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콘서트>
집단 설사의 원인
2013년 6월 중순, 몇 명의 미국인이 심한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설사는 말 그대로 물에 변이 조금 섞여 있는 수준이었고, 복통도 동반됐다. 밥맛도 없었으니 살이 빠지는 건 당연했다. 한두 명이 하면 ‘개인적 일탈’로 치부되지만, 수십 명 수준이 되면 ‘사회적 현상’이 된다. 이때의 설사가 그랬다. 6월 26일이 됐을 때 설사로 고생하는 환자는 285명으로 늘었고, 입원한 환자도 18명이나 됐다. 한 주(州)에 몰려 있다면 원인이 되는 식당을 찾으면 됐지만, 환자들의 거주지는 11개 주에 퍼져 있었다. 보건 당국은 갑작스럽게 발생한 이 사태의 원인을 찾으려고 동분서주했다. 가장 가능성이 높았던 세균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왔고, 바이러스는 당연히 아니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기생충밖에 없었다. 혹시나 싶어 와포자충(『기생충 열전』 참조)을 의심해 항산성 염색을 해 봤다. 뭔가가 나왔다. 그런데 와포자충이 아닌 다른 기생충이 분홍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원포자충(싸이클로스포라, Cyclospora)이었다.
원포자충이란?
기생충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구분되는데, 보이는 것을 연충(helminth)이라 하고, 안 보이는 것을 원충(protozoa)이라고 한다. 원포자충은 크기가 8~10마이크로미터인 작은 기생충으로, 원충에 속한다. 이 기생충에 감염되면 입맛이 없어지고 피로, 체중 감소, 복통 등이 있을 수 있지만, 대표적인 증상은 물 같은 설사다. 대략 7일의 잠복기를 거친 후 설사가 시작되는데, 건강한 사람은 2주 안에 설사가 멎지만 면역 상태가 안 좋은 사람의 경우 설사가 지속될 수 있다.
원포자충은 사람이 유일한 종숙주다. 그들은 소화기관을 구성하는 세포 안에 들어가 사는데, 거기서 짝짓기를 해서 ‘오오시스트(oocyst)’라는, 알 비슷한 것을 만들어 대변으로 내보낸다. 이 오오시스트가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면 감염이 이루어진다. 이런 가정을 해 보자. 냉면 집 주방장이 화장실에 갔는데, 뒤처리를 하다 손에 오오시스트가 묻었다. 그런데 이분이 워낙 대범해서 손을 안 씻고 그 손으로 면을 주물렀다면 어떻게 될까? 손에 있던 오오시스트가 면에 묻었을 테니 원포자충에 감염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아니다. 사람 몸 밖으로 나간 오오시스트는 수일에서 수 주간 숙성돼야 다른 사람에게 감염될 수 있다. 이 말의 의미는 대변이 위생적으로 처리되는 나라에서는 주방장이 아무리 대범하다고 해도 이 기생충이 유행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이 원포자충을 모른 채 살아가는 건 그런 까닭이다.
미국의 원포자충 유행은 2013년이 처음은 아니었다. 1996년 과테말라에서 수입한 라즈베리(산딸기의 일종) 때문에 미국과 캐나다에서 1천 명이 넘는 환자가 발생했고, 1997년에는 페루에서 들여온 양상추로 인해 97명의 환자가 생겼다. 2000년 필라델피아를 강타한 집단 설사는 결혼식 파티에서 먹은 웨딩 케이크에 들어 있던 라즈베리가 원인이었다. 나중에 먹다 남은 케이크에서 원포자충이 발견된 바 있는데, 이 라즈베리의 수입처는 과테말라였다. 설사병의 원인을 두 차례 제공한 탓에 미국에선 2000년대 이후 과테말라 라즈베리 수입을 중단하다시피 했는데, 이번엔 멕시코의 실란트로가 문제가 된 것이다. 라즈베리냐, 실란트로냐, 아니면 양상추냐. 중요한 건 야채의 종류가 어떤 것이냐가 아니라, ‘그 야채를 도대체 어떤 물로 씻느냐’였다. 이들 지역에서 야채를 재배할 때, 그리고 씻을 때 쓰는 물에는 원포자충의 오오시스트가 ‘잔뜩’ 들어 있었고, 한 번 묻은 오오시스트는 식당에서 대충 씻는 걸로는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좀 사는 나라들은 앞으로도 야채 등의 식 재료를 다른 나라에서 들여올 수밖에 없으니, 이로 인한 기생충의 유행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