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린드버그가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XPRIZE 우주여행의 시작>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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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GUU4D8P.jpg?type=w1200 에릭 린드버그(Erik Lindbergh)


에릭 린드버그(Erik Lindbergh)는 눈 덮인 레이니어 산 비탈에 친 텐트에서 새벽 두 시에 잠을 깨 밖을 내다보았다. 시커먼 하늘에 무수한 별이 빛나고 있었다. 반짝이는 별부터 조금 어둠침침한 별, 구름같이 보이는 별까지 수많은 별이 점점이 이어진 모습이 마치 하늘에 카펫을 깔아 놓은 것 같았다. 바람은 잔잔했고, 산도 잠든 것처럼 보였다. 스물한 살의 청년은 눈을 감고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셨다. 다음날도 날씨가 절대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1986년 8월, 이날 아침 에릭의 목표는 케스케이드 산맥 최고봉인 높이 4,392미터의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이었다. 레이니어 산 정복이 자기 할아버지가 1927년 비행기를 몰고 대서양을 건너 파리에 간 것처럼 역사에 남는 사건은 될 수 없을 터였다.


찰스 린드버그(Charles Lindbergh)



당시 할아버지 찰스 린드버그는 그 일로 영웅이 되었고,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에릭에게는 고작 레이니어 산을 오르는 것이 파리요, 대기록이었다. 에릭은 남들이 ‘린드버그 가문’이니까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예상하는 일은 무엇이든 피하려고 마음먹었다. 친구가 에릭에게 조종사 면허를 따라고 얘기했지만, 자신이 보기에는 너무나도 빤한 일 같아 포기해 버렸다. 집안사람들도 면허를 따기는 해도 조종사가 된 사람은 없었다. 에릭이 마음먹고 있는 유일한 비행은 자신이 스키 타러 자주 가는 산의 벼랑에서 뛰어내리는 것이었다.

에릭은 장비를 다시 꾸리기 시작했다. 에릭이 있는 곳은 레이니어 산 동쪽 사면에 있는 해발 2,877미터의 캠프 셔먼이었다. 레이니어 산은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남동쪽으로 한 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얼음에 뒤덮인 활화산이다. 에릭은 해가 떠서 눈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커지기 전에 눈 덮인 구간을 벗어나기 위해 새벽 세 시 전에 출발할 예정이었다.

정상 부근은 빙하에 덮여 있고, 계곡 아래쪽은 야생화와 호수와 오래된 삼림지대가 어우러진 레이니어 산은 그림엽서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산꼭대기는 일 년 내내 위험했다. 군데군데 크레바스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바위가 굴러떨어지고, 날씨는 수시로 바뀌었으며, 빙하가 계속 흘러내렸다. 5년 전 이 산에서 미국 역사상 최악의 등반사고가 일어나 산악인 11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시신도 찾지 못하였다. 거대한 빙하가 다이너마이트처럼 폭발하며 떨어져 그들을 덮쳤기 때문이었다.

에릭과 에릭보다 등산 경험이 많은 네 살 위의 형 리프(Lief), 그리고 외사촌 크레이그 보겔(Craig Vogel)은 오트밀로 간단히 아침을 때우고, 각자 20킬로그램의 배낭을 메고 어둠 속에서 길을 떠났다. 형 리프가 앞장섰고, 에릭은 외부 프레임이 부착된 낡은 초록색 나일론 배낭을 메고 뒤를 따랐다. ‘고기 수레’라는 별칭이 붙은, 얼룩지고 낡아빠진 이 배낭은 10대 시절 에릭이 가족과 함께 사슴 사냥을 다닐 때부터 쓰던 것이었다. 에릭 형제들은 아버지와 함께 노스 케스케이드 고원지대의 가파른 산길을 오르며 사슴 사냥을 했다. 사냥이 끝나면 에릭은 천으로 싼 사슴 고기를 ‘고기 수레’에 가득 담아 돌아오곤 했었다.

이날 새벽 추운 날씨 속에 에릭은 난생처음으로 레이니어 산 정상에 오르겠다는 큰 목표를 안고 출발했다. 린드버그 팀은 밧줄로 서로의 몸을 연결한 채 헤드램프를 켜고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에먼스 빙하를 올랐다. 8시간 이내에 정상에 도착하는 것이 목표였다. 정상에 도착하면 캠프 셔먼으로 다시 내려와 나머지 장비를 챙긴 다음, 애초 출발했던 해발 1,340미터에 있는 화이트리버 야영지로 돌아가야 했다.

에릭은 이전에도 두 번이나 정상에 도전했지만 실패했었다. 한 번은 주철로 만든 아버지의 아이젠, 스키, 여분의 등산화 등 장비를 너무 많이 챙겨 가는 초보자의 실수를 저질렀다. 또 한 번은 루트 선택을 잘못해 캠프 셔먼보다 300미터나 높은 고도까지 올라갔다가, 다른 산악인들이 등정을 시작하려고 일어나는 시간인 새벽 두 시나 되어서야 캠프에 도착했다.

키가 크고 날씬하면서 탄탄한 체형의 에릭은 몸을 쓰는 일에는 무엇이든 자신 있었다. 열두 살 때는 워싱턴 주 체조 챔피언이었다. 주 종목은 마루운동이었지만, 모든 종목을 합한 종합경기에서 우승하였다. 침실 선반은 수상스키 시합에서 받은 트로피로 꽉 차 있었다. 에릭은 체조시간에 손만 이용해 로프를 잡고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교내에서 턱걸이를 가장 많이 했으며, 태권도를 배워 머리 높이로 뛰어 옆차기를 할 수 있었다.

시애틀에서 배를 타면 금방 도착하는 조그만 섬마을에서 자란 에릭은, 고등학교 시절에는 지독한 스키광이었다. 에릭은 레이니어 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크리스털 마운틴 리조트에서 접시를 닦거나 눈을 치우는 일을 하며 스키를 탔다. 때로는 아이다호 주에 있는 선밸리에서 스키 시즌을 보내기도 했다. 지금은 워싱턴 주 올림피아에서 지내며, 에버그린 주립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정치생태학을 공부하고 있었지만, 고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대학에서도 공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에릭은 외딴 산골에서 고급 스키장을 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머리 쓰는 것보다 몸 쓰는 것이 훨씬 좋았다.

에릭 형제들은 어릴 때부터 집안의 전통을 떠벌리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에릭은 어린 시절 같은 반 친구가, 할아버지가 쓴 퓰리처상 수상작 《스피릿 오브 세인트루이스(The Spirit of St. Louis)》를 읽고 있다는 말을 하기 전까지는 자기 성이 가진 의미를 거의 모르고 있었다. 에릭이 알고 있던 할아버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가 아니라 그냥 ‘할아버지’였다. 키가 크고 머리가 벗어지기 시작하던 할아버지는 에릭에게 귀를 움직이면 50센트를 주겠다거나(에릭은 할 수 있었다), 장난감 시코르스키(Sikorsky) 헬리콥터를 사 주시기도 하던, 한마디로 어른들하고 있을 때보다 아이들하고 있을 때가 더 편해 보이던 분이었다.

자식들 눈에는 완벽주의자인 데다 체크리스트를 만들 정도로 꼼꼼한 사람이면서 여기저기 연설하러 다니는 사람으로 보이던 찰스 린드버그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때는 다정다감한 면도 있었다. 린드버그 일가에게는 할아버지께 1927년의 비행에 관해 여쭈어보지 않는 것이 묵계였다. 한번은 에릭의 삼촌 랜드 린드버그(Land Lindbergh: 찰스와 그의 아내 앤(Anne) 사이의 셋째)가 비행에 관해 물어봤다가 ‘책을 읽어 보라’는 핀잔을 들은 적도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에릭은, 친구들이 자기 집안을 알고 나면 자기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느꼈다. 자기 팔을 잡기도 하고, 가까이 다가서기도 하고, 할아버지를 우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믿는 꿈을 위해 모든 것을 건 사람이고, 민간 항공여행을 촉발한 사람이며, 미지의 세계를 향한 위험한 여정을 통하여 미국 최초의 우주인에게 용기를 불어넣은 사람이라고 했다. 할아버지에게는 논란이 되는 부분도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참전에 반대했고, 나치 독일의 군사력에 감명을 받아 반유대주의 선언을 했기 때문이었다. 가끔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에릭 할머니까지 우상으로 여기기도 했다. 할머니 앤 모로 린드버그(Anne Morrow Lindbergh)도 선구적인 비행사(글라이더 조종사 면허를 딴 최초의 미국 여성)였으며 호평받는 작가였다.

si-80-438q.jpg?type=w1200 앤 모로 린드버그(Anne Morrow Lindbergh)


하지만 할머니의 흔적은 할아버지에 비해 미미했다. 할머니 가 할아버지보다 부드럽기도 했다. 할아버지 찰스가 키가 크고 활동적이며 여기저기 다니기를 좋아했던 데 비해, 할머니 앤은 체구가 작고 관조적이며 한곳에 머무르기를 좋아했었다.

아버지 존 린드버그(Jon Lindbergh)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에서 낳은 둘째 아들이었다. 첫째 아들 찰스 2세는 1932년 한창 걸음마를 배우던 생후 20개월 무렵에 집에서 납치당했다. 범인은 천사 같은 이 곱슬머리 아이의 몸값을 요구하다 결국 살해하고 말았다. 2층에 있던 아기방에서 납치당한 아이는 근처 숲속에서 둔기로 머리를 맞고 숨진 채 발견되었다. 1927년 대서양 횡단비행으로 얻은 명성이(색종이 테이프가 휘날리는 환영 퍼레이드, 사인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아다니는 사진기자들 등) 비극의 원인이 되었다. 신문과 방송이 연일 떠들썩하게 사건을 보도하고, 온갖 사기꾼이 나타나 거짓 주장을 펴자, 린드버그 가족은 영국으로 피신해 한동안 가명을 쓰고 살았다. 후손이 얻은 교훈은 분명했다. 너무 나서면 대가를 치른다.

에먼스 빙하의 회랑지대에 도착하니 동이 트기 시작해, 하늘이 검은색에서 담청색으로 밝아지며 지평선에 선명한 오렌지빛 띠가 나타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름 위로 해가 얼굴을 내밀더니 하얀색이었던 사방을 분홍빛과 연한 자줏빛으로 물들였다. 에릭은 발아래에 있는 거대한 산을 내려다보았다. 세 사람은 불규칙한 걸음을 힘들게 내딛느라 산의 웅장한 아름다움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세 사람이 있는 곳은 경사가 완만했지만 바위 구르는 소리와 눈 무너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평상시에는 슬쩍 비트는 말로 사람들을 잘 웃기던 리프가 오늘은 아무 말도 없었다. 공기가 희박해지며 숨쉬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세 사람은 빙하 위를 이리저리 디디며 올라갔다. 한 발 움직일 때마다 두 번 숨 쉬는 것이 목표였다.

잠시 쉬는 동안 아래를 내려다보니, 많은 산악인이 캠프 셔먼에서 에릭 일행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출발한 지 열 시간이 지났다. 아홉 시간 안에 도착했어야 하는 지점이었다. 세 사람은 빙하가 교차하며 생기는 거대한 얼음기둥인 세락을 통과했다. 금방 무너져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무시무시한 모습이었다. 이제 마지막 남은 오르막길에 접어들었다. 봉우리를 빙 둘러 올라가는 이 길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에릭은 출발할 때부터 이상할 정도로 속도를 내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더니 올라갈수록 점점 힘에 부쳤다. 배낭은 무겁게 느껴졌고, 다리도 평소답지 않게 힘이 없었다. 팔뚝과 손목을 문질러 보았다. 레이니어 산정상인 컬럼비아 봉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에릭은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내 마지막 남은 길을 올랐다.

마침내, 잠도 거의 자지 못한 채 배낭 무게에 짓눌리며 걸어 오르던 에릭과 리프와 크레이그는 숨을 헐떡이며 레이니어 산 정상에 도착했다. 리프가 잠시 머물며 주변을 둘러보자고 했다. 360도로 확 트인 시야에 동굴, 다른 봉우리들, 칼데라 등의 모습이 들어왔다. 정상에서 바라본 경치는 마치 달 표면의 모습 같았다. 험한 협곡과 수십 미터 깊이의 청록색 크레바스로 가득한 이런 경치는, 지금까지 에릭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이었다. 사람이 절대 갈 수 없어 보이는 곳도 눈에 띄었다.

세 사람은 20분 정도 정상에 머무르다가 다시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올라갈 때보다는 직선으로 된 경로를 택했다. 하산을 시작한 지 10분가량 지나자 올라가던 내내 몸이 좋지 않았던 에릭은 숨쉬기가 훨씬 편해졌음을 느꼈다. 그런데 큰일을 마치고 갑자기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코피가 터졌다. 콧구멍이 불에 덴 것처럼 따가웠다. 다리가 욱신거리면서 손목도 퉁퉁 붓고 따가웠다. 통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드디어 캠프 셔먼으로 되돌아온 세 사람은 두고 간 장비를 다시 꾸렸다. 배낭 무게가 5킬로그램 정도씩 불어났다. 에릭은 발과 어깨에 통증을 느꼈다. 머리도 아팠다. 항상 자신의 몸을 혹사하는 에릭이었지만 이번에는 느낌이 좀 달랐다. 다른 때보다 훨씬 몸이 좋지 않았다.

해발 2,400미터에 이르자 얼음지대가 끝나고 발밑이 암석으로 바뀌었다. 더는 밧줄로 서로의 몸을 연결할 필요도 없었다. 힘이 넘쳐 보이는 캐나다기러기가 화살 모양의 대형을 이루어 하늘을 나는 모습도 보이고, 날렵한 검은꼬리사슴이 나무 사이로 질주하는 모습도 보였다. 계곡 아래쪽에는 자주색 꽃과 노란색 꽃이 수를 놓은 듯 어우러져 피어 있었다. 눈이 녹아 만들어진 강물이 기울어가는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생태학을 공부하는 에릭은 태곳적 신비를 간직한 이런 곳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걱정하였다. 자연은 에릭의 종교였다. 에릭은 자연에서 평화와 영감과 답을 얻었다. 제도화된 종교는 질색이었다. 어릴 때는 몇 시간이고 서서 매나 왜가리가 하늘에서 내리 덮치며 사냥하는 장면을 지켜보았었다.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기도 했고, 퓨젯 만의 해양 생물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관찰하기도 했으며, 해안가에 떠밀려 온 기묘한 모양을 한 유목의 아름다움에 반해 유목을 수집하기도 했다. 에릭네 여섯 남매는 2층 베란다에 누워 별똥별이 떨어지는 장면을 보려고 기다리다 잠든 적도 많았다.

에릭의 할아버지도 에릭처럼 자연을 사랑했었다. 누가 봐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영혼으로 보이던 찰스 린드버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전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며, 역사적인 비행에 집착했던 것처럼 환경에 집착했다. 찰스는 환경보호운동에 앞장서 세계자연기금(World Wildlife Fund)의 이사가 되었으며, 바하의 귀신고래부터 민도로물소라 불리는 필리핀의 조그만 물소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의 멸종 위기종과 녹지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찰스는 필리핀, 브라질, 아프리카 등지에서 삶은 원숭이 고기를 먹고 야자나무 잎으로 지붕을 덮은 오두막집에서 잠을 자며 토착 부족민들과 함께 지내기도 했다. 하와이의 할레아칼라 국립공원 구역을 정할 때는 그곳에 사는 지역주민들을 설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찰스는 특히 필리핀을 좋아해서 그곳에 서식하던 원숭이를 잡아먹는 독수리 보호에 앞장서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독수리로, 멸종 위기종이었다. 에릭의 할머니도 할아버지처럼 인간과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에 관심이 많았다. 할머니 앤이 쓴, 미국 우주선 기지 한가운데의 자연 생태계에 관한 글은 1969년 《라이프(Life)》지 2월호에 커버스토리로 다루어졌다. 앤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수많은 야생 동식물이 사는 케이프커내버럴(몇십 년 전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과 함께 야영하던 곳이었다)의 모습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우주기술의 시대까지 지속될 것인가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다. 아폴로 9호가 발사되던 주에 발간된 이 글의 제목은 <왜가리와 우주인(The Heron and the Astronaut)>이었다. 글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습지가 없어지면 왜가리도 사라질 것이다. 야생 동식물이나 숲, 나무, 들판이 없어지면 지구상에는 산소나 곡물, 자양분, 생명, 인류애, 평화 따위가 모두 사라질 것이다. 왜가리가 없어지면 우주인도 없어진다. 지구상에서 왜가리와 우주인은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생명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글은 해오라기, 따오기, 펠리컨, 악어, 아르마딜로, 방울뱀 등 토착 야생동물의 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이 끝을 맺었다. ‘우리는 우주인의 눈을 통해 우리가 보전해야 할 이 귀중한 지구의 정수를 그 어느 때보다도 명확히 볼 수 있었다. 우주 언어를 빌리자면 ‘지구빛(Earth shine)’이라는 새 이름을 붙일 만했다.’

레이니어 산에 오르는 고통스러운 여정이 시작되었던 출발점에 가까워지자 일행은 또 한 번 휴식을 취했다. 마멋 한 마리가 바위 위에서 털북숭이 머리를 치켜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전나무와 소나무, 삼나무 사이를 뚫고 햇살이 새어 들어왔다. 린드버그라는 성이 아니었으면 에릭은 벌목공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야외에서 육체노동 하는 직업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에릭은 1960년대에 《라이프》지에 게재된 할아버지의 말씀을 따르기로 했다. ‘인류의 미래는 과학 지식을 자연의 지혜와 결합하는 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년째 되는 1977년 설립된 린드버그 재단(Lindbergh Foundation)은 기술과 자연보호의 균형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출발점 근처에 있는 주차장에 도착하니 저녁 여덟 시경이 되었다. 에릭은 배낭을 바위 위에 내려놓았다. 배낭을 다시 들려고 하니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손목이 접질렸나?’ 에릭은 아무래도 등산은 나하고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농담조로 말하며 가볍게 넘기려 했다. 하지만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레이니어 산 등반을 마치고 몇 달이 지난 뒤 에릭은 결국 가족 주치의를 찾았다. 몇 주 동안 괜찮다가도 다시 통증이 찾아오곤 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수상스키 시합이 끝나고 나니 양쪽 무릎이 붓고 아팠다. 그전에 손목에서 느꼈던 통증만큼 심했다. 의사가 몇 가지 검사를 하고 나더니 과로를 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그런지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의사는 퇴행성 질환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며, 조심스럽게 류머티스 관절염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 만성 질환의 증세 중 하나는, 통증이 양쪽 무릎이나 양쪽 손목, 양쪽 발, 양쪽 발목 등 신체 양쪽 부위에 동시에 오는 것이라고 했다. 마라톤을 하거나, 여자의 경우 난산을 했을 때처럼 육체적으로 과로하면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관절을 손상하고 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했지만, 최악의 상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면서 시간을 두고 관찰해보자는 것이었다.

에릭은 충격을 받은 얼굴로 병원 문을 나섰다. 그러면서 속으로 자신이 류머티스 관절염, 아니 다른 어떤 관절염에라도 걸렸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질환은 노인들이나 걸리는 것이지 자기처럼 스물한 살의 뛰어난 운동선수가 걸릴 병은 아니었다.

에릭의 어머니 바버라 로빈스(Barbara Robbins)는 그 소식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류머티스 관절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에릭의 아버지와 이혼한 바버라는 린드버그라는 성이 저주를 받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시부모는 귀여운 아들 찰스 2세를 잃었다. 막내 시누이 리브(Reeve)는 큰아들 조나단(Jonathan)을 잃었다. 찰스 2세와 마찬가지로 걸음마를 배우던 아기일 때였다. 리브가 코네티컷 주로 새로 이사한 친정집에 머물고 있을 때 아기가 밤중에 발작을 일으켜 죽은 것이었다.

바버라 자신도 에릭의 아버지 존과 살면서 좋은 일도 많았지만 좋지 않은 일도 많이 겪었다. 스탠퍼드대학 시절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극비리에 결혼식을 진행해야 했다.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결혼과 예물을 둘러싼 거짓 기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가십 전문 특종 칼럼니스트 월터 윈첼(Walter Winchell)은, 찰스 린드버그가 아들과 며느리에게 새 스포츠카를 선물했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 두 사람이 몰고 다니던 차는 햇빛에 바래 자줏빛으로 보일 만큼 낡은 파란색 포드 왜건이었다. 잡지 《레드북(Redbook)》은 두 사람이 하지도 않은 인터뷰 기사를 싣기도 했다.

존은 수중 전투와 폭파를 전문으로 하는 해군 ‘프로그맨(frogman)’ 출신이었다(프로그맨은 네이비실(Navy SEAL)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제대한 뒤에는 석유굴착시설에서 공기 줄을 매달고 해저에서 작업하는 일을 했다. 존은 그때까지 인간이 들어가 본 적 없는 깊이까지 잠수하기도 했고, 혼합기체를 마시며 감압하는 실험도 했다. 의용 소방대원이기도 했던 존은 세계 최초의 심해 잠수부 중 한 사람으로, 24시간 이상 해저에서 지낸 기록도 있다.

바버라는 퇴행성 질환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아들의 말을 곰곰 생각해 보았다. 지금까지 류머티스 관절염에 걸린 사람을 딱 한 번 만나 보았었다. 흔들의자에 앉아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젊은 남자였다.

에릭은 자신이 낳은 여섯 아이 중 가장 순했다. 아기 때는 그냥 제자리에 앉아서 웃거나 즐거운 표정으로 발길질을 하곤 했었다. 에릭은 친정아버지 짐 로빈스(Jim Robbins)를 많이 닮았다. 아버지는 푸른 눈에 마른 체형의 스웨덴 사람이었다. 하지만 바버라는, 에릭이 린드버그가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육체적인 일로 자신을 증명하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들의 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일 터였다. 하지만 아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린드버그가의 DNA라 할 수 있는 모험적인 삶을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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