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시대>
느긋하고 평온해 보이는 지금의 모습에서 잘 드러나진 않지만, 정원이는 병원에 가장 오래 남아 있었던 학생이다. 2014년 6월 25일. 세월호 참사 71일 만에 생존 학생들이 처음 등교하던 날 정원이도 있었다. 친구들은 한 명 두 명 집으로 돌아갔지만, 그때까지도 정원이는 병원에 있었기에 등하교를 모두 병원에서 했다.
“밖에 나가기가 싫었어요. 이래저래 외출할 일이 제법 있었는데 나가기 싫어서 그냥 병원에 있었어요. 오히려 병원에 있는 게 힘들어서 집에 가고 싶어 한 아이들도 많았지만, 저는 병원에 있는 게 그렇게 불편하거나 나쁘지 않았어요. 누가 방에 오지 않으니까 혼자 있어서 좋았고, 다른 분들도 다 친절하시고 많이 도와주시니까 힘이 되는 것 같았고.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고 있으니까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를 돌봐주는 선생님들은 집보다 병원이 편하면 아픈 거라고 그랬어요.”
정원이의 어머니는 새삼 그때 기억이 북받쳤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집에 돌아와 부모 형제들의 보살핌 속에서 조금씩 기운을 되찾고 있었는데, 정원이만 병원에 남아 있어서 자주 보지도 못하고 보듬어줄 수도 없어서 속상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병원에서 나가기 싫어하는 아이가 마음의 병이라도 걸린 게 아닐까 싶어 겁이 났다.
“제가 전화로 통화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전부 병문안을 와달라고 했어요. 제가 볼 때 우리 정원이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거 같았거든요. 뭐 사갖고 오지 말고 그냥 와서 우리 아이 좀 꼭 안아주라고 그랬어요.”
입원을 하게 된 건 세월호에서 빠져나오는 도중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몸만 다친 것이 아니었다. 정원이는 무려 80일 동안 입원해 있었다. 11층 꼭대기 복도 쪽 병실에서 커튼을 친 채 정원이는 자기만의 공간에 머물렀다.
정원이가 퇴원하기 일주일 전, 의사 선생님은 지금 나가지 못하면 평생 병원에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어머니는 세상으로 나가지 않으려는 정원이를 설득해 억지로 퇴원시켰다. 하지만 퇴원 후에도 정원이는 매일 밤마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살인마가 쫓아오기도 하고, 다른 아이들과 있던 건물이 기울어져서 자신이 떨어지기도 하고, 배가 침몰하는 장면과 비슷한 것이 보이기도 하고, 상어에게 잡아먹히기도 하는 악몽에 시달렸다. 무엇이 그토록 아이를 힘들게 하는지 부모님은 알 수 없었다. 그냥 다 잊었으면 좋겠는데 꿈속에서 아픈 경험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는 정원이를 꺼내줄 수 없다는 것도, 그토록 사랑하는 아이를 아프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도 부모님의 가슴을 찢어놓았다.
세월호 생존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다시 봄이 올 거예요>에는 생존 학생뿐만 아니라 희생자의 형제자매 이야기들도 담겼다. 가끔 부모님 속을 썩이고 형제자매에게 투정을 부리며 평범하게 살아갔을 아이들이, 자식을 잃은 부모를 이해하고 형제자매의 빈자리를 채워서 집이 밝아지도록 애써야 했다. 그 아이들은 마땅히 누려야 하는 삶을 잃었다.
부모들은 병원에서 처방받은 수면제를 아이 몰래 헤아려본다. 혹시라도 한꺼번에 먹어버릴까 봐 겁나지만 대놓고 이야기를 할 수도 없다. 아이의 아픈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 역시 그런 부모의 마음을 모를 리 없다. 아이들은 부모가 수면제 수를 세어본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색하지 않는다. 부모님께 자기라도 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부모는 아이를 보호하려 최선을 다하지만, 아이들은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생각을 입 밖에 내진 않는다.
아이들은 울면서도 아직도 우냐고 말하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웃으면서도 친구들을 잃고도 웃음이 나오냐는 사람들의 눈치를 본다. 세상에 나가고 싶어도 걱정이 된다. 친구들의 죽음으로 특혜를 받은 사람, 혹은 큰 상처를 입어 어딘가 결핍된 사람이라는 시선을 받게 될까 봐 두렵다. 대학생이 되어 다른 세계에 들어선 정원이가 여전히 새 친구 곁보다 ‘쉼표 방’을 더 편안해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