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트렌드 노트>
분위기는 모든 것에서 생겨난다. 사람에게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나와 장소 사이에서도, 장소 그 자체로도… 분위기는 어디에나 있다. 맥도날드나 파리바게뜨에도 ‘분위기’는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물론 ‘어떤 분위기’인가다.
카페에서만 분위기가 중요해진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분위기’에 홀려 있는 듯하다. 사물과 장소의 실체보다 공기처럼 모호한 그 ‘분위기’라는 느낌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심지어 ‘분위기 깡패’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네이버오픈사전에 따르면 ‘독특한 느낌이 매우 뛰어남’을 비유적으로 묘사한 단어라고 한다. 이 말의 연관어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 역시 ‘카페’다. 커피의 맛, 장소가 가진 형상보다는 그 실재를 둘러싼 느낌 때문에‘ 핫플레이스’가 결정된다.
‘분위기 깡패’라는 표현의 핵은 ‘독특한 느낌’에 있다. 기존에 봐오던 것과는 달리 익숙하지 않아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떤 새로운 감흥을 일으키는 무언가. ‘카페+분위기’ 조합의 감성연관어를 봐도 ‘이색적’이고 ‘이국적’이라는 표현이 월등히 많이 나온다. 이로써 미루어 짐작하건대 사람들이 ‘핫’하다고 부르는 그 핫플레이스들의 온도는 ‘이국적이고 이색적’인 분위기에서 나온다.
예컨대 2017년 가장 핫한 동네 중 하나인 망원동에 ‘소셜클럽서울’이라는 카페가 있다. 테이블보 위로 떨어지는 샹들리에 조명이 인상적인 곳이다. 의자를 비롯해 모든 가구들이 하얀 천으로 싸여 있는데, 이것이 중세유럽 배경의 영화 속 만찬 장면이나 호러 영화의 저택 신에서나 봤을 법한 ‘이색적’이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집 앞 흔한 카페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그 카페에서만 실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이곳을 2017년의 핫플레이스로 만들었다.
이렇게 비현실적인 장면을 찍지 않고 버티기란 쉽지 않다. 핫한 동네에 새로 생긴 ‘신상 카페’ 사진 한 장은 인스타그램 피드 속 수 많은 사진 중에서 단연 빛나고, 마침내 ‘핫플레이스’로 등극해 ‘분위기 깡패’라는 호칭을 얻는 ‘#인스타성지’의 자격을 갖게 된다.
“오픈 직후 가려다가 기다릴 자신 없어서 못 가고 평일 월차 쓴 어제, 야무지게 다녀온 분위기 깡패로 유명한 망원 카페 소셜클럽서울. 위치에 한 번 놀라고 분위기에 또 한 번 놀랐던 곳이다.”
“테이블보 천을 활용한 고급진 분위기의 소셜클럽서울 왜 SNS 인스타그램에서 핫할 수밖에 없는지 알 것 같다. 완전 분위기 깡패임. 결혼식장 웨딩홀 예식장 같은 유럽의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순백의 화이트가 만들어내는 이쁨. 그리고 그 덕에 잘 나오는 셀카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춤.”
그렇다면 흰 테이블보와 어둑한 조명을 갖추면 우리 카페도 인스타 성지가 될까? 생각해보면 매드포갈릭도 어두컴컴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는 비슷한 것 같은데 어째서 매드포갈릭은 핫플레이스가 아니고 소셜클럽서울은 핫플레이스가 되는 걸까? 매드포갈릭에도 분명 그 장소만의 ‘분위기’가 있는데 말이다. 매드포갈릭이 아닌 소셜클럽서울에만 있는 것이 있다는 뜻일까?
그렇다. 바로 ‘감성’이다.
감성은 고유한 성질이기 때문에 분위기처럼 쉽게 복제될 수 없다. 무인양품 스타일, 샤넬 스타일을 베껴 비슷한 ‘분위기’를 흉내 낼 수는 있지만 흉내 내기로 감성까지 복제할 수는 없다. 감수성은 창작자의 철학과 취향이 감각화되어 외부로 뿜어져 나오는 고유한 성질이며, 감성은 그 제품이나 공간을 만든 사람의 감수성이 전달된 결과다.
요즘 뜬다 하는 핫플레이스들은 그 공간을 사랑하는 주인이 자신만의 고유한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하나의 ‘취향 전시장’과 같다. 한 개인의 오롯한 환상이 시각화되어 찻잔 하나, 티스푼 하나의 취향으로 구현될 때, 우리는 그것을 ‘감성’이라고 부르며 구태여 찾아가 줄을 서고 사진을 찍어 올린다. ‘#망원동핫플레이스 #감성카페 #분위기깡패’라는 해시태그를 줄줄이 달면서 말이다.
과거에는 값을 지불하지 않던 ‘감성’이라는 것에 사람들이 가치를 부여하고 돈을 내기 시작했다. 폐기된 트럭 방수천을 재활용하여 만든 브랜드인 ‘프라이탁’ 가방의 가격은 20만 원에서 비싼 것은 70만 원이 넘는다. 누군가에겐 ‘쓰레기로 만든’ 것에 불과한 그 가방에 사람들이 비싼 돈을 왜 들일까? 그것은 창업자인 프라이탁 형제가 지닌 철학과 미적 감수성, 즉 ‘감성’의 가치를 인정하고 값을 지불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제품의 감성에만 돈을 지불하는 것을 넘어 장소가 지닌 감성에도 기꺼이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프랜차이즈 식당에 별다른 감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복제되고 대량생산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 감성이 철저히 ‘수익 극대화’를 겨냥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복제할 수 없는 감성을 좇아 핫플레이스로 향하는 심리의 근간에는 이러한 ‘수익 극대화’ 전략에 대한 거부감도 작용하고 있는 것 아닐까? 빌딩이나 건물에 입점한 카페보다 주택을 개조한 카페들이 더 인기를 얻는 이유도, ‘레디메이드’된 빌딩에 이식된 것이 아니라 주인장의 취향으로 하나하나 쌓아나가며 감성을 채워갔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고민과 취향의 에너지를 수혈받을 수 있는 곳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 오늘의 ‘핫플레이스 카페’ 현상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