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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Feb 12. 2018

02. 은행식 교육의 끔찍한 결과

<그래도 행복해 그래서 성공해>



평가받는 삶에 익숙해진다.
  
은행식 교육에서는 선생님이 A라고 가르쳐 주면, 학생들은 평가를 받을 때 선생님이 말한 그 A를 얼마나 그대로 적어 낼 수 있는지 서로 경쟁을 벌인다. 그리고 선생님은 자신이 말한 것과 얼마나 일치하느냐에 따라 점수를 매긴다. 그 점수는 단순한 성적이 아니다. 은행식 교육은 모든 분야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학교에서, 직장과 산업현장에서, 연구실에서, 권위자가 말한 것을 얼마나 똑같이 쓰고, 외우고, 행동에 옮겨서 권위자가 기대하는 결과를 그대로 산출하느냐로 훌륭한 학생, 근면한 직장인과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 열정적인 연구원이 결정된다. 이들은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경쟁하고, 그렇게 경쟁하면 경쟁할수록, 선생님이나 권위자가 내려준 정답 A는 절대로 옳은 것이 된다. 그럼 권위자가 누리는 현재 권력이나 질서는 더욱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 경쟁이 심할수록,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우리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A라는 답이 나오게 한 현재의 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생각들이 같아지네통제가 쉬워지네!
 

학교에서 선생님은 한 학생을 개별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부모 세대에서는 보통 한 학급 60-70명이나 가르쳤고, 지금도 20-30명 정도의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럼 학교에서 선생님의 은행식 교육을 받은 다수 학생들의 생각은 어떻게 될까? 비슷해진다. 아니 거의 똑같다. 같은 생각이 주입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교육의 권위자인 선생님이 학생들을 관리하고 통제하기가 쉬워질까, 어려워질까? 당연히 훨씬 쉬워진다. 그리고 생각이 다양하면 학생들은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여 대화하지만, 학생들 대다수의 생각이 같으면 생각이 다른 소수 학생들을 무시하게 되고, 소수는 다수의 눈치를 보며 그 의견을 따르게 된다. 따라서 교육의 권위자는 몸소 강압적으로 나서지 않아도 은행식 교육 덕분에 효율적으로 그들을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다.


그래서 21세기의 지성인들은 이러한 은행식 교육을 사회의 가장 큰 악 가운데 하나로 생각한다. 일부 권력과 힘이 있는 자들이 교육이란 틀을 사용하여 일반인들을 이성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지배하고 통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식 교육에서 지식은 그렇게 권력이 된다. 교육을 통해 생각이 같아져서 통제하기 쉬운 사람들이 되어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나치가 독일 청년들을 교육한 방식이었다. 순수 독일 혈통인 ‘아리아 인’의 우수성과 유태인의 열등함을 이성적인 교육방식으로 주입시켜서 히틀러에 대한 복종이 위대한 조국을 만드는 길임을 교육했다. 그래서 전체주의 국가, 즉 모든 국민의 생각이 같은 나라가 되고 말았다. 거기서 더 나아가 그 생각을 다른 나라 사람에게까지 주입하는 것이 제국주의다. 제국주의도 이성적 논리를 무기로 그들이 다른 나라를 지배하는 것이 그 나라에게 더 합리적이라고 교육한다. 일제도, 결국 이 은행식 교육으로 우리나라의 국민들은 물론 지식인들의 생각까지 황민화하였다. 이것이 일제 강점기 많은 지식인들이 친일로 돌아선 이유다. 그들에게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친일하는 것이 보다 이성적·합리적이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시대의 황민화 교육의 잔재가 아직도 우리 교육의 현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주입식·암기식 교육, 일제고사, 권위적인 교사상 그리고 모든 학생을 획일화하는 표준화 교육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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