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내가 포기한 지점에서 누군가는 시작한다.

<나는 언제나 술래>

by 더굿북

군대 가기 전에 수도공사를 따라다녔다. 6개월 정도 따라다녔다. 도로나 아스팔트 중간쯤 땅속으로 수도 본관이 지나가는데 우리는 땅을 파서 본관에서 수돗물을 따내는 일을 했다. 새로 지은 건물에 수돗물을 연결하는 공사인데 준공에 꼭 필요한 공사라 건물주로부터 대우가 좋았다(담배를 잘 사준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일하면서 견문을 넓히고 싶었는데 기사 아저씨를 빼면 오십 대 아저씨랑 딸랑 둘이다. 그렇게 6개월 동안 아스팔트를 부수고, 오함마로 콘크리트를 깨고, 지겹도록 땅을 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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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땅은 흙이 좋다. 서울 땅은 대부분 건축 쓰레기가 땅속에 있어서 땅 파기가 아주 고약하다. 우리는 새참으로 짜장면을 먹었는데 삽질이 얼마나 사람을 배고프게 만드는지 땅을 파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다.

어떤 땅은 정말이지 약점이 보이지 않는다. 이쪽저쪽 다 돌이라서 삽이 튕겨 나온다. 꼬챙이도 들어가지 않고, 파는 게 아니라 땅을 떼어내야 하는 땅, 그렇게 질긴 땅이 있다. 삽질하다가 지치는 건 물론이고 머리에서 생각이라는 게 사라진다. 겁이 나서 다음 삽을 어디로 찔러야 할지 마음이 막히는 부분이 생긴다.

그러면 아저씨가 그 좁은 공간으로 들어온다. 내가 포기한 지점, 삽을 어디로 찔러야 할지 알 수 없는 지점에서 아저씨는 다시 시작한다. 담배를 한 대 피면서 내가 포기한 지점을 본다.

아저씨는 아저씨 고집대로 또 땅을 판다. 그러면서 또 성과도 없이 튕겨 나오는 삽질을 한다. 힘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떨어진다. 이런 땅은 정말 화가 난다. 힘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땅 팔 마음을 떨어뜨리는 땅은 정말 화딱지 난다.

우리가 파낸 흙더미 위에서 자연스럽게 짜장면을 올려놓고 먹는다. 많은 사람이 지나가면서 우리 짜장면을 보고, 우리가 파다만 땅을 구경한다. 그렇지만 아저씨와 나만 알고 있는 이 징그러운 땅에 대해선 아무도 모른다.

흥분한 나를 아저씨가 말리지만 오함마로 때리고 꼬챙이로 찔러대고 삽으로 찍는다. 내가, 내 마음이 포기한 지점을 찍고, 또 찍는다. 주전자만 한 돌멩이가 빠져나오면서 삽이 들어가는 흙이 보인다. 그때의 기쁨은 정말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저 깊은 곳에서 삽에 부딪히는 쇳덩어리 소리가 텅텅하고 들리면 다 판 거다. 밖으로 내가 나오면 아저씨가 담배를 물고 들어간다. ‘깔깔이’를 찾고, ‘샌들’을 채워서 수도 본관에 구멍을 뚫는다. 좁은 흙 속에서 작업을 마친 아저씨 손은 항상 상처투성이다. 일을 마치면서 밖으로 나온 아저씨는 꼭 싸구려 자기 담배를 권한다. 친구에게, 전우에게 권하듯이.

독하다. 다섯 번 빨면 없어지는 싸구려 담배지만 받아 피운다. 우리는 서로 포기한 지점에서 서로를 위해 싸워준 거다.

상처투성이 손에 흉하게 탄 얼굴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구경한다. 자식들도 부끄러워하는 노가다 인생이다. 강하고 또 강하다. 굵은 근육과 오기가 있다. 흙처럼, 아스팔트처럼 살아간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노가다 아저씨들은 모두 이 힘든 노동에 두려움이 있다. 그리고 수시로 한계를 만난다. 마음이 막힐 때가 있다. 그래서 담배를 피운다. 마음이 포기하는 지점에서 담배를 문다. 이렇게 번 돈으로 집에 가서 싸운다. 이걸로 어떻게 애들 공부시키느냐고. 그러면 또 담배를 문다. 마음이 답답해서 담배를 문다. 더 우습게 들리겠지만 이렇게 일하는 분들이 얼마나 섬세하고 예민하며, 쉽게 웃고,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얼마나 사소한 것에 서운해하고, 쉽게 우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얼마나 놀고 싶어 하는지, 쉬고 싶어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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