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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Oct 17. 2017

07. 전쟁 시 ‘국가’와 ‘국민’ 어느 쪽이 더 중요

<지적성숙학교>



국가를 사랑한다는 것: 애국심인가, 국민의 안전인가?

: 야마자키 마사히로(전쟁·분쟁사 연구가)


사람들에게 국가의 의미는?

대부분은 사람들은 사회적·정치적 이야기에서 ‘국가’라는 말이 나오면 뭔가 ‘큰 상대’가 눈앞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이것은 국가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라는 설명을 들으면 왠지 모르게 ‘그런가’ 하고 한 수 접고 들어간다.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구가’에 속해 있는 이상, 그것이 ‘국가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면 잠자코 따르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과거의 역사를 공부해보면, ‘국가’라는 이름 아래 국민이 참기 어려운 봉변을 당하거나 ‘국가를 위해’라는 이유로 죽음으로 내몰렸던 적이 수없이 많다. ‘국가’라는 말이나 개념은 잘못 사용하면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위험한 성질을 갖는다.


전쟁 시 ‘국가’와 ‘국민’ 어느 쪽이 더 중요할까?

예를 들어 어느 국가가 다른 국가와 전쟁을 하게 되었을 때, 지도자가 “국가를 지키기 위해 군인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도 전쟁에 참가하여 봉사해야 한다”고 명령하는 일은 동서고금 어느 나라에서나 흔히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근현대의 전쟁에서는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자국의 군인이나 시민 사망자가 계속 늘어나면 “이제 패배를 인정하고 어서 전쟁을 끝내자”라는 분위기가 퍼지게 되고, 이때 지도자는 분한 마음을 누르고 상대국의 정부에 “항복하겠습니다”라고 제의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누가 애국자이고, 매국노인가?

전쟁 중에 ‘국가를 위해서’라고 믿고 전장에서 싸우거나 공장에서 무기를 만들거나 하는 행위는 그 장면만 보면 지극히 ‘애국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 뒤 그것은 “잘못된 전쟁이었다”, “해서는 안 될 전쟁이었다”라는 평가가 국민 사이에서 내려지면 이번에는 전쟁에 대한 협력은 “국가를 위한 행위가 아니었다”로 돌변한다.

‘의문을 품지 않고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 애국’이라는 국민은 사고방식은 정치지도자에게는 무척 편리한 일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의 정치가들은 그러한 생각을 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해왔다. 자신(정치지도자)이 하는 말에 따라는 사람은 ‘애국자’이고, 불평이나 비판을 하는 사람은 ‘매국노’라는 식으로 국민이 스스로 편을 나누면, 굳이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아도 ‘애국자’가 멋대로 ‘매국노’를 공격해서 눌러버리기 때문이다.


자국의 흑역사와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자국의 ‘자랑하고 싶은 역사’만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실패한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것의 문제점은 그밖에도 많다. ‘과거 자국이 어떤 실패를 했고 그 원인은 무엇이었나’, ‘어떻게 하면 그것을 막을 수 있었을까’에 대한 고민이 없거나 실패를 겸허히 반성하는 마음이 없으면, 옛날과 같은 사회 상황이 발생했을 때 또다시 잘못된 길을 선택할 수 있다. 

과거의 실패를 잊으면 동일한 실패를 반복하게 된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집단이든 다 마찬가지다. 그런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역사를 배운다.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 필요한 ‘애국심’이란 무엇인가?

나는 ‘애국자’이고 내가 말하는 것을 거역하는 너희는 ‘애국자’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내세워 일방적으로 ‘애국자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단정하는 사람이 최근 늘고 있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당신의 ‘애국심’은 패전 전의 낡은 버전인가? 전후 민주주의의 가치관에 맞는 새로운 버전의 ‘애국심’인가?” 하고 물어보자. 그리고 그 새로운 버전의 ‘애국심’이란 어떤 것인지,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 같이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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