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위한 인문학 교육법>
아이에게 인문학 교육을 하기 전에 먼저 점검해봐야 할 것이 있다. 부모인 나에게 과연 아이 교육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자격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내가 어떤 사람을 교육한다고 할 때 내가 모르는 지식은 배워서 가르칠 수 있다. 그런데 내 삶의 태도가 부정적이면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없다.
아이들은 따라 배우는 존재이다. 초등학교 교사를 할 때 아침에 어린이신문을 두 손으로 들고 보는 아이를 살펴보니 아빠가 매일 같은 모습으로 신문을 읽고 계셨다. 아빠가 집에서 신문을 보는 모습을 보고 따라 배운 것이다. 말과 태도 역시 부모의 영향을 받는다. 초등학교 2, 3학년인데도 멋있는 말을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자신감 없는 친구에게 “머뭇거리지 말고 시작해봐.”라고 이야기하는 아이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던 적이 있다. 어느 3학년 여자아이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인생은 도전하는 거야. 그래야 후회가 없어. 네 마음을 표현하는 데 스스로 한계를 느끼면 안 돼.”
문학작품에서나 나올 법할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 아이의 엄마를 만나보니 역시 엄마가 문학작품을 즐겨 읽고 있었다. 이처럼 부모가 보여주는 삶의 태도가 바로 교육이다. 부모의 삶의 태도는 100% 아이에게 유전된다. 진정한 교육은 아이의 본성에 영향을 미쳐 아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부모가 인문학적 사고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인문학적 사고 능력이란 나를 바라보고 세상의 흐름을 바라보는 능력이다. 비판적 사고 능력, 본질을 꿰뚫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비판과 비난을 자주 혼동하곤 한다. 자신은 비판한다고 했지만 알고 보면 비난인 경우가 많고,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비판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우리가 가진 비판에 대한 생각은 부정적이다. 독서토론에서 내 의견에 대한 비판을 들었을 때 ‘저분이 나를 더 크게 성장시키려고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래서 비판할 것이 있어도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고, 비판을 받고 크게 화를 내기도 한다.
진정한 비판은 가슴을 뻥 뚫리게 한다.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비판받았을 때 기분이 나쁘기보다는 ‘아, 내가 그 점을 놓치고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면 가슴이 시원해지면서 기쁨을 느끼게 된다. 공자는 제자들이 자신의 의견에 대해 무조건 “네” “맞습니다.” 답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논리적인 비판을 하면 좋아했다. 자신의 의견에 대해 누군가 묻거나 반론을 제기하면 자기 생각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비판적인 사고이다.
비판적 사고 능력의 근원은 자존감이다. 즉 자존감 높은 부모가 아이 교육을 잘할 수 있다. 인문학 교육뿐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전 과정에서 부모의 자존감은 무척 중요하다. 자존감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나밖에 모르는’ 이기심과 다르고,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도 다르다.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주고 믿어주는 것이 바로 자존감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부모들의 자존감은 그리 높지 않다.
예를 들어보자. 아이가 중간고사에서는 평균 90점을 받았는데 기말고사에서 70점을 받았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많은 부모님이 당황하고 황당해하지 않을까 싶다. 어떤 집은 초상집이 되고 또 어떤 집에서는 아이를 혼내고 ‘학원을 바꾼다.’ ‘과외 선생을 바꾼다.’며 난리가 날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부모의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을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로 평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같은 잣대를 들이댄다. 내적 평가가 아니라 외적 평가를 중시하는 것이다. 아이에 대한 정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이지만 내 아이가 공부를 못한다 하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런 부모의 반응을 접한 아이의 마음은 어떨까? 불안과 두려움을 갖게 된다.
나는 자존감이 바닥이었다. 여동생은 공부를 잘했지만 나는 항상 반에서 중하위권이었다. 대학 때도 공부를 안 하다 보니 학점이 바닥이었고 항상 여동생과 비교당했다. 여동생은 집에서 칭찬받고 우리 집의 태양으로 떠받들어지며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고3 때 전교 1등에 수능 성적이 전국 최상위권에 있었던 여동생은 대학생인 나에게 종종 이렇게 충고하곤 했다.
“오빠 정신 좀 차려. 장남이 매일 얼빠진 얼굴로 있어. 20대가 눈이 반짝반짝 빛나야지 그게 뭐야.”
학교에 가면 여자 동기들이 내 열등감을 더 부추겼다. 당시 지방 교대는 여학생은 반에서 최소 5등 안에 들어야 붙을 수 있었지만, 남학생은 반에서 20등 정도면 합격했다. 남교사와 여교사의 비율을 맞추기 위해 합격생 수를 조절했기 때문이었는데 그래서 전반적으로 여학생들이 남학생보다 성적이 좋았다. 하루는 MT를 갔는데 술에 취한 한 여자 동기가 펑펑 울면서 나에게 다짜고짜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반에서 1등 해서 이대 갈 줄 알았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교대 와서 너 같은 애들이랑 있다니 정말 한심하다.”
이런 것들이 내 안에 상처로 남았다. 열등감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자신을 제한하는 강력한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자존감을 키워서 내 안의 열등감을 몰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동안 나를 규정해왔던 것, 나를 인정해왔던 것에 대한 인식을 버려야 한다. 직업이 뭐네, 집이 몇 평이네, 자동차가 뭐네 하는, 내 어깨를 으쓱하게 했던 것들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나를 있는 그 자체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나를 존중하고 나 자신과 평화롭고 아름다운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때 아이에게도 가르쳐줄 수 있다. 부모의 자격 중 첫 번째는 자존감이다.
교육은 교사의 질을 뛰어넘을 수 없다. 내 마음의 상태가 그대로 자녀 교육이 된다. 내가 자존감을 가지고 스스로 설 때 내 아이도 자존감을 가지고 스스로 서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내가 자존감을 가졌을 때 강남 엄마들의 입시 정보에 휘둘리지 않게 되고 좋은 대학에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도 대학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삶의 여러 계단 중 하나 정도로 받아들이는 여유를 갖게 된다. 우리가 아이에게 주어야 할 단 하나의 교육이 있다면 그것은 아이에게 인간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자존감 교육이다. 자존감이 없다면 그 어떤 인문 교육도 허사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