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나를 아프게 할 때>
적당한 스트레스는 생리반응을 활성화하고, 활기를 북돋우기도 한다. 문제는 스트레스가 극심한 경우와 스트레스가 단기간이 아닌 장기간에 걸쳐 지속한 경우다. 스트레스가 인체와 정신을 좀먹기 시작하는 것은 이 두 가지 상황에 부닥쳤을 때다.
이런 상황에 부닥치면 실제로 스트레스로부터 몸과 마음을 지키는 방어 메커니즘 자체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작용해버린다.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스트레스의 요인은 다양하다. 스트레서(Stressor, 스트레스가 되는 요인)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정신적(심리·사회적) 스트레스다. 이 중에서 우리가 통상 스트레스라고 부르는 것은 정신적 스트레스다. 정신적 스트레스도 추위나 영양결핍, 세균감염 같은 것과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협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트레스로부터 몸을 지켜야만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한 방어반응이 스트레스 반응이다. 스트레스의 종류와 관계없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공통된 반응이 일어난다. 식욕이 사라지고 위장 상태가 나빠진다. 고혈압이 되기도 한다. 병에 걸리기도 쉬워지고, 머리가 아프거나 열이 나기도 한다. 이런 증상도 스트레스 반응으로 일어나는데, 누구나 경험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그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 스트레스 호르몬인데, 그 정체는 바로 부신피질 호르몬이다. 스트레스 호르몬이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스트레스에 무너지지 않도록 몸과 마음을 지키기 위해 방출되는 호르몬이다. 절대 자신을 상처 입히기 위해 방출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결과적으로 아픔을 주고 마는 것일까.
스트레스를 느낄 때, 제일 처음으로 반응하는 것은 뇌 안에서 생존 유지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시상하부다. 스트레스를 느끼면 시상하부에서 CRH(부신피질자극호르몬 분비촉진 호르몬)라는 호르몬이 분비되고, 그것이 바로 그 근처에 있는 뇌하수체에 도달하면, 뇌하수체에서 ACTH(부신피질자극호르몬)가 방출된다. ACTH가 전신을 돌아 부신피질에 도달하면 부신피질 호르몬, 이른바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방출된다.
그렇다면 스테로이드 호르몬은 무슨 역할을 할까. 한 번쯤은 스테로이드 연고를 발라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효과는 극적이다. 심한 염증과 알레르기도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면 그 즉시 가라앉는다. 그러나 스테로이드는 부작용이 무서워, 결국 나중에는 스테로이드가 아니면 듣지 않게 된다는 무서운 이야기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확 실히 스테로이드는 효과가 좋지만, 계속 사용할 수는 없다.
염증과 알레르기가 가라앉으면, 스테로이드는 이물질과의 전쟁을 멈추게 하는 작용을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이물질과의 전쟁을 멈추는 것은 또 다른 위험을 초래한다. 확실히 염증이 없어져서 증상이 사라지고 좋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외부의 적에 대해 무방비한 상태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스테로이드를 계속 사용하면 세균이나 곰팡이에 감염되기 쉬워지는 것이 그 이유다.
그렇다면 왜 스테로이드(스트레스 호르몬)는 이물질과의 전쟁을 멈추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더욱 중요한 문제와의 전쟁에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투입하기 위해서다. 적의 습격을 받아 생사를 다툴 때는 세균과 싸워봤자 의미가 없다. 먼저 눈앞에 벌어진 전투에서 싸워 살아남지 않으면 시작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균이나 알레르기 물질과는 잠시 휴전하고, 눈앞 적과의 전투에 전력을 집중하려고 한다. 당장 위험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중에 발생할 피해에는 눈을 감는 것이다. 염증을 억제하는 스테로이드의 작용은 살아남기 위한 긴급 피난용 전략이다.
스테로이드 호르몬은 그 외에도 혈압을 높이거나 혈당치를 높이는 작용을 한다. 전투에 필요한 골격근이나 심폐, 중추신경계로 향하는 혈류를 늘리고 에너지를 확보하는 한편, 소화관 등 막판 전투에 불필요한 부분에서는 힘을 뺀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시상하부에서 일어나는 반응은 스트레스 호르몬의 방출과 함께 자율신경을 경계태세로 만든다. 편안한 휴식 상태인 부교감신경 우위의 상태에서 전투 상태인 교감신경 우위의 상태로 만든다. 교감신경이 흥분하면 아드레날린이 방출된다. 혈압이 올라가고 심박 수가 상승하며 골격근과 심폐에 혈류를 풍부하게 보내는 동시에 소화관의 운동은 역시 억제한다. 스테로이드 호르몬의 방출과 교감신경의 흥분은 눈앞에 직면한 전투에서 최대한 힘을 발휘해 살아남기 위한 장치다.
단기간이라면 난국을 극복한 뒤에 휴식을 취하므로 원상태를 회복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상황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게 지속하면 원래 긴급피난 용으로 투입된 스트레스 호르몬이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감염증에 걸리거나 고혈압을 일으키고, 당뇨병에 걸리거나 위나 장에 궤양을 만들기도 한다. 이것이 스트레스로 인해 몸에 병이 생긴 상태, 즉 심신증이다.
스트레스 호르몬의 영향은 몸에서 그치지 않는다. 뇌에도 해로운 작용을 끼치기 시작한다. 단기간이라면 각성도가 올라가서 뇌의 회전도 빨라지고, 스트레스를 물리치는 저항력을 생성시키지만, 그것이 장기간 지속하면 피폐 상태에 빠져든다. 피곤한 말도 채찍질을 가하면 힘을 짜낸다. 그러나 계속 채찍질을 하면 결국은 무너져 내리듯 쓰러져서 죽고 만다.
뇌의 신경세포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단기간이라면 전달물질을 억지로 내보내고 일을 계속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를 넘기면 결국 신경세포가 반응하지 않게 되든지 죽고 만다. 실제로 스트레스 상황이 오래가면 뇌 안의 해마라 불리는 영역이 위축되기 시작한다. 이것이 우울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PTSD)로 나타나게 된다. 그렇게 되기 전에 몸에서는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각종 신호를 보낼 것이다. 증상이나 행동상의 문제는 어떤 의미에서 스트레스가 한계를 넘으려고 한다는 신호이고, 무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경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