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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06. 2017

09. 학(學)의 종말, 습(習)의 시대

<습의 시대>



우리말에서 ‘학습’이라는 단어는 어디서 유래된 것일까? 바로 논어에서 나온 말이다. 논어의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배우고 끊임없이 익히는 것이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에서 따온 말이다. 학습은 이 구절의 준말인 셈이다. 우리가 공부하는 지식에는 두 종류의 지식이 있다. 조금 어려운 말로 명시적 지식(Explicit Knowledge)과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는 헝가리 출신의 철학자인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 1891 -1976)가 만든 말이다. 명시적 지식은 글이나 그림, 말 등의 형태로 표시되는 지식을 의미한다. 그에 반해 암묵적 지식에 문서로 표현되지 않는, 자신의 몸에 익히는 지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기 힘든 지식이다. 가령 수영을 어떻게 하는지 여러 종류의 방법에 대해서 책으로 서술된 지식은 명시적 지식이다. 암묵적 지식은 실제로 물에서 수영하는 방법을 내 몸으로 익히는 것이다. 

마이클 폴라니는 20세기가 되어서야 지식을 명시적 지식, 암묵적 지식으로 나눴지만 사실 동양에서는 일찌감치 둘의 차이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배우고 익힌다는 말인 ‘학습’이란 단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학(學)’은 지식이나 정보를 배우는 것으로 명시적 지식에 해당한다. 즉, 수영의 영법에 대한 이론과 방법을 책으로 읽는 것이다. ‘습(習)’은 그 배운 내용을 내 몸으로 직접 익히는 것으로 암묵적 지식을 의미한다. 결국 학습이란 명시적 지식과 암묵적 지식 둘 모두를 의미한다. 

따라서 공자가 말한 ‘학이시습지’는 지식이나 정보를 배우고 그것을 끊임없이 익혀서 내 몸 안으로 저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명시적 지식은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는 특징이 있기에 누구에게 전달하거나 공유할 수 있는 지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언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표현하는 데 한계를 지닌다. 이른바 언어의 해상력이 인식의 해상력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엇인가 알고 있지만 이를 모두 말이나 글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지 과학 전문가들에 따르면 명시적 지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마치 빙산의 일각처럼 전체 지식의 10%도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학'이라는 과정은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 중 설명할 수 있는 일부만을 다루고 있는 셈이다. 경험과 숙련을 바탕으로 한 암묵적 지식의 영역인 ‘습'이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진짜인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공부'라고 하면 조용한 독서실에서 문제집을 풀거나 책을 정독하는 과정을 떠올린다. 앞에서 언급한 이른바 ‘학'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문제는 이러한 ‘학'의 과정이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배울 때 우리 뇌에는 ‘인지 부하'라는 것이 생긴다. 다시 말해 뇌 신경 세포들이 서로 연결되기 위해 엄청 애쓰는 과정이다. 이러한 인지 부하로 인해 사람의 뇌는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에 한계를 나타내며, 그 한계를 넘어가면 말썽을 일으킨다. 오히려 너무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면서 중요한 내용을 미처 기억에 담아두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느 자동차 회사에서는 고객들이 얼마나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상황에 맞는 제대로 된 차량을 선택할 수 있는지 실험을 했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3-4개 정도의 중요한 정보만으로도 자신에게 맞는 차량을 선택할 수 있었고, 최대 7개까지 정보의 양이 늘어날수록 더 옳은 결정을 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그 이상의 정보를 받을수록 점차 혼란스러워했으며 정보의 양이 더욱 늘어나자 엉뚱하고 잘못된 결정을 하기 시작했다. 인지 부하로 인해 오히려 지나치게 많은 정보들이 서로 간섭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무엇인가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소화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을 적절히 조절하고 깊게 생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요즘은 손 안의 컴퓨터인 스마트폰을 통해 이미 전 세계의 모든 정보나 지식을 즉시로 살펴볼 수 있는 시대이다. 과거에는 책이 귀하고 중요한 정보가 몇몇 지식인들에게 한정되어 있어 그 지식이나 정보를 소유한 사람들만이 부와 명예를 누렸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전문가 수준의 정보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실 인지 부하를 일으키는 너무 많은 정보가 오히려 더 문제다. 최근 가짜 뉴스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것처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떤 지식이 옳고 의미가 있는 것인지 판단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제대로 걸러지지 않은 명시적 지식을 아무 생각 없이 공부하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학(學)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지식의 반감기 때문이다. 지식의 반감기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해당 분야의 지식에서 반 정도만 살아남고 나머지 반은 오류로 밝혀지거나 낡은 내용으로 변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방사성 동위 원소 원자가 시간이 흘러 반 토막이 나는 것에서 따온 말이다. 예를 들어 의학의 경우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열이 나는 사람의 열을 낮추기 위해 피를 빼는 것이 엄연한 의학지식에 속했다. 시간이 흘러 이처럼 잘못된 지식이나 오류를 수정하고 반 정도만 유효한 지식으로 남게 되는 시간이 바로 해당 분야 지식의 반감기다. 

물리학의 반감기는 약 10년, 비뇨기과 분야는 7년, 성형시술 분야는 9년이라고 한다. 또한 경제학 및 수학은 9년, 심리학이나 역사학은 7년 정도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보나 지식이 계속 수정되고 업그레이드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중고등학교 때 배운 지식이나 대학시절 전공으로 배운 내용이 졸업 후 몇 년이 지나면 반 이상이 쓸데없는 지식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인터넷에 차고 넘치는 정보의 홍수와 지식의 반감기라는 오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옥석을 골라내고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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