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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27. 2016

04. 내가 포기한 지점에서 누군가는 시작한다.

<나는 언제나 술래>

군대 가기 전에 수도공사를 따라다녔다. 6개월 정도 따라다녔다. 도로나 아스팔트 중간쯤 땅속으로 수도 본관이 지나가는데 우리는 땅을 파서 본관에서 수돗물을 따내는 일을 했다. 새로 지은 건물에 수돗물을 연결하는 공사인데 준공에 꼭 필요한 공사라 건물주로부터 대우가 좋았다(담배를 잘 사준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일하면서 견문을 넓히고 싶었는데 기사 아저씨를 빼면 오십 대 아저씨랑 딸랑 둘이다. 그렇게 6개월 동안 아스팔트를 부수고, 오함마로 콘크리트를 깨고, 지겹도록 땅을 팠다.
    

 
경기도 땅은 흙이 좋다. 서울 땅은 대부분 건축 쓰레기가 땅속에 있어서 땅 파기가 아주 고약하다. 우리는 새참으로 짜장면을 먹었는데 삽질이 얼마나 사람을 배고프게 만드는지 땅을 파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다. 
     
어떤 땅은 정말이지 약점이 보이지 않는다. 이쪽저쪽 다 돌이라서 삽이 튕겨 나온다. 꼬챙이도 들어가지 않고, 파는 게 아니라 땅을 떼어내야 하는 땅, 그렇게 질긴 땅이 있다. 삽질하다가 지치는 건 물론이고 머리에서 생각이라는 게 사라진다. 겁이 나서 다음 삽을 어디로 찔러야 할지 마음이 막히는 부분이 생긴다. 
     
그러면 아저씨가 그 좁은 공간으로 들어온다. 내가 포기한 지점, 삽을 어디로 찔러야 할지 알 수 없는 지점에서 아저씨는 다시 시작한다. 담배를 한 대 피면서 내가 포기한 지점을 본다. 
     
아저씨는 아저씨 고집대로 또 땅을 판다. 그러면서 또 성과도 없이 튕겨 나오는 삽질을 한다. 힘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떨어진다. 이런 땅은 정말 화가 난다. 힘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땅 팔 마음을 떨어뜨리는 땅은 정말 화딱지 난다. 
     
우리가 파낸 흙더미 위에서 자연스럽게 짜장면을 올려놓고 먹는다. 많은 사람이 지나가면서 우리 짜장면을 보고, 우리가 파다만 땅을 구경한다. 그렇지만 아저씨와 나만 알고 있는 이 징그러운 땅에 대해선 아무도 모른다. 
     
흥분한 나를 아저씨가 말리지만 오함마로 때리고 꼬챙이로 찔러대고 삽으로 찍는다. 내가, 내 마음이 포기한 지점을 찍고, 또 찍는다. 주전자만 한 돌멩이가 빠져나오면서 삽이 들어가는 흙이 보인다. 그때의 기쁨은 정말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저 깊은 곳에서 삽에 부딪히는 쇳덩어리 소리가 텅텅하고 들리면 다 판 거다. 밖으로 내가 나오면 아저씨가 담배를 물고 들어간다. ‘깔깔이’를 찾고, ‘샌들’을 채워서 수도 본관에 구멍을 뚫는다. 좁은 흙 속에서 작업을 마친 아저씨 손은 항상 상처투성이다. 일을 마치면서 밖으로 나온 아저씨는 꼭 싸구려 자기 담배를 권한다. 친구에게, 전우에게 권하듯이. 
     
독하다. 다섯 번 빨면 없어지는 싸구려 담배지만 받아 피운다. 우리는 서로 포기한 지점에서 서로를 위해 싸워준 거다. 
     
상처투성이 손에 흉하게 탄 얼굴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구경한다. 자식들도 부끄러워하는 노가다 인생이다. 강하고 또 강하다. 굵은 근육과 오기가 있다. 흙처럼, 아스팔트처럼 살아간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노가다 아저씨들은 모두 이 힘든 노동에 두려움이 있다. 그리고 수시로 한계를 만난다. 마음이 막힐 때가 있다. 그래서 담배를 피운다. 마음이 포기하는 지점에서 담배를 문다. 이렇게 번 돈으로 집에 가서 싸운다. 이걸로 어떻게 애들 공부시키느냐고. 그러면 또 담배를 문다. 마음이 답답해서 담배를 문다. 더 우습게 들리겠지만 이렇게 일하는 분들이 얼마나 섬세하고 예민하며, 쉽게 웃고,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얼마나 사소한 것에 서운해하고, 쉽게 우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얼마나 놀고 싶어 하는지, 쉬고 싶어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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