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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Feb 27. 2018

08. 결국은, 사랑이었네

<계단을 닦는 CEO>



아버지는 병원에 있는 나에게 매일 찾아왔다. 함께 있어도 말을 주고받지 않았다. 아버지는 말수가 적고 표현이 어눌하였으며 나는 감정에 둔감했으니, 우리가 제대로 대화를 나누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퇴원할 때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내 곁을 지키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내 병이 아버지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는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남대문 장사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의 모습을 바꿔 놓고 싶었다. 어느 누구도 무시하거나 조롱하지 못하도록 당당하고 멋진 모습으로. 돈을 많이 벌면 나의 바람은 충분히 현실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옷을 입고 번듯한 집에서 살면 늘 움츠려 있는 아버지의 어깨와 등이 자연스럽게 쫙 펴질 것이라고 믿었다.
  
남대문 장사에 이어 청소용역업에서도 제법 돈을 벌었고, 그걸 모두 어머니의 손에 맡겼다. 어머니는 여기저기 투자해서 돈을 불리며 그 돈을 움켜쥐고 놓지 않으셨지만, 아버지는 도통 관심이 없으셨다. 아버지는 회사 사무실에 나와서 그날 용역 일손이 부족하면 대신 일하러 나갔고, 내가 식당을 운영할 때에는 청소하고 홀을 정리했다. 부유하고 여유 있고 당당한 모습을 그토록 보고 싶었지만 끝끝내 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81세 때 돌아가셨다. 파킨슨씨병으로 4년간 투병하면서 몸이 굳어지고 기억을 잃어 갔다. 나중엔 나를 알아보지도 못했다.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서 부지런하게 몸을 움직였던 아버지가 돌처럼 변하는 모습이 충격적이었고, 병을 너무 늦게 발견했다는 죄책감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아버지의 모습은 첫 남편의 죽음 이후 단단하게 굳어 버린 내 감정의 뿌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내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얼어 버린 수도관이 터져서 물을 뿜어내듯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실로 오랜만에 흘리는 눈물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울었던 적은 첫 남편의 죽음, 외할머니의 죽음,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까지 딱 세 번뿐이다. 악으로 깡으로 살아온 내 인생에 눈물은 사치였다. 그런데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흘린 눈물은 메마르게 갈라진 마음 밭을 촉촉하게 적셔 주었다.
  
아버지를 화장하고 첫 제사를 지내는 자리에서, 상 위에 놓인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머니는 “여보, 잘 가시오.”라고 말을 건넸다. 그전까지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한 번도 다정하게 ‘여보’라고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 때문에 누구보다 많은 상처를 받았고 괴로워했던 어머니는 아버지의 어눌한 행동을 늘 타박했다. 아버지가 조금만 똑똑했어도 우리 가족이 그토록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원망을 습관처럼 쏟아냈다. 머슴처럼 항상 얼굴에 기름이 묻어 있고 몸에서도 기름 냄새가 진동하던 아버지에 비해 깔끔한 도시 여성 같았던 어머니는 한 번도 겸상해서 밥을 먹지 않았다. 아버지가 투병 중일 때에도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내보인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한 남자와 한 여자로서 대등한 관계에서의 사랑을 일생 동안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어머니가 아버지와 헤어지지 않고 끝까지 함께 산 이유는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모자란 사람, 사업을 망친 사람, 불쌍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받는 아버지를 나는 무척이나 싫어했다. 하지만 내 나이가 쉰 중반에 이르러 다시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저 바보같이 착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지난날 아버지를 지나치게 미워했고, 그래서 너무나 미안하지만, 단지 그 감정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정말 그것뿐이었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살아 낼 수 있었을까. 증오만으로는 자신의 역사도 타인의 역사도 바꾸지 못한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의 뿌리가 사랑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나 뒤늦게 알게 되었다. 결국 나도 어머니도 아버지에게 미움만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아버지가 내 병상을 지키고 계셨던 모습이 가끔 떠오른다. 여느 평범한 아버지처럼 하지는 못했어도 묵묵히 곁을 지켜주었던 아버지의 모습은, 내 인생도 사랑받기에 마땅하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었다. 태생부터 저주받은 인생이었고 그것을 속죄하려면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나의 ‘오해’였다.
  
그토록 미워했던 아버지의 성격을 맏딸인 내가 고스란히 닮았다. 내가 앞뒤 안 가리고 고집스럽게 일하는 것, 아무리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아버지를 닮아서다. 아버지는 적은 월급이나마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열심히 일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서 나는 승자와 패자의 모습을 동시에 보았다. 아버지를 닮아서 나는 노력의 결과가 당장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어차피 미래도 없는데 뭐.” “해봤자 안 될 게 뻔해.” 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있었다.
  
이제는 아버지처럼 남들에게 베풀려고 애를 쓴다. 누군가에게 속은 배신감에 다시는 베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도리가 없다. 미워하고 미워하던 아버지의 삶과 내 삶은 별반 다르지 않다. 굳이 따지자면, 다시 일어서지 못한 아버지의 사업과는 달리 내 사업은 넘어져도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안정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고 있다.


아버지가 결코 바보가 아니었듯 내 삶이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마음에 다시 새긴다. 이젠 정말 제대로 살아 보고 싶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다고 할 순 있어도, 감히 잘 살았다고 자신하진 못한다. 늘 가족과 사업이라는 내 울타리 안만 보아 왔다. 이젠 바깥의 사람들과, 세상과 만나고 싶다. 더 많이 베풀고 싶다. 어려운 사람을 지나치고 싶지 않다. 뒤틀린 마음을 풀고 그동안 못 했던 일들을 해보고 싶다. 진짜 내 행복을 찾아 사는 것, 그것이 아버지가 정말 바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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