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라운드 50년>
“연고대 나와도 취업이 어려워요.”
“지난해 집 사려다 고민했는데, 1년 사이에 1억이나 올랐어요.”
주변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바뀌고 하루가 멀다고 과거 비리에 대한 소식이 쏟아지는 세상이지만, 우리네 살림살이는 여전히 어렵다. 이미 굳어져 버린 빠른 은퇴와 누구도 비껴가기 어렵게 된 늘어난 노후, 여전히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하는 대목들이다. 결혼마저 포기하고 알바나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무슨 미래 희망이 있을까. 희망은커녕 앞날에 대한 불안이 가득 찬 시대다. 그런데 이런 불안은 청년, 조기 은퇴자, 실업자, 저소득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법 살만한 가정도 불안해한다. 아래 사례가 그런 것들이다.
40대 초반 순정(가명) 씨는 여자 변호사이고 남편은 중앙부처 공무원이다. 자녀는 초등생 아들 하나다. 서울 외곽에서 자가 아파트에 살다가 강남으로 이사해서 현재는 전세로 살고 있다. 자가 아파트는 처분하지 않고 역시 전세를 놓고 있다. 순정 씨의 돈 걱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현재 가진 자산과 저축액으로 충분한 노후생활이 보장될지 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과거에 펀드에 투자했다가 손해 본 것이 많은데, 앞으로 어떻게 투자할 것인지 하는 것이다.
40대 중반 난희(가명) 씨는 중앙부처 공무원이었다가 얼마 전 그만두고, 관련 업계의 선배가 하는 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남편은 판사고, 자녀는 셋이다. 난희 씨는 뜻한 바 있어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었지만, 공무원연금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 무척 불안하다. 남편 역시 판사라고는 하지만 급여는 충분하지 못하다. 난희 씨 집안의 가장 큰 지출은 교육비다. 몇 년째 모자라는 생활비를 남편의 마이너스 통장으로 해결하고 있다. 남편은 판사생활에 만족해하지만, 만약 마이너스 통장의 한도가 다 차면 어쩔 수 없이 공직을 그만두고 변호사 개업을 해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변호사와 공무원인 부부, 둘 다 공무원인 부부, 한국 사회에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가정들이다. 그런데도 이들 부부들이 돈 문제로 불안해한다. 그럼 이보다 더 못한 가정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이런 고객들에게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의 말투로 이렇게 말해주곤 한다.
“고객님 가정이 불안할 정도면, 대한민국 문 닫아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고객들은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긴다. 고객들의 마음속을 내가 다 들여다볼 수는 없으나 대부분은 내 말뜻을 이해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중 일부는 다소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공무원은 정년이 보장돼 있다. 변호사는 다들 부러워하는 고소득 직업이다. 정말 이들 가정의 미래가 불안하다면, 이들보다 못한 가정들은 어떻게 살란 말인가? 이들 가정이 돈 문제로 불안해한다는 건 뭔가 잘못된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 보이지 않는 앞날에 대한 불안이야 어느 정도 늘 있기 마련이기는 하다. 그런데 특히 십여 년 전부터 우리 사회는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수명이 연장된 탓이기도 하고 정년이 불확실해진 세상 탓이기도 하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금융사들은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부추기면서 자신들의 금융상품 판매에 열을 올린다. 종신보험, 변액연금, 펀드, 부동산, 해외투자 등 광풍이 시장을 휩쓸고 다녔다. 더욱이 투기성이 강한 옵션투자 규모가 세계 최고인 적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충분히 안정된 살림살이가 가능한 가정에서도 투자 때문에 오히려 더 손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
대한민국 중산층의 미래가 불안하다. 그런데 정말 불안한 것인지, 아니면 괜히 불안해하는 것인지는 잘 따져 볼 일이다. 정부의 정책 방향을 바꾸거나 사회 분위기가 달라지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될 것인지도 잘 살펴볼 일이다. 개인 차원에서는 돈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미래설계를 꼼꼼히 해보면 불안할 필요가 없는지도 점검해 볼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특별히 어려움에 처한 일부를 빼고는 대한민국의 대다수 중산층은 결코 미래를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중산층이 아니라 소득이 적은 사람들도 하기에 따라서는 충분히 안정되게 살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나는 위에서 ‘불안’이라는 말을 썼다. 이는 ‘가계소득 연 5천만 원’식의 표현과 다르다. 불안은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 주관적인 문제다. 그렇다고 감성과 깨달음의 차원으로 끌고 가려는 건 아니다. 수치와 주관을 함께 얘기할 것이다. 돈의 양과 인생의 목표 그리고 통제력을 다룰 것이다.
‘돈은 누구에게나 늘 부족하고, 오지 않은 미래와 노후는 언제나 늘 불안한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이제 70년대나 80년대가 아니다. 이미 소득 면으로 보자면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국가의 전체 부를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지, 개인의 소득을 인생목표에 맞게 얼마나 잘 쓸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과 사회가 돈을 더 벌 것인지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돈에 끌려다니지 않는 사회와 개인의 삶을 조직하는 것이 필요한 때다. 이런 일에 교수와 같이 사회에 영향력이 많은 분들이 좋은 관점을 가지고 자신의 삶부터 자신 있게 살아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개개인은 누구나 사회의 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주 투철한 신념을 가진 특수한 사람들을 빼고는 다들 개인의 소신을 세상 흐름에 맞춰 살곤 한다. 그 흐름에 맞춰 돈벌이가 배치돼 있고, 여론이 만들어지고, 법과 제도가 세워져 있다. 그러니 그것에 거스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그 흐름을 바꾸기 위해서는 사회 여론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고, 여론 주도층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도 자신의 삶이 세상의 흐름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변호사, 교수, 공무원, 이들의 돈 문제도 결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혼자 애써서 돈 문제로부터 해방되려고 하지만, 늘 실패를 맛볼 뿐이다. 양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 그것을 새로운 관점에서 해결해야 한다. 그 일에 교수님들이 먼저 깨닫고 앞장서라고 나는 강조했다.
그리고 그 주장을 지금 이 책에 이렇게 쓰고 있다. 나 역시 나의 삶부터 바꿔나가면서 나와 이웃, 나아가 사회가 돈에 끌려다니지 않고 돈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금도 열심히 살아가면서 주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