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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29. 2017

08. 철봉에 오래 매달리지 못하는 이유

<느리더라도 멈추지 마라>


자신을 완성시키려면 정신적으로는 물론 타인과의 관계도 잘 맺어야만 한다.
타인과 교제를 맺지 않고 또한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영향을 받지 않고서는 자신을 살찌워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_레프 톨스토이


학교 근처를 지나다 보면,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들이 나를 반긴다. 그중 하나가 철봉이다. 턱걸이를 몇 개 할지 친구들과 내기를 하고, 누가 더 오래 매달리나 시합도 종종 했던 시절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금세 쓴웃음으로 바뀐다. 지금은 오래 매달리거나 턱걸이를 하려 해도 몸이 많이 무거워진 탓에 생각만큼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에 턱걸이나 오래 매달리기를 할 때, 힘에 부쳐 안간힘을 쓸 때마다 누군가 도와줬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 나타나 나를 끌어올려 주고, 밑에서 버팀목이 되어준다면 정말 좋을 텐데 하는 상상을 했지만, 상상은 상상일 뿐이었다.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바라보는 철봉대에 몇몇 아이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등바등 매달린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인생도 저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의 주체는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맞다. 누가 나를 대신해서 삶을 살 수가 없다. 영화 〈아일랜드〉에서는 인간이 노화나 불임 등으로 불행해지는 것을 극복하려고 건강하고 우월한 복제인간을 만드는 세상이 연출된다. ‘나’를 대체할 수 있는 복제인간은 ‘나’에게 필요한 장기나 대리 임신을 해주는 소모품에 불과하다. 영화에서 주인공 링컨은 복제인간이다. 자신이 복제인간이라는 것을 모르는 링컨은 일상에서 온갖 호기심을 품게 되고, 그 호기심을 풀기 위해 연구소에서 탈출하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복제인간이라 해도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는 주체가 된다. 복제인간도 ‘자아’를 깨닫고 자신의 인생을 찾는 마당에 ‘원조’ 인간이 삶의 주인임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리 힘들고 어렵게 살고, 아등바등 몸부림을 치는 인생이라 해도 그것은 다른 이의 것이 아닌 바로 내 인생이다. 인생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내가 짊어져야 할 몫이다. 그런데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게 독불장군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책임의 주체가 남이 아닌 자신이라는 것이지, 무리에서 뚝 떨어져 혼자 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일랜드〉에서도 복제인간 링컨은 자신의 삶을 지키려 하지만, 홀로 외롭게 싸우지 않는다. 조던을 비롯한 여러 명의 도움으로 위기를 헤쳐 나아간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어차피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야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누구나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다. 그 관계를 통해 생존뿐 아니라 좀 더 큰 꿈을 키우고 희망을 노래한다. 다른 사람의 손길을 외면한다는 것은 철봉에 매달리거나 물구나무를 서는 것과 다름없다. 처음에는 그저 혼자서 힘들어하면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견디기가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포기해버린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기 때문이다.

개그맨에서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했을 때, 도전의 흥분과 낯선 무대로 들어선다는 두려움 등이 마구 뒤섞여 다소 혼란스러웠다. 그때 사업 및 마케팅과 관련하여 많은 것을 가르쳐주신 선생님, 묵묵히 나에게 힘을 준 형님, 몸을 만들겠다고 나섰을 때 돌봐준 트레이너 등 수많은 사람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중도에 포기했을 것이다. 마라톤 경기를 보고 있으면, 혼자서 두 시간이 넘도록 뛰는 게 얼마나 고독하고 힘들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분명 홀로 시합을 책임지고 뛰는 것으로 보였지만, 알고 보니 페이스메이커의 도움이 있었다.

페이스메이커는 선수들의 속도를 조율해주는 사람이다. 그들은 시합 초반에 빨리 달려나가 선수들의 속도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페이스메이커가 없다면 마라톤의 기록 향상은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중요한 존재이자 엄청난 조력자이다. 이렇듯 홀로 고독하게 뛰는 마라톤에서도 사실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고독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애환을 빗댄 것이다. 마라톤의 페이스메이커처럼 인생에도 페이스메이커가 있다. 어릴 적에는 부모님과 선생님 혹은 친구들이 페이스메이커였고, 장성해서는 직장 동료, 공동 사업자 등이 페이스메이커이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등 롤모델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도 결코 혼자서 잘난 게 아니었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는 서로 경쟁하면서도 협력하는 관계였기에 서로를 존중했다. 그 관계가 디지털 시대를 활짝 꽃피웠다. 위대한 천재라 일컬어졌던 아인슈타인도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하루에도 여러 번 생각한다, 내 인생이 얼마나 많은 동료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천재도 주위의 도움이 없었다면 연구 성과는커녕 인생마저 힘들고 어려웠을 것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하루하루가 쏜살같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삶은 마라톤만큼이나 길고도 지루한 여정이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페이스메이커가 없다면 메마른 인간관계라 할 수 있다. 굳이 참견하지 않더라도 내 마음을 어루만져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얼마나 삭막한 인생살이이겠는가. 나의 선한 손을 잡아 누군가가 힘을 내고, 누군가의 선한 손길을 나도 감사히 받아들인다면 삶은 결코 메마르고 삭막한 여정일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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