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PRIZE 우주여행의 시작>
버트 루탄(Burt Rutan)은 눈앞에 아스라이 뻗은, 세계에서 가장 긴 활주로를 바라보았다.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에 자리 잡은 에드워드 공군기지의 12킬로미터에 달하는 부분 포장 활주로였다. 추적 항공기에 몸을 실은 버트의 바로 왼쪽에는 자신의 야심작 보이저(Voyager)호가 있었다.
엿가락을 늘인 것처럼 보이는 납작하고 하얀 이 비행기는 자체 중량이 약 1,100킬로그램에 쌍동선의 선체처럼 붐(boom)이 양쪽에 붙어 있고, 긴 막대기 모양의 날개에는 3,200킬로그램에 이르는 연료를 싣고있었다. 몇 분 후면 보이저호는 중간 기착이나 재급유 없이 세계를 일주하는 목숨을 건 도전을 하러 이륙할 예정이었다. 항공 전문가들은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았다. 그 이유는 보이저호의 설계와 제작이
기존 방식을 많이 벗어난 데다, 버트의 진짜 목표는 25년 가까이 깨지지 않고 있던 비행 기록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조종사가 탈진할 것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보이저호가 도중에 착륙할 것이라고 믿기에 충분했다. 그만큼 이 비행은 조종 기술과 조종사의 지구력 및 혁신적인 설계에 대한 시험이었다.
버트는 찰스 린드버그가 1927년 스피릿 오브 세인트루이스호를 만들 때 그랬던 것처럼 보이저호의 무게를 최대한도로 줄였다. 렌치가 되었든 드라이버가 되었든 기내 공구는 모두 속을 파냈다. 뜨거운 사막의 태양으로부터 기체를 보호하기 위해 기체 표면은 흰색 페인트로만 엷게 도포하였다. 기체 외판은 페이퍼 허니콤을 사이에 채워 넣은 그래파이트 섬유 복합재 두 겹만으로 만들었다. 여분의 장비를 모두 없애 장비
하나가 고장 나면 대체품이 없을 정도였다.
버트가 추적 항공기에서 내려 활주로에 서 있는 보이저호 오른편으로 다가갔다. 연료 무게 때문에 제대로 조종이 될까 하는 걱정이 설핏 들었다.
하지만 버트는 남들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데서 돌파구를 찾아내곤 하던 사람이었다. 버트는 컴퓨터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연필과 계산자와 운형자를 이용해 자신이 구상한 비행기 아이디어를 설계했었다.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구레나룻을 기른 이 이단아는 비행기를 보면 1~2파운드 오차 이내로 무게를 추정할 수 있을 정도였다. 버트가 파란 눈을 빛내며, 오늘날 상업용 여객기의 기본 형태인 후퇴익(뒤쪽으로 젖혀진 날개)의 이론을 독학으로 찾아낸 R. T. 존스(R. T. Jones)처럼 반항적인 걸음을 옮겼다. 존스와 마찬가지로 버트도 항공업계에서 자기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만드는 것을 즐겼다.
1965년 캘리포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교에서 항공공학 분야의 학위를 받은 버트는 에드워드 공군기지에서 민간인 비행 시험 기술자로 근무하게 되었다. 당시 버트가 맡은 일은 맥도넬 더글러스(McDonnell Douglas)사가 개발한, 강력한 힘을 자랑하던 전폭기 F-4 팬텀(Phantom)의 잦은 사고 원인을 밝히는 것이었다. 이 기종에서 ‘비행 제어 상실’로 보이는 사고가 60건 넘게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비행 제어 상실은 조종사가 조작도 하지 않았는데 비행기가 저절로 실속이나 스핀 상태가 되는 현상이다. 그래서 1968년 에드워드 공군기지에서는 이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시험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되었는데, 버트가 이 프로젝트의 비행 시험 기술자로 선정되었다. 버트는 제리 젠트리(Jerry Gentry)가 조종하는 F-4 뒷자리에 앉아 하늘로 날아올랐다. 두 사람은 목숨을 걸고 스핀에 돌입했다. 이런 시험비행을 거쳐 버트는, F-4 조종사들이 제어 상실과 스핀을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상태에 빠졌을 때 벗어날 수 있도록 비행 설명서를 대폭 수정하였다. 버트는 ‘제어를 위한 준비’라는 교육훈련용 영화도 만들었다. 그러고는 젠트리와 함께 전 세계에 있는 미 공군 F-4 조종사 전원을 상대로 직접 내용을 설명했다. 이를 위해 터키의 인시를릭이나 태국의 방콕에 이르기까지 48군데의 공군기지를 정신없이 누비고 다녔다. 에드워드 공군기지는 가장 빠르고 가장 실험적인 군용 제트기를 시험하던 곳이었고, 척 이거(Chuck Yeager)가 세계 최초로 음속보다 빠른 속도로 비행한 곳이기도 하며, X-15가 준궤도 우주비행을 한 곳이었다.
1972년 버트는 에드워드 공군기지를 떠나 캔자스에 있는 비드항공(Bede Aircraft)에 입사했다. 비드항공에서 맡은 일은 버트와 잘 맞지 않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버트는 1974년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모하비 사막 비행 대기선에 아마추어 제작자들이 따라 만들 수 있도록 소형 비행기의 시제기를 설계하고 개발하는 루탄 항공기 제작소를 설립했다. 이렇게 해서 집에서 비행기를 직접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제작자료 판매 사업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 초, 조립하는 사람이 실수하면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깨닫고는 루탄 항공기 제작소를 접고, 여러 유형의 비행기를 제작하고 시제기도 만드는 ‘스케일드 컴퍼지츠(Scaled Composites)’를 설립했다.
그리고 1986년이 되었다. 버트는 추운 12월 아침 성지인 에드워드 공군기지의 활주로를 바라보며, 자신의 작품이 역사를 새로 쓰는 것은 고사하고 제대로 날아오르기나 할까 하는 걱정을 했다. 경량 비행기가 이 정도 무게로 날아 본 적이 없었다. 버트는 기체의 기계적 신뢰성을 생각해보았다. 자신의 팀원들이 2년간 총 375시간에 걸쳐 68번의 시험비행을 했었다. 시험비행 중 조종실의 화재부터 프로펠러가 고장 나면서 엔진이 받침대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고까지 모두 7번이나 심각한 기계적 결함을 겪었다. 이제 이 비행기를 200시간 넘게 무착륙으로 공중에 띄울 계획이었다. 첫 비행경로는 연료 무게가 가장 많이 나가는 상태로 바다 건너 하와이를 향해 서쪽으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이 비행기는 난기류에 약했다. 버트는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조종사가 있다면 자기 팀 조종사밖에 없었다. 바로 자기 형이었다.
딕 루탄(Dick Rutan)은 검은 카우보이모자를 벗어 친구에게 건네고, 공중전화 부스를 옆으로 눕힌 정도 크기의 보이저호 조종실로 올라갔다. 체구는 작지만 겁이 없기로 소문난 부조종사 지나 이거(Jeana Yeager)는 좌석벨트도 착용하지 않고 딕의 뒷자리에 앉았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좌석벨트도 없앴던 것이다. 한때는 연인 사이였지만 이제는 거의 말도 안 하고 지내는 두 사람이 함께 지구를 한 바퀴 돌 예정이었다.
마흔여덟의 딕은 터무니없어 보이는 이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틀림없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틀 전 팀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는 테이프를 녹화해 브루스 에번스(Bruce Evans) 팀장에게 건네며 자신이 죽거든 틀어 보라고 했었다. 딕은 전투기 조종사로 훈장을 받은적이 있으며, ‘저돌적인 사람 중에서도 가장 저돌적인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서른네 살의 부조종사 지나는 해군의 발명가 겸 로켓공학자 밥 트루액스(Bob Truax)의 조수로 일한 적이 있는 숙련된 기계 제도사였다. 두 사람은 24년 전 미 공군 조종사들이 보잉의 B-52 스트래토포트리스(Stratofortress)를 타고 세운 기록을 두 배로 늘릴 작정이었다. 딕과 지나는 5년 동안이나 이 꿈을 안고 살았다. 두 사람은 모든 것을 보이저호에 쏟아부었다. 수중에 있는 돈을 다 털어 넣는 바람에 집세 낼 돈조차 없었다. 두 사람은 수십 명을 찾아다니며 후원 요청을 하였다. 미국 기업가 로스 페로(Ross Perot)는 후원을 하려다 막판에 딕과 지나가 부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후원을 거부했다. 시저스팰리스(Caesars Palace)의 소유주는 자기네 카지노 주차장에서 비행기가 이륙하고 착륙한다면 후원을 하겠다고 했다. 긴 활주로가 필요했기에 불가능한 제안이었다. 아주 약해 보이는 이 비행기는 모하비 공항에서 무상으로 빌려준 격납고에서 소액 기부자들의 도움을 받아 제작되었다. 비행기 부품도 기부를 받은 것이었고, 기술자도 대부분 무상으로 자원한 사람들이었다.
딕은 어린 시절부터 하늘을 나는 모험을 꿈꾸며 살았다. 엄마가 에어쇼에 데리고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처음 비행기를 타 보았다. 타이어 접지면이 다 닳은 노란색 구형 2인승 파이퍼클럽(Piper Club)이었다. 누군가 나오더니 프로펠러를 손으로 돌려 시동을 걸었다. 이륙은 잔디밭에서 이루어졌다. 딕은 비행기가 공중에 뜨자마자 안전벨트를 풀고 소형 비행기 뒷자리에서 일어섰다. 조종사의 눈앞에 무엇이 보이는지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 순간 지금까지 자기가 원하던 광경이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딕은 열여섯 살이 되던 첫날 바로 조종사 면허를 땄다. 하늘을 날 수 없을 때는 오토바이를 타고 줄지어 선 포도나무의 좁은 이랑으로 정신없이 달리며, 경찰 눈을 피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꼈다. 경찰이 자기를 볼 때마다 과속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기 때문이었다. 딕은 동생보다 안식일을 더 무서워했다. 그래서 안식일이 되면 몰래 영화관에 들어가 남의 눈에 띄지 않는 뒷자리에 앉아 있다가, 영화가 끝나면 정문으로 나오지 않고 뒷문으로 나왔다. 딕은 어린 시절 내내 종말이 온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하지만 매주 딕이 바라던 유일한 종말은 안식일의 종말이었다. 토요일 오후가 되면 자리에 앉아 지평선을 바라보며, 어서 빨리 해가 져 지옥 같은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제7일안식일예수재림교도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였지만, 딕은 스무살이 되던 1958년 공군 사관후보생으로 입대했다. 딕은 F-100 슈퍼 세이버(Super Sabre) 초음속 제트기를 타고 북베트남 상공을 날며 공중전을 벌이다 총알구멍으로 벌집이 된 비행기를 몰고 돌아오곤 했다. 딕은 아드레날린이 솟는 느낌을 즐겼다. 비행 횟수가 늘어날수록 위험한 임무를 맡으려고 했다. 동료들이 죽는 모습도 보았다. 조종실에 불이 붙어
타 죽는 조종사도 있었다. 지상에서 적의 정글도에 난도질당하는 동료를 본 적도 있었다. 임무 중에는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임무가 끝나고 지상에 내리면 가끔 활주로 끝으로 걸어가 토할 때도
있었다.
이런 딕이었기에 동생 버트가 보이저호 비행 계획을 제안하자 바로 수락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초 딕은 동생 회사에서 테스트 파일럿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미 자가용 비행기 롱(Long-Ez: 버트의 조립부품 세트로 만든 비행기였다)를 타고 장거리 비행 분야에서 몇 번 기록을 세운 바 있었던 딕은 새로운 모험거리를 찾던 중이었다. 어느 날 버트, 딕, 지나 세 사람이 ‘모하비 오버패스 카페’에서 점심을 먹던 중, 딕이 자기는 곡예 비행에 쓸 새로운 유형의 비행기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버트가 몇 년 동안 생각해온 다른 멋진 계획이 있다고 했다. 탄소섬유와 복합재가 등장해 비행기 재료로 쓸 수 있게 되면서 가능해진 일이라고 했다. 버트는 데리야키 스테이크를 씹어 가며 냅킨 위에 한 겹의 긴 날개를 단 비행기를 그렸다. 딕과 지나는 버트의 말을 듣자마자 재급유 없이 무착륙으로 세계일주 비행을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항공계의 마지막 첫 번째 대기록이 될 터였다.
버트의 계산에 따르면, 비행기가 지구를 한 바퀴 돌려면 비행기 무게 1킬로그램당 7킬로그램의 연료가 필요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4만 킬로미터를 비행할 만한 양의 연료를 욱여넣고도 이륙할 수 있을 만큼 기체를 가볍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알루미늄 기체에 비해 무게가 반밖에 되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강도를 제공하는 탄소섬유가 부분적 해결책이 되어주었다. 추진 효율은 물론 공기역학적 효율도 다른 어떤 경량 항공기보다 뛰어나야 했다. 프로펠러도 더 효율적이어야 했고, 엔진이 연료를 에너지로 전환하는 능력도 더 뛰어나야 했다. 조종석에 가압장치를 설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비행은 낮은 고도에서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딕과 버트는 중량 대 안정성 문제를 놓고 자주 다투었다. 딕이 비행기를 되돌릴 수 없다고 말하면, 버트는 지구를 한 바퀴 돌 것이므로 되돌릴 필요가 없다고 했다. 딕이 폭풍우를 만날 경우 비행기가 부서질 것이라고 말하면, 버트는 비가 오는 쪽으로 비행하지 말라고 했다. 버트가 레이더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면, 딕은 앞 못 보는 비행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루탄 형제가 얼굴을 맞대고 으르렁거리면 자리를 떠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결국, 두 형제는 합의점을 찾았다. 어릴 때부터 버트는 비행기를 디자인했고, 딕은 비행기를 몰았다. 누이 넬(Nell)은 스튜어디스였다. 보이저호에는 길고 가느다란 날개를 달기로 했다. 아주 약해서 새 날개처럼 퍼덕 거릴 정도였다. 연료탱크는 19개로 분리하였다. 총 이륙중량의 73퍼센트가 연료 무게였다. 딕은 말하자면 하늘을 나는 연료탱크를 조종하려는 격이었다.
“에드워드 관제탑, 여기는 보이저 원.” 1986년 12월 14일 이른 아침, 딕 루탄이 에드워드 공군기지 활주로 위에서 말했다. “이륙준비가 완료 되었다.”
“이륙을 허가한다. 성공을 기원한다.” 오전 8시에 이륙허가가 떨어졌다. 근처에서 추적 항공기를 타고 있던 버트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세계 최고 수준의 조종사 마이크 멜빌이 추적 항공기를 몰고 처음 몇 구간 동안 보이저호를 따라갈 준비를 했다.
지나가 큰 소리로 속도를 읽었다. “45, 61, 65…….”
보이저호가 속도를 내자 연료를 실은 날개 끝이 튤립의 긴 잎처럼 처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활주로에 닿더니 바닥에 끌리기 시작했다.
“날개가 바닥에 끌리고 있어. 날개 끝에 연료가 들어 있는데 말이야.” 비행기를 몰며 따라가던 멜빌이 말했다.
“조종간을 잡아당기라고 해!” 버트가 소리 질렀다. “날개가 땅에 닿는다고 말해. 조종간을 잡아당겨야 해!”
지나는 단조로운 목소리로 계속 속도를 외치고 있었다. “84, 87, 90.” 멜빌은 불이 날까 봐 겁이 났다. 보이저호는 지상에서 100노트에 도달해야 이륙 후 적정 상승속도를 얻을 수 있었다.
보이저호의 속도가 올라가자 날개가 천천히 들리더니 3센티미터가량 땅에서 떨어졌다. 그러다 5센티미터, 8센티미터로 점점 높아졌다.
“날개가 들렸어! 야, 날개가 위로 올라갔다고!” 멜빌이 소리쳤다.
지나가 큰 소리로 속도를 읽었다. “94, 97, 100.” 비행기가 이륙했다.
“100노트! 세상에! 100노트에 도달했어!” 버트가 소리 질렀다.
멜빌과 버트, 그리고 추적 항공기 뒷좌석에 앉아 있던 멜빌의 아내 샐리는 입을 다물었다. 출발선에 진입하는 것조차 이렇게 힘들다니! 버트소유의 쌍발기 더치스(Duchess)를 탄 세 사람은 캘리포니아가 눈에 들어 오지 않을 때까지 보이저호를 따라갈 계획이었다. 날개 끝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날개 끝부분에 철사가 삐져나와 있었고, 윙릿(winglet: 날개 끝에 수직으로 부착된 작은 날개)이 간신히 붙어 있는 것 같았다. 버트가 딕에게 안정성 시험을 해보라고 하자 오른쪽 윙릿이 떨어져 나가 버렸다. 왼쪽 윙릿도 금방 떨어질 것처럼 보였다.
버트가 딕에게 말했다. “그만두면 안 돼. 그만두면 안 돼.” 딕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딕도 중단할 생각이 없었다. 나침반에 서쪽을 의미하는 ‘W’가 표시되어 있었고 딕은 그 방향으로 날았다. 세 사람이 탄 더치스의 연료계가 아래로 뚝 떨어졌다. 에드워드 공군기지로 돌아가려면 바로 방향을 돌려야 했다. 멜빌이 비스듬히 날며 잘 다녀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버트는 아무 말 없이 수평선만 바라보았다. 시선이 미치는 곳까지 끝없이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브루스 에번스(버트가 아무 조건 없이 말을 들어주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가 이끄는 보이저 팀원들은 모하비 공항 77번 격납고에서 24시간 내내 딕, 지나와 접촉을 유지했다. 버트와 멜빌은 자기네가 새로 구입한 업무용 항공기 비치크래프트 스타십(Beechcraft Starship)을 시험비행하며 시간을 보냈다. 버트는 형이 찾으면 언제든지 대화할 수 있도록 항상 대기 상태에 있었다. 형이 찾지 않으면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도록 그냥 내버려두었다. 멜빌은 밤마다 보이저호의 여정을 추적하며 딕이나 지나와 이야기를 나눴다. 또, 버트가 충고를 한답시고 딕이 들을 필요도 없는 말을 해 딕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막아주는 역할도 했다.
부서질 것 같던 날개가 마침내 제 기능을 발휘하며 비행기가 에드워드 공군기지 활주로에서 솟아오르자 딕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비행기가 떴어! 비행기가 하늘로 떴다고!” 지나가 등을 바닥에 대고 누운채 딕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당신이 해낼 줄 알았어요.” 지나가 정말로 그렇게 믿었던지 아니면 그냥 해본 소리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그 말을 들으니 자신감이 배가되었다. 딕이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섬세한 솜씨를 가진 테스트 파일럿이 보이저호를 띄웠어.” 딕은, 만약 날개 끝이 계속 찢어졌거나 연료 탱크가 터졌더라면 두 사람은 이미 죽은 목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딕은 그 내용을, 자신이 ‘어찌 됐든 상관없어’라고 이름 붙인 비망록에 기재했다.
위험하다는 느낌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필요할 때만 이야기했다. 지나는 연료 기록부 관리를 맡았고, 비행기는 몰지 않았다. 지나는 보이저호의 몇몇 부품을 직접 만드는 등 프로젝트 성공의 핵심역할을 했다. 그런데 다발기 조종 자격이나 계기비행 자격 등 보이저호를 조종하는 데 필수적인 면허는 땄지만, 레이더 사용법, 자동조종장치나 항법장치를 설정하는 법, 무전기 사용법 등 다른 핵심 장비를 다루는 기술은 배우지 않았다. 딕은 간간이 날씨가 괜찮으면 자동조종장치로 돌려놓고 두 시간씩 잠을 잤다. 딕은 비스듬히 드러누운 자세로 자신과 팀원들이 직접 만든 계기판을 들여다보며 비행기를 조종했다. 가끔씩 지나가 조그맣고 예쁜 글씨로 깔끔하게 작성한 체크리스트도 점검했다. 지나가 없었더라면 이 프로젝트가 이루어질 수 없었겠지만, 지금 두 사람이 살아서 공중에 떠 있는 이유는 오직 딕 덕분이었다.
딕은 잠시 휴식을 취하는 중에도 자동조종장치가 고장 나지나 않았을까 하고 마음을 졸였다. 눈을 감고 조금 쉬려고 할 때마다 조종간이 들려 아무리 움직여도 회복되지 않는 피치업 상태가 되는 환상에 시달렸다. 두 사람은 폭풍우도 만났고, 앞이 잘 보이지 않거나 시계 제로인 상황도 겪었다. 둘째 날, 비행기는 태풍 마지(Marge)를 뚫고 날았다. 셋째날은 자동조종장치가 고장 났다. 5일째 되는 날 중앙아프리카를 횡단하던 중 두 사람은 무시무시한 폭풍우를 만났다. 딕이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최악의 폭풍우였다. 구름을 뚫고 지나갈 때마다 비행기가 위아래로 들썩이다 결국 기체가 옆으로 90도 기울어 버렸다. ‘이제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딕의 머리를 스치는 순간 기적처럼 비행기가 다시 자세를 바로잡았다. 조종사 어니스트 갠(Ernest Gann)은 저서 《운명은 사냥꾼과 같다(Fate Is the Hunter)》에서 그런 순간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위험은 갑자기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우리는 무대 뒤를 엿보다가, 죽은 사람이 보았을 광경을 목격했지만 다시 살아났다. 그 기억은 우리 뇌리에 각인되어 평생 우리를 따라 다녔다.’ 아프리카에서 만난 최악의 폭풍우를 벗어나자 시커먼 안개가 앞을 가로막았다. 안개가 얼마나 짙은지 마치 그 위로 걸어가는 기분이었다. 산꼭대기를 들이받을 뻔한 적도 있었다. 스리랑카 상공을 지날 때는 엔진 냉각수가 새어 나왔다. 태평양 상공에서는 윤활유 압력이 떨어졌다. 딕이 잠든 지 20분 정도 지났을 때 지나가 깨워 빨간 불이 들어온 윤활유 압력계를 가리켰다. 엔진이 과열되었다는 신호였다.
딕은 매일 러시안룰렛을 하는 기분이었다. 방아쇠를 당긴다. 찰칵. 후유, 하루 더 살았구나. 딕은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할 일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면서도 매일 밖을 내다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저 바깥 어딘가에서 재앙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 밤 바다 위를 날다 맞닥뜨릴지도 모르고, 내일 낮에 만날지도 모른다. 어쨌든 때가 되면 이 임무는 끝이 나고 우리는 죽을 것이다.’ 만약 비행기에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한다면 두 사람은 조종실에서 나오지도 못할 터였다. 원심력 때문에 비행기가 어딘가에 부딪힐 때까지 꼼짝도 못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일론 멜빵이 달린 조그만 낙하산을 메고 있었고, 축구공 크기로 압축되어 밀폐된 구명보트도 있었다. 하지만 딕이 볼 때, 해치를 열고 뛰어내릴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비행기를 타는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은 누에고치처럼 생긴 이 조그만 조종실로 녹아 들어왔던 것이다. 비행 후 이틀이 지나자 바깥일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보이저호가 출발한 지 9일째 되는 날, 딕과 지나가 에드워드 공군기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왔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밤에 코스타리카를 지나 캘리포니아 해안을 따라 올라오는 중이라고 했다. 버트와 멜빌은 샌디에이고 서쪽 바다 위에서 보이저호를 만날 작정으로 더치스에 올라탔다. 12월 23일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해안선에서 1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 깜빡이는 불빛이 보였다. 보이저호라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항행등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항행등은 윙릿과 함께 떨어지고 없었다.
멜빌은 그 불빛이 딕이 모는 비행기이기를 바라며 무전으로 섬광등을 껐다 켜 보라고 했다. 섬광등이 꺼졌다. 섬광등이 다시 들어오는 순간 멜빌과 버트의 눈에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어린애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그러다 정신을 추스른 두 사람은 웃으면서 눈물을 닦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먼동이 희끄무레 밝아 오며 보이저호의 검은 윤곽이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보이저호를 보았을 때는 날개가 휘고 손상을 입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똑바로 느릿느릿 날고 있었다. 마치 공기의 물결 위로 떠가는 하늘의 배 같았다.
그때 보이저호 조종간을 잡고 있던 딕은 과연 에드워드 공군기지에 착륙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도착을 20여 분 정도 남겨 놓은 지금까지도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에드워드 공군기지는 큰 폭격기나 전투기를 시험비행하는 곳이다. 나는 별 볼일 없는 모하비 사막의 가내 수공업자가 아닌가. 누가 우리 같은 사람을 신경이나 쓰겠는가?’ 그러면서 ‘기지에 내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을 했다. 에드워드 공군기지에 착륙하지 못하면 기록을 인정받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항공 기록을 승인하는 국제단체인 국제항공연맹(FAI: Fédération Aéronautique Internationale)은 같은 장소에서 이륙했다가 착륙하는 폐쇄항로 기록만 인정하기 때문이었다.
딕이 에드워드 관제탑을 불러냈다. “우리 비행기는 20분 후면 도착한다. 당신들이 얼마나 바쁜지는 알고 있다. 그래도 제한구역 착륙을 허락해줄 수 있겠는가?” 딕은 제한구역인 드라이레이크의 끝부분에 착륙하면 다른 항공기에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관제탑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에드워드 관제탑이다. 오늘은 비행을 전면 중단하고 당신 비행기가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다.”
딕은 어안이 벙벙했다. ‘우리 때문에 비행을 전면 중단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기는 아흐레 동안 화물열차 수준의 소음이 들리는 캡슐에 갇혀 제대로 된 잠 한숨 못 잤으니 그럴 만도 했다. 보이저호가 ‘믿을 수 없는 보이저호, 무착륙 세계일주를 위해 출발하다’라는 제목으로 그 주 《뉴스위크(Newsweek)》 표지를 장식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비행기가 샌 가브리엘 산맥을 통과할 때는 짙은 구름층이 눈에 띄었다. 에드워드 기지 남쪽 끝에 이르자 딕은 넓은 베이지색 기지가 보일 것이라 예상하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검은색, 은색, 베이지색이 뒤섞여 있었다. 수천 명의 인파도 눈에 띄었다. 활주로는 트럭, 위성 방송 안테나, 캠핑카에 둘러싸여 있었다. 우주왕복선을 케이프커내버럴(Cape Canaveral)까지 운반한 보잉747의 모습도 거대한 나사 격납고 앞에 보였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멜빌이 호위 조종사로 바퀴와 활주로 사이의 높이를 불러주는 가운데 딕과 지나가 탄 비행기가 땅에 닿았다. 9일 3분 44초에 걸친 42,410킬로미터의 여정이었다. 이 장면은 전 세계에 생방송으로 중계되었다.
딕은 동료들에게 FAI 감독관이 와서 비행기록을 인정해줄 때까지 비행기 곁으로 오지 말라는 말을 했었다. 그만큼 비행을 끝내고도 기록을 인정받지 못하는 악몽에 시달렸다. 딕이 조종실 문을 열자 카메라와 마이크를 든 사람들이 떼로 몰려오는 소동이 벌어졌다.
새로운 도전이 딕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걸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딕은 문을 잡고 자기 몸을 끌어올려 조종실에서 벗어난 뒤 비행기 위에 주저앉았다. 9일 동안이나 움직이지 못하다 보니 다리가 약해져 국수 가락처럼 느껴졌다. 딕은 동체 위에서 자기 몸을 뒤로 더 밀어낸 다음 다리를 움직이며 스트레칭을 했다. 들것에 실려 나갈 수는 없었다. 전투기 조종사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딕은 자리에 앉아서 관중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한 뒤 다리를 밀었다가 잡아당겼다. 한참동안 그 동작을 반복한 딕은 마침내 검은 카우보이모자를 다시 받아 머리에 쓰고 조심스럽게 땅으로 내려왔다.
버트가 가장 먼저 달려와 딕을 끌어안았다. 12월 23일이었다. 생애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딕은 비행기를 타고 큰일을 성취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데 그 일이 이루어졌다. 사막 한가운데 자리 잡은 잡동사니들이 팀을 이뤄, 기존 상식에 도전하고 온갖 회의적인 시각을 무시한 끝에 역사를 새로 쓴 것이다. 버트에게는 ‘모하비 사막의 마술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런 버트의 작업복 소매 속에는 훨씬 더 많은 마술이 감춰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