일이 벌어진다. 거품은 반드시 터지게 되어 있다. 또 비윤리적인 것은 저항을 받게 되어 있다. 다시금 만물의 ‘근본’을 되짚는 ‘혁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00. <2000년 이후 한국의 신흥 부자들> 연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