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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Oct 31. 2017

05. 다른 생각도 모두 필요하다.

<1인자의 인문학 한국편>



인조(우유부단한 1인자) vs 최명길(현실적인 2인자)

척화파가 그토록 기대하는 명에서는 아무 소식도 없었다. 각지에서 올라온 근왕병도 청군에 패하거나 저지되어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청군은 사신을 통해 거듭 항복을 요구하는 서신을 보냈다. 산성에서 답장여부를 놓고 다투는 사이 함께 따라온 백성들이 수없이 죽어나갔다. 도주하는 군사들도 점점 늘어났다. 상황은 급박하게 악화됐다. 인조는 덮을 이불이 없어 동상에 걸릴 지경이었다. 장병 중에서도 동사하는 자가 속출했다. 더는 지체할 겨를이 없었다. 장령들이 모두 주화파를 지지하자 인조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항복문서를 기록하도록 하시오.”

영화 <남한산성> 스틸컷


최명길이 홍서봉, 장유와 함께 초안을 작성했다. 그러자 아무 대책도 없는 김상헌이 항복문서 작성을 저지하고 나섰다. 문서를 열람한 인조가 최명길에게 옳지 못한 표현이 있는지를 감정하라고 명령했다. 마침내 최명길이 국서를 가지고 관아로 돌아가 수정하자 김상헌이 이를 보고는 찢으며 대성통곡했다. 분노에 찬 그가 최명길을 힐책했다.
“어찌 오랑캐에게 ‘신’을 칭할 수 있단 말이오.”

최명길이 대꾸했다.
“대감은 의사(義士)임에 틀림없소. 찢는 사람이 없어도 안 되고, 붙이는 사람이 없어서도 안 되오. 나는 종사를 보존하기 위해서 다시 붙여야만 되겠소.”

그는 자신이 쓴 항서를 찢는 김상헌을 두둔하며 결코 독단에 빠지지 않았다. 다음날 이조참판 정온이 상소를 올려 최명길을 매국노라 비난하며 엄하게 다스릴 것을 요구했다.

이때 봉림대군 일행이 머무는 강화성이 함락되었으나 인조 일행은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인조실록』에 따르면, 당시 청태종의 동생인 예친왕은 선발대를 여러 척의 배에 태워 방비가 허술한 곳으로 침투시켰다고 한다. 청군이 홍이포를 발사하자 조선군이 혼란에 휩싸였다. 이 틈에 청군이 일제히 상륙했고 조선의 장수들이 사방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성을 포위한 예친왕이 사람을 보내 항복을 요구했다.
“성을 함락시키기는 쉽지만 진공하지 않는 것은 황제의 명령 때문이다.
황제가 이미 강화를 허락하였으니 급히 관원을 보내 이를 듣도록 하라.”

이로써 봉림대군을 비롯한 조선의 군신들이 모두 뭍으로 나왔다. 김상헌의 친형인 전 우의정 김상용은 성의 남문 누각 위로 올라가 화약을 장치하고 불 속에 뛰어들었다. 그의 손자를 포함한 여러 사람이 함께 불길에 뛰어들어 자결했다. 수많은 유생과 부녀들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럼에도 강화도 함락 사실을 모르고 있던 김상헌은 척화론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대세는 이미 기울어졌다. 대신들이 주화론에 동조하자 인조가 말했다.
“세자가 자진해 나가려고 하니 오늘 사람을 보내 이를 전하도록 하라.”

최명길이 홍서봉과 함께 청군 진영으로 가 세자가 나온다는 뜻을 알리자 용골대가 이를 거부했다. 그는 강화도 함락 사실을 전하면서 인조가 직접 나오지 않는 한 강화를 들어줄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나흘 전에 이미 강화도가 함락되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던 최명길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몹시 놀랐다. 소식을 들은 인조가 마침내 출성할 준비를 서둘렀다. 김상헌과 함께 척화론을 주장했던 이조참판 정온이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을 시도했으나 목숨은 건졌다.

밖에는 근왕의 군사 끊겼고
안에는 매국흉이 많다네
늙은 신하 무엇을 일삼으랴
허리에 서릿발 칼을 찼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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