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위한 칼 비테 교육법>
칼 비테는 아이에게 감정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간적인 감정이 없거나 부족한 아이는 제아무리 공부를 잘하거나 두뇌가 뛰어나도 기계와 같은 인생을 살게 되므로 아이가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면 무엇보다 풍부한 감정을 가진 아이로 길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감정은 슬픔, 우울, 분노, 희망, 용기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감정은 따로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느낍니다. 배가 고프면 기분이 좋지 않고 부모님께 꾸중을 들으면 슬픕니다. 칼 비테가 감정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던 것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칼 비테가 가장 중요시했던 감정 중에 하나는 바로 평정심입니다. 유혹 앞에서, 욕심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바로 평정심이겠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돈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더 갖고 싶어 하죠. 때로는 범죄까지 저지르게 됩니다. 칼 비테는 책으로 평정심을 가르쳐주고 싶어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솝우화》의 예를 들었습니다.
나무꾼이 우물에 도끼를 빠뜨립니다. 우물에서 누군가 나타나죠. 금도끼를 내밀고 “이것이 네 도끼냐?”라고 묻습니다. 나무꾼은 아니라고 하죠. 그는 은도끼를 들고 다시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네 도끼냐?” 그러자 나무꾼이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제 도끼는 낡아빠진 쇠도끼입니다.”
칼 비테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아들에게 묻습니다.
“이 이야기는 무엇을 의미할까?”
“정직해야 한다는 거죠.”
“그렇지 않아. 이것은 평정심에 대한 이야기란다.”
나무꾼이 금도끼를 가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을까요? 나무꾼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는 부자가 되어 힘들게 나무를 하지 않아도 되었겠죠.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의 삶은 균형이 깨지게 됩니다. 나무꾼은 금도끼와 은도끼의 가치를 몰라본 것이 아니라 평온한 일상의 소중함을 알았던 것이죠. 칼 비테는 이 이야기를 통해 어떠한 유혹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의 소중함을 알려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감정을 먹고 자라는 아이들
사실 감정에는 굉장한 힘이 있습니다. 누군가 분노라는 감정에 사로잡혔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는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결국 그는 감정 때문에 평생 감옥에서 보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기쁨이라는 감정에 지나치게 충실하면 조울증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기쁠 때는 주체되지 않을 만큼 기쁘고 슬플 때는 도저히 위로가 되지 않을 만큼 깊은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이런 감정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감정에 휘둘려 스스로 망가지게 됩니다.
칼 비테는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제대로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감정에 대한 교육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국어, 영어, 수학보다 중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런데 칼 비테가 절대 아이에게 가르치지 말라고 했던 감정이 있습니다. 바로 공포와 두려움입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나약한 존재이기에 공포를 너무 많이 심어주면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칼 비테는 자신의 동료 목사를 굉장히 비난했습니다. 그 목사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교인에게 지옥에 대한 설교를 계속했습니다. 결국 그 교인은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정신병에 걸렸습니다.
누군가 두려움에 빠져 있을 때는 벌보다는 사랑의 이야기를 하고 나서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덧붙이는 식으로 적절하게 균형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무조건 지옥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은 곤란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런 공포를 자주 심어주곤 합니다. 입버릇처럼 “공부를 못하면 나중에 커서 큰일 난다.”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이런 이야기는 아이에게 불필요한 두려움과 공포만 심어줄 뿐입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아이는 절대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공포에 발목을 잡히면 바보가 되어버립니다. 독재자나 사이비 종교 교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감정이 바로 공포심입니다. 지속적으로 공포와 두려움을 줌으로써 옴짝달싹 못 하게 하는 것이죠. 공포심에 지배당한 사람들은 절대 그 독재자나 교주를 떠나지 못합니다. 그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아이에게 공포와 두려움만 가득 채워준다면 그 아이는 노예로 자라날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감정 교육은 누구에게서 비롯될까요? 1차적으로는 부모에게서 배웁니다. 엄마 아빠가 매 순간 감정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극도의 분노에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아이에게 그대로 전해집니다. 화날 때마다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화가 나면 술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는 술에 취하면 자신들이 혐오했던 아버지처럼 행패를 부리죠. 보고 배운 것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부모부터 감정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지속적으로 아이에게 공부나 독서보다 중요한 것은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