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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02. 2017

04. 빨간 수첩

<꼬마 철학자>



오래된 미사경본을 보면 양 볼에 깊은 주름이 팬 성모 마리아를 그려놓은 소박한 채색 삽화가 나와있는데, 화가는 그녀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 성스러운 상처를 거기다 그려놓았다. 그런데 맹세컨대, 나는 큰형을 땅속에 묻고 리옹으로 돌아온 어머니의 야윈 얼굴에서 바로 그 주름을, 그 눈물의 주름을 보았다.

그날 이후, 가엾은 어머니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완전히 사라졌다. 어머니는 언제나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고, 얼굴은 늘 비탄에 잠겨 있었다. 상(喪)을 당한 슬픔이 어머니의 가슴속에도, 어머니의 옷 속에도 영원히 자리 잡았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에세트 집안의 형편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분위기가 더 침울하고 비통해졌다. 생니지에 성당의 신부님이 큰형의 영혼이 영면(永眠)할 수 있도록 미사를 올렸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낡은 검은색 윗도리를 잘라서 자크 형과 내 상복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우울한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큰형이 죽고 얼마가 지난 어느 날 저녁이었다. 막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자크 형이 방문을 단단히 잠그고 문틈까지도 세심히 막은 뒤 엄숙하고 비밀스런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가오는 바람에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큰형의 장례식을 치르고 남프랑스에서 돌아온 뒤 자크 형의 행동에 이상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말을 해야만 하겠다. 우선, 웬만한 사람들은 믿지 않으려고 하겠지만, 자크 형은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아니, 거의 울지 않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나 열심히 제본을 하던 모습도 차츰 사라졌다. 가끔 불가에 놓여 있는 풀단지가 눈에 띄긴 했지만 전처럼 열의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제 판지로 만든 손가방 하나를 얻으려면 무릎을 꿇고 통사정을 해야 될 판이었다.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어머니가 모자 상자를 하나 만들어달라고 부탁한 지가 여드레가 지났지만 전혀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아무 눈치도 채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자크 형에게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가게에서 혼자 중얼거리며 이상한 몸짓을 하고 있는 자크 형을 본 적도 여러 차례였다. 형은 또한 밤중에도 자지 않고 뭐라고 중얼거리다 갑자기 침대에서 퉁겨지듯 벌떡 일어나더니 방안을 성큼성큼 걸어 다니기도 했다……. 그건 정상인의 자연스러운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무서워지곤 했다. 자크 형이 점점 미쳐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곤 했던 것이다.

그날 저녁, 자크 형이 우리 방문을 단단히 잠그는 걸 보는 순간 형이 미쳤음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불현듯 뇌리를 스치면서 나는 순간적으로 두려움에 휩싸였다.
‘아, 자크형!’

형은 그 순간에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힘을 주어 내 손을 잡았다.
“다니엘, 너한테 할 얘기가 있어. 다른 사람한테는 절대 말하면 안 돼. 맹세할 수 있지?”

그 말을 듣고서야 형이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맹세하겠어, 형!”
“근데 너 아직 모르지? ……쉿! 내가 시를 한 편 썼어. 아주 위대한 시를 말이야!”
“시를? 형이 시를 썼다고?"

자크 형은 대답 대신 윗옷에서 자기가 직접 제본한 큼지막한 빨간 수첩 한 권을 꺼냈는데, 표지에는 예쁜 글씨로 이렇게 쓰여있었다.


믿음이여! 믿음이여!
12편(編) 시(詩)
자크 에세트 지음


제목부터가 하도 거창해서 나는 현기증이 날뻔했다.

늘 찡찡대면서 작은 풀단지나 들고 다니던 열두 살짜리 어린아이 자크 형이「믿음이여! 믿음이여!」라는 12편짜리 시를 쓰다니, 도대체 어떻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도 아무도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계속해서 바구니를 들려 야채가게로 심부름을 보냈고, 아버지는 “자크, 이 얼간이 같은 놈!”이라고 더 크게 소리 질렀던 것이다.

아, 불쌍한 자크 에세트! 정말이지, 자크 형의 목을 꼭 끌어안고 싶은 심정이 간절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라. 형은「믿음이여! 믿음이여!」라는 12편짜리 시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게 또한 나의 의무이기도 한 것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 12편짜리 시가 끝나려면 아직도 하세월이었다. 그나마제1편도 4행에서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작품을 술술 쓴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법이기 때문에“아직은 4행밖에 못 썼지만 나머지도 쉽게 쓸 수 있어. 식은 죽 먹기지, 시간문제라고”하는 자크 형의 말에 전혀 일리가 없는 건 아닌 것이다.

시간문제에 불과하다는 이 나머지 부분, 형은 결국 이 나머지 부분을 완성할 수가 없었다……. 시라는 건 자기의 운명을 안고 태어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믿음이여! 믿음이여!」란 시의 운명은 12편짜리 시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시인은 4행 이상은 쓸 수가 없었다. 그것은 운명이었다. 결국, 참다못한 이 가엾은 소년은 자신의 시를 악마에게 보내버리고 시의 여신도 내쫓아버렸다. 그렇게 되자 그는 또다시 눈물을 짜기 시작했고, 풀단지를 들고 불앞에 다시 나타났다……. 그럼, 빨간 수첩은? 빨간 수첩에게도 그 나름의 운명이 있었다.

“이거 줄게. 네가 쓰고 싶은 거 여기다 써.”그가 내게 수첩을 건네주며 말했다. 내가 거기다 뭘 썼는지 아는가? 내가 지은 시를 써넣었다! 꼬마의 시를 말이다. 빨간 수첩과 함께 자크 형의 고통도 고스란히 내게 넘어온 것이다.

자, 이렇게 꼬마가 운(韻)을 맞추고 있는 동안 우리는 그의 인생의 4, 5년 정도를 성큼 뛰어넘을 것이다. 나는 에세트 씨의 가족들이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는 그 18XX년 봄으로 얼른 건너뛰려고 애쓰는 중이다.

독자 여러분, 내가 침묵 속에 그냥 흘려보내려고 하는 내 삶의 이 부분이 과연 어떤 식으로 흘러갔을까 알려고 애쓸 필요조차 없다. 눈물과 가난으로 점철된, 늘 같은 생활의 연속이었으니까. 지지부진한 사업, 한 번도 제때 내본 적이 없는 집세, 난리를 치며 소란을 피우곤 하던 빚쟁이들, 돈 때문에 팔아치워야 했던 어머니의 다이아몬드, 전당포에 잡힌 은그릇, 여기저기 구멍 난 시트, 천 조각을 대고 기운 바지, 온갖 종류의 궁핍, 온갖 종류의 모욕, 영원히 되풀이될 것 같던“내일은 어떻게 하지?”하는 걱정, 집달관이 무례하게 눌러대던 초인종 소리,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비웃곤 하던 문지기, 빚과 어음 거절증서……. 그리고 또, 또…….

이렇게 살다 보니 18XX 년이 되었다.

그리고 이해에 나는 고등학교 철학반을 마쳤다.

그 당시의 나는 꼭 무슨 철학자나 시인이나 되는 양 잘난 체를 하며 거드름을 피우는 소년이었다. 하지만 키는 여전히 작았고 턱에는 수염 한올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위대한 꼬마 철학자였던 내가 막 학교에 가려고 나서는데 아버지가 나를 가게로 불렀다. 그런데 내가 가게로 들어서자마자 아버지는 거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다니엘, 그 책가방일랑 어디 집어던져버려라. 넌 이제 학교 같은 덴 다닐 수 없어.”

이렇게 말하고 난 아버지는 아무 말없이 가게 안을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몹시 격앙되어 있는 것 같았고, 나 역시 그랬다. 그렇게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르고 난 뒤 다시 말을 꺼냈다.
“얘야, 너한테 좋지 못한 소식을 알려야겠구나. 아주 나쁜 소식을 말이야……. 우리 가족 모두가 뿔뿔이 헤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왜 그러냐 하면 말이다…….”

그 순간, 반쯤 열린 문 뒤에서 귀청을 찢는 듯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자크! 저 멍청한 놈 같으니!”

아버지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이렇게 고함을 치더니 말을 계속했다.
“우리 집이 그 빌어먹을 혁명분자들 때문에 망해버리는 바람에 리옹으로 이사 온 뒤 6년 동안 나는 열심히 일했다. 그래도 난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우리 재산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 하지만 이번에도 악마가 끼어든 것 같다. 난 식구들을 빚과 가난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말았어……. 이젠 모든 게 끝장이야. 우린 헤어 나올 수 없는 진창 속에 빠져버리고 말았어……. 이 곤경에서 헤어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이란다. 너희들도 이제 다 컸으니까 이제 그나마 남아있는 재산이나마 몽땅 팔아서 각자의 삶을 찾아야겠다…….”

눈에 안 보이는 자크 형의 울음소리가 다시 들려오자 아버지는 말을 중단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화를 낼 수조차 없을 만큼 마음 이어지러 운 듯보였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결정을 내렸다. 상황이 호전될 때까지 네 어머닌 남프랑스에 있는 바티스트 외삼촌댁에 가 계실 게다. 자크는 그냥 리옹에 남아 있게 될 거다. 전당포에 조그만 일자리를 얻었으니까. 나는 포도주 회사의 영업사원으로 들어갈 거야……. 그리고 얘야, 안됐지만 너도 네 생활비만큼은 직접 벌어야겠구나. 마침 교육감한테서 편지가 왔는데, 자습감독 자리가 하나 났으니 생각해보라는구나. 자, 읽어 봐라!”


나는 아버지가 건네주는 편지를 받아서 읽어내려갔다.
“아버지, 이 편지 내용으로 보아하니 생각이고 뭐고 할 시간이 없는 것 같네요.”
“그럼, 내일 떠나야겠구나.”
“좋아요, 떠날게요. 떠나겠어요.”

이렇게 말하고 편지를 접어서 아버지에게 돌려주었지만, 그러는 내 손은 떨리지 않았다. 독자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난 이제 위대한 철학자인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어머니가 가게 안으로 들어오고, 자크 형도 어머니를 따라 쭈뼛쭈뼛 들어왔다. 두 사람은 내게 다가오더니 아무 말없이 나를 껴안았다. 나만 빼놓고 모두가 어제저녁부터 이 일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불쑥 말을 꺼냈다.
“그 애짐을 꾸려주구려! 내일 아침 배로 떠나야 될 거요.”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는 긴 한숨을 몰아쉬었고, 자크 형은 소리 죽여흐느꼈다. 이제 우리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된 것이다.

그동안 겪어온 숱한 일들 때문에 우리 가족은 차차 불행에 길들여지고 있었다.

영원히 잊지 못할 그날이 지나고 난 그 다음날 아침,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크 형은 나를 부두까지 배웅해주었다. 기묘한 우연의 일치일까, 나는 6년 전 우리 가족을 리옹까지 태우고 왔던 바로 그 배를 타게 되었다. 선장도 그때 그 제니에 선장, 주방장도 그때 그 몽텔리마르 주방장이었다! 우리 식구들은 갑자기 거의 무의식적으로 안누 누나의 우산과 로빈슨의 앵무새, 그리고 배에서 내릴 때 일어난 이런저런 일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나마 그 추억은 우리 가족의 슬픔을 조금 덜어주었고, 어머니의 입가에도 미소가 살짝 떠올랐다.

별안간 출발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이제는 떠나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마침내 가족들의 품에서 빠져나와 용감하게 부교(浮橋)를 건넜다.

“조심해라!”
아버지가 소리쳤다.

“몸 건강하게 잘 지내렴…….”
어머니는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자크형도 말을 하려고 했으나 어찌나 울었던지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전혀 울지 않았다. 독자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나는 위대한 철학자였으며, 결단코 철학자는 눈물 따위나 흘리는 연약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뿌연 안갯속에 남아 있는 저 소중한 사람들을 내가 이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신께서는 알고 계시리라. 그들을 위한 일이라면 내 몸과 마음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다는 것을 신께서는 알고 계시리라. 다만 나는 론 강의 부두 위에서 눈물 흘리고 있는 그 소중한 세 사람을 생각했어야 하는데도, 리옹을 떠난다는 기쁨과 배의 움직임, 여행의 흥분, 내가 남자라는(혼자 여행도 하고 자기 밥벌이 정도는 하는 자유롭고 원숙한 남자라는) 자부심에 도취되는 바람에 그렇게 하지 못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세 사람은 철학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불안하면서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마치 천식을 앓듯 캑캑거리며 떠나가는 배를 계속 바라보면서, 배의 굴뚝에서 솟아 나오는 시커먼 연기가 수평선 위를 나는 제비만큼이나 작아 보일 때까지“안녕! 잘 가렴!”이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이 철학자 선생께서는 그들과 달리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머리카락을 바람에 나부끼면서 갑판 위를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휘파람을 불기도 하고, 멀리 침을 뱉기도 하고, 여자들을 힐끗거리기도 하고, 배를 조종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하고, 덩치 좋은 어른들처럼 어깨를 으스대며 걷기도 하는 등 제멋에 겨워 우쭐거리고 다녔다. 비엔느에 거의 도착했을 즈음 나는 몽텔리마르 주방장과 그의 설거지꾼 두 사람에게 내가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게 되었는데 월급을 꽤 많이 받는다고 떠벌렸다. 그 사람들은 내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자 나는 나 자신이 너무나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한 번은 배 위를 이리저리 걷다가 실수로 뱃머리 쪽의 종(鐘) 옆에 있는 밧줄더미에 발부리를 부딪치고 말았는데, 그건 바로 로빈슨 크루소 흉내를 내던 내가 6년 전 두 다리 사이에 앵무새가 든 새장을 내려놓은 채 오랫동안 앉아 있던 바로 그 밧줄더미였다. 그걸 보는 순간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얼굴을 붉혔다.

‘큼지막한 파란색 새장에 희한하게 생긴 앵무새를 넣고 어딜 가나 들고 다녔으니 그때의 내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을까…….’

그때만 해도 이 불쌍한 꼬마 철학자는 환상의 색깔인 파란색이 칠해진 새장과 희망의 색깔인 초록색 앵무새를 이렇게 우습게 평생 끌고 다녀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커다란 파란색 새장을 가지고 다닌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새장 창살의 파란색은 벗겨졌고, 초록색 앵무새는 가엾게도 털의 4분의 3이 뽑혀져나갔을 뿐이다.

고향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곧바로 교육감이 머무르고 있는 교육청을 찾아갔다.

아버지의 친구인 교육감은 야윈 체격에 키가 커서 민첩해 보이고 얼굴도 잘생긴 분이지만, 선생님 같은 분위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자기 친구의 아들을 몹시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렇지만 내가 안내를 받아 교육감실에 들어섰을 때 이 친절한 교육감은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던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이고, 세상에! 너, 정말 작구나!”

사실이지 나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키가 작은 데다가 어려 보이고 체격도 빈약했던 것이다.

교육감의 말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안 된다고 하면……어떡하지?’이런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치자 내 온몸은 두려움으로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교육감은 나의 그런 모습을 보고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눈치챈 듯 말을 이었다.

“자, 이리 와보렴! 그러니까…… 우린 너한테 자습감독 일을 맡기려고 하는데……네 나이에 키랑 체격이 이렇게 작아서는 감독일을 하는 게 힘들 게다……. 하지만 넌 지금 생활비를 벌어야 할 형편이니 우리도 최선을 다해서 널 도와주마. 그래도 처음부터 널 큰 학교에 보낼 수는 없을 것 같다……. 여기서 한 4, 50리 정도 떨어진 산골에 사를랑드라는 마을이 있거든. 거기 공립중학교가 하나 있는데, 우선은 거기로 보내주마. 거기서 일하면서 인생 체험도 쌓고 경력도 쌓도록 해라. 그러다 보면 키도 크고 수염도 나겠지. 그러면서 기회를 보자꾸나.”

이렇게 얘기하면서 교육감은 사를랑드 중학교 교장에게 나를 소개하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편지를 다 쓰자 그는 그걸 내게 건네주면서 바로 그날 떠나라고 말했다. 교육감은 내게 몇 마디 충고를 해주더니 날 계속 지켜보겠다고 말하며 내 뺨을 몇 번 다정하게 토닥거리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몇백 년은 되었음직한 교육청의 낡은 층계를 단숨에 뛰어내려온 나는 사를랑드로 가는 합승마차를 예약하려고 헐레벌떡 달려갔다.

그런데 정작 합승마차는 오후나 되어야 출발한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네 시간이나 더 기다려야만 했다. 나는 그 틈을 이용하여 햇볕도 좀 쬐고 아는 사람이 있으면 인사도 나누려고 광장으로 갔다. 이 첫 번째 임무를 완수하고 나니 뭘 좀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 주머니 사정에 맞는 싼 음식점을 찾았다. 군부대(軍部隊) 바로 앞에‘전국 편력 직공 식당’[옮긴이 주 - 이 당시 숙련공들은 프랑스 전국을 돌면서 명인(名人)들로부터 기술을 배우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다]이라는 새 간판이 산뜻하게 붙어있는 깨끗한 음식점이 눈에 띄었다. 나는 생각했다.

‘저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

잠시 망설이던(혼자서 식당에 들어가 보기는 처음이어서) 나는 용기를 내서 문을 밀고 들어갔다.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벽에는 석회 칠을 했고, 참나무 식탁이 몇 개 놓여 있고, 한쪽 구석에는 구리 손잡이에 알록달록한 리본을 매단 긴 지팡이들이 놓여 있었다. 카운터에서는 살찐 남자가 신문지에다 코를 박고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이봐요! 아무도 없어요?”

나는 꼭 술집에 출근 도장을 찍는 술꾼처럼 주먹으로 식탁을 탕탕 치며 소리 질렀다.

뚱보 주인은 여전히 코를 골며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고, 대신 뒷방에 있던 여주인이 급히 달려 나왔다. 우연의 천사가 보내준 이 새 손님을 보는 순간 그녀는 고함을 내질렀다.
“하느님 맙소사! 너, 다니엘 아니냐!”
“아……안누누나!”

아, 하느님! 뜻밖에도 그녀는 안누 누나였다. 우리는 서로 얼싸안았다.

우리 집안일을 도맡아 하던 안누 누나는 카운터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뚱보 장 페이롤 씨와 결혼하여 음식점 여주인이 된 것이다. 항상 다정하기만 한 안누누나는 나를 만난 게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어찌나 힘껏 껴안았는지 하마터면 숨이 막혀 죽을뻔했다.

그때 장페이롤 씨가 부스스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자기 아내가 낯선 젊은이를 그처럼 반갑게 맞이하는 것을 보자 처음에는 무슨 일인가 싶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이 청년이 다니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는 얘기로만 듣던 나를 만나게 된 것이 기뻤는지 얼굴에 화색을 띠면서 서둘러내 옆으로 왔다.

“점심 식사는 했나, 다니엘 군?”
“아직 못했습니다, 페이롤 씨……. 그렇잖아도 식사를 하려고 여기 들어왔다가…….”

맙소사, 다니엘이 여태껏 식사를 안 했다니! 안누 누나는 깜짝 놀라서 부리나케 부엌으로 달려가고, 페이롤 씨도 벌떡 일어나더니 그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지하실로 무언가를 가지러 내려갔다. 지하실로 무언가를 가지러 내려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식탁이 차려져서 나는 앉아서 먹기만 하면 되었다. 안누 누나는 왼쪽에 앉아서 그날 아침에 삶아놓은 계란에 곁들여 먹을 수 있도록 빵을 가느다랗게 잘라주었고, 페이롤 씨는 오른쪽에 앉아서 잔에다 오래 묵은 샤토뇌프 뒤 파프산(産) 포도주를 따라주었는데, 꼭 술잔 밑바닥에 홍옥(紅玉)을 한줌 뿌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너무너무 행복했던 나머지 꼭 성당 기사들처럼 마시고 자선(慈善) 수도사들처럼 먹다 보니 나는 내가 얼마 전에 중학교 교사로 임용되었으며, 그 덕분에 이제는 웬만큼 먹고 살 수도 있게 되었다는 말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자 안누 누나는 내가 너무나 대견스러운 듯 감탄하며 어쩔 줄 몰랐다.

페이롤 씨는 자기 아내만큼 열광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의 다니엘보다 네댓 살쯤 어린 나이 때부터 벌써 세상에 발을 들여놓고 자기 밥벌이를 했기 때문에 다니엘이 직접 생활비를 벌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자 그냥 그럴 수도 있겠거니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이 존경할 만한 식당 주인은 속으로만 그런 생각을 할 뿐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자신을 에세트 집안의 아드님과 견줄 수 있단 말인가! 만일 페이롤 씨가 그런 기미를 보였다면 안누 누나는 결코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에도 나는 계속해서 말하고, 마시고, 먹고, 흥분했다. 내 두 눈은 반짝거렸고, 양 볼은 환하게 빛났다. 자, 여보, 가서 잔 좀 가져오세요! 페이롤 씨가 잔을 가져와서 우리는 건배를 했다. 먼저 에세트 부인을 위해서, 그리고 에세트 씨를 위해서, 그러고 나서는 자크와 다니엘, 안누, 안누의 남편, 교육감, 내가 근무하게 될 중학교를 위해서 건배! 그리고 또……누굴 위해서 건배를 하지?

이렇게 실컷 마시며 수다를 떨다 보니 두 시간이 흘러갔다. 우리는 슬픔의 색깔을 띠었던 과거와 희망의 색깔을 띠게 될 미래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리고 공장과 리옹, 랑테른느 거리, 우리 모두가 그토록 사랑했던 그 불쌍한 큰형을 떠올렸다.

나는 문득 떠나야 한다는 게 생각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왜? 벌써 가려고?”
안누누나가 슬픈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사를랑드로 떠나기 전에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는데 아주 중요한 일이라 부득이 일어나야겠다고 말하며 두 사람에게 양해를 구했다. 정말 유감이었다. 분위기도 너무나 좋았고, 아직도 나눌 얘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안누누나와 페이 로씨는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면 어쩔 수 없다며 더 이상은 붙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잘 가렴, 다니엘! 하느님께서 항상 널 인도해주실 거야.”

안누 누나와 페이롤 씨는 길 한가운데까지 나를 배웅하며 내게 신의 은총이 내리기를 빌었다.

그런데 독자 여러분께서는 내가 떠나기 전에 꼭 만나려고 했던 사람이 누군지 아시겠는가?

그건 바로 내가 그토록 사랑하였고 그토록 애도해 마지않았던 공장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의 친구였으며 어린 시절의 즐거움이었던 뜰이며 작업장이며 하늘 높이 치솟은 플라타너스를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이렇게 약한 면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도 좋아할 수 있는 것이고, 돌도 좋아할 수 있는 것이고, 공장도 좋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 세상으로 돌아갔던 로빈슨 크루소도 훗날 자기가 살던 무인도를 찾아보기 위해 수 천리가 넘는 바닷길을 항해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내가 나의 무인도를 다시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 건 놀라운 일이 아닌 것이다.

머리에 깃털 장식을 달고 담 너머를 바라보고 있던 플라타너스들은 자기들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오고 있는 옛 친구 다니엘을 알아본 듯했다. 그들은 멀리서 내게 손짓을 하더니 서로를 향해 이렇게 말하는 듯하였다.
‘저기 다니엘에세트가 온다! 다니엘이 돌아오고 있어!’

나는 더욱더 마음이 다급해졌다. 하지만 공장 앞에 다다른 순간, 나는 망연자실 그 자리에 우뚝 써버리고 말았다.

협죽도도, 삐죽 솟은 석류나무도 없이 높은 회색 담뿐이었다. 창문도 보이지 않았고, 천창(天窓)도 보이지 않았다. 작업장도, 예배당도 사라져버렸다. 정문 위쪽으로 라틴어가 몇 마디 쓰인 커다란 십자가만 솟아있을 뿐이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공장은 이제 더 이상 공장이 아니었다. 남자들은 절대 들어갈 수 없는 카르멜수녀원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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