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육체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소중한 사람과의 유대는 계속 남는다.
이 세상에는 응석 부리거나 부탁을 잘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회사 일이나 집안일, 육아도 ‘스스로 직접 다 하지 않으면 만족이 안 되는’ 억척스러운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가능한 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 ‘내 힘으로 완수해내자’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훌륭한 태도입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때로는 자기 자신을 무척이나 괴롭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 완벽주의인 사람, 무슨 일이든 자신이 떠안는 사람일수록 마음의 균형을 잃기 쉽다고 말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야만 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특히 인생의 남은 시간이 얼마 없게 되면 아무리 마음에 걸렸던 일,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직접 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노화나 병으로 몸이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으면 가족을 부양하거나 일을 하기는커녕 식사나 용변, 목욕조차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마지막 순간이 눈앞에 닥친 환자분들을 수없이 진료했습니다.
대개의 환자분들은 처음 얼마 동안은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일을 떠올리며 괴로워하거나 남겨질 사람을 생각하며 고민하기도 하고,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살 수 없게 된 자신’을 자책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직접 할 수 없는 일은 다른 누군가에게 맡기면 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소중하기 때문에 더욱 손을 떼고 중요한 사람들에게 맡기자’고 결심하는 것이죠.
그리고 맡기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반드시 평온한 표정으로 변합니다.
예를 들면 호스피스 병동에서 만난 어느 남자 환자분은 입원 당시 아주 거칠게 소리쳤습니다.
“내가 여기 있다고 해서 죽음을 받아들인 거라고 생각하지 마!”
호스피스는 더 이상 치료 가망이 없는 분이 최대한 쾌적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는 장소입니다만 그 환자분에게는 ‘살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 강하게 남아 있었던 거죠.
풀 길 없는 고통을 안고 있던 그 환자분은 호스피스 병동 스태프를 심하게 대했습니다.
거즈 교환 순서를 조금만 틀려도 욕설을 퍼부었고, 무슨 도움을 주든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를 안 했죠.
그런 상황에서도 호스피스 병동 스태프는 계속 꼼꼼하게 보살펴드렸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충고하거나 반박하지 않고 헌신적으로 간호했던 거죠.
이윽고 혼자서는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 환자분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말투로 이야기했습니다.
“내 신변에 대한 것은 이 호스피스 병동 여러분에게 맡기고 싶어요.”
입원하고 나서부터 75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인간은 본래 다른 누군가와 서로 지지해주고 때로는 서로 신세를 지면서 살아가는 법입니다.
설령 육체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소중한 것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중요한 사람들과의 유대감은 계속 남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
‘무슨 일이든 내 힘으로 완벽하게 처리해야 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은 ‘오늘이 인생 마지막 날이라면 어떨까?’ 하고 상상해보세요.
만약 다른 사람이나 대자연 혹은 운명이나 신앙 등 ‘신뢰할 수 있는 타자’에게 맡겨보자는 마음이 들면 그때부터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고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서로서로가
돕고 산다면
보살피고 위로하고
의지하고 산다면
오늘 하루가
왜 괴로우랴.
_박목월, <아침마다 눈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