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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ug 28. 2017

05. 손쉽게 쓰다 버려지는 비인간 동물 (마지막 회)

<그건 혐오예요>

                                                                

그동안 황윤은 동물원을 동물의 시각에서 그린 다큐멘터리 <작별>(2001)을 시작으로, 야생동물들의 로드 킬(road kill)을 다룬 <어느 날 그 길에서>(2006) 그리고 그녀가 자신과 가족을 통해서 현재 우리 식탁을 지배하는 육식의 문제와, 인간과 축산동물의 관계를 성찰하는 <잡식가족의 딜레마>(2015)까지 ‘비인간 동물’에 계속 주목해 왔다. 이유가 뭘까.

선거 운동 할 때 퍼포먼스를 했어요. 사방 1미터짜리 투명한 전시장을 설치해 놓고 그 속에 제가 들어가서 전시물이 되었어요. ‘인간을 팝니다’ ‘황윤을 팝니다’ 이런 제목을 써 붙이고요. 대형 마트의 펫샵, 동물 판매점, 동물원, 동물체험관, 공장식 축산, 동물실험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동물들을 감금하고 이용하는 현실을 ‘인간 전시’로 바꿔 재현해 본 거죠. 동물들 입장을 최대한 재현해 보고 싶어서 일부러 시계, 핸드폰도 놓고 들어갔고, 물도 안 먹고 다섯 시간 동안 감금 상태로 있었어요.

쇼윈도에 전시된 귀여운 강아지들은 ‘퍼피밀(Puppy mill)’이라고도 불리는 ‘강아지 공장’에서 와요. 아주 더럽고 좁은 우리에 갇힌 어미 개들이 인공수정을 통해 강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고, 출산율이 떨어지거나 병들면 보신탕이나 개소주 집에 팔려 간다는 사실을 대부분 시민은 물론 ‘애견인’들도 잘 모르죠. 새끼들은 어릴수록 상품가치가 높기 때문에 어미젖도 며칠 못 먹고 바로 펫샵이나 대형 마트로 팔려 오죠. 사람들은 인형을 장바구니에 담듯 손쉽게 생명을 사고 키우다 병들거나 늙어 귀찮아지면 버리죠.


동물원은 ‘꿈과 낭만의 동산’으로 포장되지만, 그 속에서 평생 동안 갇혀 살아야 하는 동물들 입장에선 ‘종신형 감옥’일 거예요. 코끼리, 호랑이, 북극곰, 이런 대형 동물들은 야생에서 수백 제곱킬로미터의 넓은 생활 반경을 영역으로 삼고 살아가는데 동물원 전시장은 야생의 백만분의 일도 안 되는 면적에 단조롭기 짝이 없어서, 갇힌 동물들에겐 큰 고통이죠. 그뿐만 아니라 축산동물인 돼지와 닭은 햇빛도 바람도 통하지 않는 공장식 축산에서 고밀도로 사육돼요.

인간의 욕망 때문에 다양한 장소에 갇힌 동물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철창을 이빨로 물어뜯거나, 머리를 반복적으로 흔드는 정신병적 행동을 해요. ‘정형행동’이라는 건데요. 동물들은 그런 상태로 평생이라는 시간을 살아가죠. 동물들이 감내해야 하는 건, 답답함과 지루함뿐 아니라 강제 임신, 반복 출산, 새끼와의 분리, 부모・형제와의 분리, 꼬리와 이빨 자르기 등 여러 가지 육체적, 정신적 고통도 겪어요. 이 정형행동을 제가 퍼포먼스를 할 때 해 봤어요. 전시장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머리를 흔들고, 왔다 갔다 하
고, 전시장 벽을 손톱으로 마구 긁어 대고…. 퍼포먼스 끝낸 후 사람들이 고생했다고 위로해 주는데 저는 생각보다 별로 안 힘들었어요. 고통받는 동물들이 제 카메라와 제 가슴 속에서 365일 울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고통에 비하면 다섯 시간 갇혀 퍼포먼스를 하는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제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분들이 종종 있어요. ‘언제부터 그렇게 동물을 좋아했나요?’라고요. 또 어떤 분은 ‘난 동물은 관심 없어’라고 말해요. 이때마다 참 난감해지곤 해요. 예컨대 노동자를 주제로 꾸준히 영화를 만드는 감독에게 사람들은 ‘언제부터 노동자를 그렇게 좋아했나요?’라고 묻지는 않잖아요. ‘난 노동 문제에는 관심 없어요’라고 말하지도 않죠. 그런데 왜 유독 비인간 동물에 대해서만큼은 호불호, 취향의 문제로 생각할까요? 제가 비인간 동물들 문제에 천착하는 이유는 그들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모든 약자 중의 약자이기 때문이에요.

비인간 동물들은 단지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백만 년 동안 대대손손 살아온 삶의 터전을 어느 날 갑자기 빼앗기고, 인간의 차바퀴에 깔려 먼지처럼 사라지고, 멸종으로 몰리고, 오락과 산업의 노예가 되어 공연장에서, 전시장에서, 실험실에서, 공장식 축산에서, 극단적인 고통과 끝이 보이지 않는 착취를 당하고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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