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라운드 50년>
금융상품을 많이 파는 것만을 생각하는 입장이라면 고객의 필요자금을 늘려야 한다. 그런가 하면, 자산과 소득이 충분한 개인이나 가정이라면 굳이 필요자금 줄이기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필요자금을 마냥 늘려도 괜찮은 개인이나 가정은 극히 드물고, 설사 있다 해도 그런 사람은 지금 이 책을 읽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필요자금을 마냥 줄이는 허리띠 졸라매기 작전이 능사라는 건 아니다. 욕구와 능력, 다른 말로 하면 필요와 형편을 중용의 관점으로 잘 해결할 문제다.
올바른 필요자금 줄이기를 얘기하기 전에, 불필요하게 필요자금 늘리기를 권유하거나 따르는 사람들의 논리나 심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필요자금의 3요소를 보면 다음과 같다.
필요자금 = (월)생활비×물가상승률×노후기간
결론은 간단하다. 생활비 많이 쓰고, 물가상승률 높게 잡고, 노후기간 길게 잡으면 필요자금은 늘어난다. 물가는 사회 전체 변화를 반영하므로 개인의 뜻과는 거리가 있어서 보통 물가는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대신 생활비를 300만 원 이상으로 잡고, 노후기간은 40년 정도로 잡는다.
이 조건에서 지금부터 은퇴시점까지의 기간, 그동안의 물가상승률, 은퇴기간 중의 자금을 은퇴시점으로 환가하는 것 등은 무시하고 단순 금액만을 계산해 보자.
1년이면 3,600만 원이고, 40년 동안의 합은 14억4천만 원이다. 대단한 금액이다. 이 금액을 감당할 수 있는 가정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될까? 내가 통계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얼핏 느낌에 5%도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보통 위와 같은 계산을 하는 사람들은 60세 전후를 은퇴시점으로 잡는데, 그렇게 하면 돈 버는 기간이 40년이 안 된다. 잘해야 30년 전후일 것이다. 월 300만 원씩 30년 정도 저축하면, 투자수익률 고려하면 14억4천만 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기간에 생활비를 뺀 저축(투자)금액이 300만 원을 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제법 안정된 직장에 다니는 맞벌이 부부나 제법 자리 잡은 사업가가 아니면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다. 어쩌다 그 정도 소득이 되는 가정이라 하더라도, 앞에서도 여러 번 얘기한 것처럼, 집과 자녀교육비(결혼자금 포함)를 감안하면 그 정도 저축 여력이 있는 가정은 극히 적다.
이처럼 매우 현실에 맞지 않는 얘기를 금융사와 언론은 그것이 마치 중산층의 표준인 것처럼 얘기한다. 나는 그들의 의도는 딱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들이 파는 은퇴설계용 금융상품을 많이 팔기 위한 논리다.
‘행복한 노후를 위해서는 14억 원이 필요한데, 지금 준비한 건 턱없이 모자랍니다.’
그들에게는 고객의 필요자금과 준비자금 격차가 클수록 좋다. 그래야 고객들이 겁을 먹고, 그래야 그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금융상품을 사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실감이 덜 날 텐데, 전혀 상반된 설명과 비교해 보면 정확히 이해될 것이다.
“현재 조건대로라면 고객님은 준비자금과 필요자금이 크게 차이 나지 않습니다. 조금만 노력하시면 되고요, 정 부담되시면 필요자금을 형편에 맞게 조정하시면 됩니다.”
이런 얘기를 듣고도 노후자금을 위해 새로 금융상품을 구입하는 사람이 있을까?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금융상품을 팔려면, 준비자금과 필요자금의 차이를 아주 크게 해야 한다. 말 그대로 ‘깜짝’ 놀라야 하고, 그 놀란 가슴을 상품을 사서 쓸어내려야 한다. 주부들이 스트레스받았을 때 물건 사는 걸로 다스리는 것처럼 말이다.
‘금융사야 그렇다 치고, 그럼 언론은 왜 그렇게 얘기하지?’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금융사가 광고주들이니 언론은 그들의 논리를 따르는 거지.’
이렇게 얘기할 수는 있으나, 이렇게만 얘기하는 건 충분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그렇다고 말할 수 있고, 언론사들의 생존구조가 알게 모르게 그런 흐름을 강제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기자나 편집부가 그렇게만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사회의 주된 의식이 뭐든 양을 많이 마련해서 해결하려는 데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기를 생각해 보자. 요즘 한참 문제가 되고 있는 핵발전소도 어떻게 하면 전기 생산량을 늘릴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원자력발전보다 핵발전소가 진실을 더 정확히 반영한 용어라고 한다). 경제성과 안전성 등도 따져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기 소비 자체를 어떻게 하면 줄일 것인지를 살펴봐야 한다.
사실 70년대 80년대까지만 해도 소비 자체를 줄이는 것에 대한 사회적 흐름이 꽤 있었다. 그때는 생산력 자체가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흐름은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는데, 이렇게 된 데에는 생산력이 발달하고 자본이 생산을 부추기는 측면도 크다고 본다. 그래야 자본은 수익이 생기기 때문이다.
전기 소비 자체를 줄이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먼저이고, 전기효율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 그다음 순서가 더 경제적이고 안전한 전기 생산을 알아보는 것 아닐까.
그런데 소비를 줄이자는 운동이나 실천은 큰 인기를 얻지 못한다. 왜 그럴까?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생산력이 발달해서 줄이지 않고, 더 생산해서 해결하는 방법이 쉽게 보이기 때문이다. 또 그럼으로써 이익을 보는 생산자(투자자, 기업 등)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적 요인도 있지만, 개인들에게는 소비를 줄이는 것이 남들에게 무능하게 보이거나 체면이 깎이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나는 거시경제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이 책은 개인의 돈 문제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개인의 의식 측면을 얘기하려는 것이다.
돈 문제로 비교당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돈이 많이 든다.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 아니 우리네 보통사람의 삶 전체가 온통 그런 문제로 가득하다. 농촌에서 비싼 농기계를 필요 이상으로 많이 사는 것도 그런 종류의 문제다.
가공업이나 관광농업 등 특별한 방법이 없는 농가의 농업소득은 해마다 줄어든다. 농사규모도 그리 크지 않다. 그런데도 생각보다 비싼 농기계들이 많다. 한 대에 2천만 원이 넘는 트랙터도 마을에 여러 대 있다. 젊은 농부들 중에는 그렇게 비싼 기계를 사서 돈을 받고 논을 갈아주는 일을 많이 해서 최대한 기곗값을 뽑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가동률이 높지 않은 트랙터들도 많다.
‘서로 도우며 사용하면 좋을 텐데…. 결국 기계 파는 대기업만 돈 버는 거 아냐?’
나는 늘 이런 의문을 가졌다. 이런 나의 의문은 어느 날 동네사람들과 술을 마시다 풀렸다.
“아는 사이에 괜히 기계 때문에 기분 상할 때가 있거든.”
동네 형이 자신이 트랙터 산 얘기를 하며 한 얘기다. 나아가 남에게 기죽지 않으려고 사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이게 보통사람들의 삶 아닌가.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있는 소비 행태다. 이런 관행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고, 어떻게 하면 완화할 수 있을까? 이것이 우리의 현실적인 고민지점이다.
자동차
: 되도록 사지 않고 대중교통이나 공동이용 차를 이용한다. 꼭 필요하다면, 소형차나 중고차를 살 일이다.
옷
: 정장은 두세 벌이면 족하다. 재활용품점을 많이 이용한다.
식사
: 되도록 외식을 하지 않고, 하더라도 대중음식점을 이용하며 음식도 너무 많이 시키지 않는다. 시중 음식 중에는 몸에 좋지 않은 것도 많다. 간단한 몇 가지 요리는 남자도 배워서 자주 해먹도록 한다. 술도 술집에서 마시면 값도 비싸고 시끄러우니, 집이나 마당 또는 마을회관 등 돈이 안 들고 조용한 곳에서 마신다.
결혼식과 장례식
: 손님을 많이 부르지 않고, 의식은 검소하게 하되 의미를 살리도록 한다. 축의금과 조의금 등은 되도록 받지도 말고 주지도 말자. 하더라도 관계와 형편을 고려하되, 부담되지 않을 정도로 하자.
집
: 비싼 동네에 크고 비싼 집을 소유하거나 임대할 필요는 없다. 작고 싸되 최소한의 편의가 제공되는 정도면 충분하다. 공공이 앞장서서 싸고 쾌적한 임대주택을 많이 공급해야 한다. 은퇴하면 농촌에서 집을 마련하는 게 좋고, 이때에도 결코 큰집을 마련할 일은 아니다.
자녀교육비
: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되도록 독립시킨다. 대학 이후의 학비와 생활비 등은 스스로 책임지도록 한다. 결혼도 당연히 자신들이 번 돈으로 해결하도록 한다. 자녀와 관계는 즐거움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친구 같은 존재면 충분하다.
여가생활
: 해외여행이나 골프 등 돈이 많이 드는 여가생활은 되도록 하지 않는다. 각자의 형편과 취미에 맞게 등산, 독서, 국내여행 등 돈이 적게 들면서도 즐거운 방식을 개발하도록 한다. 봉사활동도 유익한 방법 중의 하나다. 봉사활동을 오래 하면 전문성이 생겨 보람도 배가되고, 봉사활동을 하는 시간에는 달리 돈 쓸 일이 없다.
기계와 공구
: 되도록 이웃과 함께 쓰거나 공공의 것을 빌려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