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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Sep 04. 2017

06. 위안부 문제의 진실

<우리는 가해자입니다>

의사에 반하여 강제되었다.

《아사히신문》이 “위안부를 강제 연행했다”는 요시다 세이지(吉田清治)의 증언을 ‘허위’라며 취소한 것(2014년 8월)을 계기로, 위안부 문제의 진상과 본질을 뒤집고 숨기려는 발언과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아베 신조 총리도 국회 답변(2015년 10월 3일)에서 “일본이 국가적으로 성 노예를 삼았다는 이유 없는 중상”이라 공언하며 국제적으로 강한 반발을 샀습니다. 그러므로 문제의 진상과 본질은 무엇인지 피해자의 증언 등을 통해 다시 한 번 검증해보겠습니다.


요시다 증언이 허위라 해도 흔들리지 않는 고노 담화

Q: ‘요시다 증언’ 취소는 ‘고노 담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A: 《아사히신문》의 요시다 증언 보도 취소를 계기로 일부 우파 언론과 정치 세력이 공격을 퍼붓고 있는데, 1993년 당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이 발표한 정부 견해가 ‘고노 담화’입니다. 이 담화는 정부 관계자의 조사와 위안부 피해자 16명의 증언을 기초로 일본군이 관여한 사실과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를 표명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위안부를 강제 연행했다”는 요시다의 증언이 설령 허위라 하더라도, 고노 담화의 정당성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위안소에 들어가는 ‘출입자의 마음가짐’이 병참사령관 명의로 게시되어 있다.


고노 담화를 작성한 당사자였던 이시하라 노부오(石原信雄) 전 관방부장관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요시다 증언이) 수상쩍다는 식의 논의는 했습니다. … 요시다 증언을 기초로 해서 한국 측과 논의한 것은 제가 아닙니다. … 거듭 말씀드리지만, 고노 담화 작성 과정에서 요시다 증언을 직접적인 근거로 강제성을 인정한 게 아닙니다.” (2015년 9월 11일 방영된 TV아사히 〈보도 스테이션〉)

더욱이 아베 내각이 10월 24일 국무회의를 통해 채택한 ‘정부 답변서’에서 요시다 증언은 “헤이세이 5년(1993) 8월 4일 내각 관방장관 담화(고노 담화)”의 “문언에 반영되어 있지 않다”고 확인된 바 있습니다. 다시 말해, 고노 담화는 요시다 증언이 허위라 해도 아무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이를 이유로 들어 비난하는 것은 통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강제 연행 여부와 상관없이 실태는 성 노예였다.

Q: 강제 연행의 근거가 있습니까? 그것이 위안부 문제의 핵심 아닙니까?

A: 한반도 등의 여성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가 위안부가 되었을까요? 여기에 다양한 경로가 있었다는 것은 위안부 증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업자의 감언이설이나 거짓말에 속은 경우가 있는가 하면, 병사들에 의한 틀림없는 강제 연행도 있었지요. 고노 담화에서도 다음과 같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모집에 관해서는 … 감언, 강압에 의한 것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된 수많은 사례가 있고, 더욱이 헌병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한 일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병사들에 의한 폭력적인 강제 연행 여부가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데려갔다고 해도 일본군이 설치, 운영, 관리하는 일본군 위안소에 일단 들어가면, 감금·구속되어 강제 사역에 처해졌습니다. 강제적으로 병사의 성적 대상이 되는 성 노예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문제의 본질입니다. 피해 여성의 증언도 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노 담화도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구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위안소의 생활은 강제적인 상황하에서의 고통스러운 것이었다”고 확인하고 있습니다.

강제 연행 여부에 초점을 맞추어 ‘성 노예’라는 비판이 ‘이유 없는 중상’이라는 아베 총리 등의 논의는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없습니다.

부시(George W. Bush) 정권의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국장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은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강제적인지 여부는 관계없다. 일본 말고는 누구도 그 점에 관심이 없다. 문제는 위안부들이 비참한 일을 당했다는 것인데, 나카타초(永田町)의 정치가들은 이 기본적인 사실을 잊고 있다.”(《아사히신문》, 2007년 3월 10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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