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Nov 03. 2017

01. 삶의 무게와 배낭여행

<백만장자와 함께한 배낭여행>



삶의 무게

십수 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을 때, 삶의 막막함과 함께 난생처음 겪는 외로움이 찾아왔다. 이런 종류의 외로움은 가족과 나누기 힘들다.

‘괜찮아. 당신은 아무 걱정하지 마. 그냥 예전처럼 지내면 돼. 내가 다 생각이 있어.’

이렇게 아내를 안심시키기는 했다. 그러나 두 아들 녀석들이 툭탁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깨에 큰 짐이 툭툭 올라붙는 것 같았다. 이게 ‘가장’이라는 사람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구나, 절실히 깨달았다.

아직 직장에 남아 있는 동료들에게는 쉽게 전화를 걸기 힘들었다. 내가 선택해서 그만뒀든 ‘명퇴’를 당했든 그런 것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었다. 배에서 내린 사람. 뭐, 그 정도가 아니었을까. 공연히 쓸데없는 불행이 전염될까 봐 두려울 뿐이었으리라.

친구 녀석에게 한번 전화를 건 적이 있다. 그때의 거절이 마음에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터였다. 그러나 견디기가 힘들었다.

“아, 회사 그만뒀어? 왜 그랬어? 그냥 꾹 참고 붙어 있지. 네가 지금 그 나이에 어딜 가서 뭘 하냐. 오늘 저녁? 야, 요즘 우리 회사 비상이야. 오늘도 야근이다. 별수 있냐? 먹고살려면. 담에 보자. 끊는다.”

그 이후로 한동안 누구에게라도 다시 번호를 누를 용기를 내기 힘들었다. 마흔여섯의 나이에 겪는 외로움은 꽤나 무거웠다.


배낭여행 가자!

왜 다들 회사를 그만두면 자그마한 사무실이라도 하나 구하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갈 곳이 없었다. 회사를 그만둔 뒤 처음에는 카페를 전전했다. 계속할 수가 없었다. 기적처럼 매월 통장에 꼽히던 월급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일상의 자질구레한 비용에 공연히 신경 쓰였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 짜증이 났다. 이 나이에….

고심 끝에 도서관을 택했다.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눈총받지 않는 곳. 책이나 맘껏 읽으리라, 그런 심사였다.

“강 국장님, 부산에 한 번 내려오소.”

박 선생이 전화를 걸어온 건 그렇게 찾아간 도서관에서 무료하게 서성거릴 때였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 전화했다가 알았다고 했다. 선생은 늘 나를 “국장님”이라고 부른다. 이전 직장의 마지막 직함인데, 호칭을 고치지 않는다. 사실 그런 게 선생의 매력이다. 회사에서 떨어져 나오면 호칭도 ‘○○ 씨’로 은근슬쩍 바꾸는 게 세상인심이었다. 짐짓 모르는 척 넘어가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퇴사 소식을 듣자마자 호칭을 바꿨다. 뭐, 계속 유지할 관계와 그렇지 않을 관계를 나눠주는 기회라고 생각하면 될 테지만,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선생은 호칭을 바꿀 생각이 없는 듯했다. “나는 한 번 국장님이면 영원히 국장님입니다.” 심한 부산 사투리로 선생은 전화기 너머에서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이런저런 인사 끝에 선생이 부산으로 나를 초대했다. 자갈치 시장에서 회나 한 접시 먹잔다. 가겠다고 했다.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남들은 회사를 그만두면 혼자 여행을 다녀오곤 하던데, 해외로도 가던 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박 선생을 핑계로 부산이나 한번 다녀와야겠다, 거긴 바다가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뭔가 공간이 달라지면 생각과 마음이 트일 것 같은 기대도 있었다.

“강 국장님, 우리 배낭여행 한번 갑시다.”

자갈치 시장에서 털게와 회, 매운탕을 잔뜩 먹고 나서 커피숍에 마주 앉았을 때 박 선생이 지나가듯 툭 말했다. 3초 정도 정적이 흘렀다.

내가 픽 웃었다. 선생의 나이가 올해로 예순이다. 내 나이는 마흔여섯.
어딜 놓고 봐도 배낭여행 갈 조합은 아니다.

“농담도 잘하셔.”

선생이 어딘가 기운 없어 보이는 나를 웃기려 하는 농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선생은 진지했다.

“비용은 걱정 마세요. 아내분께 허락이나 받아놔요. 한 석 달 정도 여행을 떠나도 되는지.”

나는 다시 한 번 웃었고, 대화는 이내 다른 쪽으로 흘렀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왔다.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선생이 여행 운운했던 것은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그런데 이틀 후 전화가 왔다.

“허락은 받았소?”

선생이 다짜고짜 물었다. 잠시 내가 맥락을 못 찾아 허둥대자 선생이 재촉했다.

“배낭여행 말이오.”

진짜였나 보다. 기억을 더듬어 엊그제 부산에서 선생이 배낭여행을 제안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때 그 농담이 재밌다고 느끼셨나?

“선생님, 별로 안 웃겨요.”
“농담 아니오. 빨리 허락받고 전화 주시오.”

내가 대답할 겨를도 없이 전화가 끊겼다. 진심인가. 긴가민가했다.
하지만 아내에게 물어는 봐야 할 듯했다.

“배낭여행? 호호. 박 선생님이 그러셔? 얼마나? 뭐? 석 달? 호호, 통 크시네. 당신은 그 말씀을 진담으로 믿어? 뭐? 농담이 아닌 것 같다고? 당신 참 순진해. 잘 생각해봐. 박 선생님이 뭐가 아쉬워서 당신이랑 여행을 가? 아니 당신이랑은 10년 인연이 있으니까 그렇다 쳐. 그 선생님이 도대체 왜 ‘배낭여행’을 가시냐고. 백만장자도 아니고 억만장자쯤 되시는 분이. 그래도 물어보셨으니 답은 드려야 한다고? 좋아, 두 달 정도는 허락해줄게. 석 달은 너무 길어. 하하하. 박 선생님 유머 감각 좋으시다.”

아내의 반응이 이랬다. 뭐, 나라도 그렇게 말했을 것 같다. 아마도 농담이시겠지.

다음 날 또 전화가 왔다.

“뭐라셔요? 아내분은?”
“네? 아, 네. 석 달은 너무 길고, 두 달은 된답니다.”
“그래요? 됐네요. 그럼 남미는 안 되겠고, 일단 유럽만 두 달 다녀옵시다.”
“네? 지, 진짜요?”
“진짜지, 그럼. 내가 비싼 밥 먹고 왜 거짓말을 해요? 빨리 계좌번호 불러요. 돈 들어가면 당장 비행기 표와 유레일패스 끊고요.”

뭔가에 홀린 기분이었다. 진짜 가긴 갈 모양인가? 그러자 왈칵 걱정이 밀려왔다.

“선생님, 저 영어 못해요.”
“읽을 줄은 알 거 아뇨. 갑시다.”
“선생님, 제가 아주 심각한 길치인데요.”
“내가 감이 아주 좋아. 길 잘 찾아요. 갑시다.”
“숙소 예약이나 이런 것 한 번도 안 해봤는데요.”
“이번에 해보면 되잖아요. 갑시다.”
“선생님, 제가 코를 엄청 골거든요. 아마 못 주무실 거예요.”
“강 국장님! 날 때부터 다 갖추고 인생사는 놈 없어요. 만약 그랬다면 나 같은 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야. 알죠? 15살 때 완전히 빈손으로 부산 바닥에 들어갔다는 거. 여행도 인생살이랑 뭐가 달라요? 그냥 부딪쳐보면 되는 거지.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그거 다 핑계야. 강 국장님이 코 골면 내가 빨래집게로 짚어놓고 잘게요. 그러니 갑시다. 기다리겠소.”

전화는 거기서 끊겼다. 내가 더 징징거릴 겨를도 없었다. 그랬지. 선생이 처음부터 백만장자는 아니었지. 15살에 부산 올라와서 일식집 보조로 일하면서, 이래서 미움받고 저래서 얻어터지고 하다가 한 단계 올라서서 호텔 요리사가 되고, 부산 최고의 일식집 경영자가 되고, 그리고 주식 투자자로 변신했었지.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런 선생이 지금 내게 기회를 주는 거 아닌가. 선생이 안 가겠다고 버티고 내가 가자고 졸라야 될 일이 거꾸로 된 판에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는지 건가.

매거진의 이전글 07. 인공 지능의 학습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