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특별할 것 없는 하루의 행복

<오늘 하루가 작은 일생>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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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결핵을 앓았고 그 영향으로 폐의 기능이 떨어져 운동은커녕 ‘약간의 무리’조차 할 수 없었다. 서민 동네에서 작은 이비인후과 의원을 하며, 평일에 진료하고 일요일에는 쉬고 밤에 청주 딱 한 홉을 반주 삼아 텔레비전으로 야간 경기 보는 것을 즐겨하는 분이었다.

동급생 몇인가가 대학병원의 교수가 되고, 또 몇은 병원장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어도 그다지 부러워하는 기색 없이 담담했다. 차는 달리기만 하면 되고 옷은 입어서 편하면 된다는 식이라 브랜드나 고급품에도 관심이 없었다.

욕심이 없다고 해서 그럼 고매한 인격자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뭔가가 마음에 안 들면 언짢은 내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은 가족 된 사람들에게는 어쩐지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가 조금 더 정력적으로 활동하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곤 했으니까.

당연히 화려한 자리 같은 것과도 인연이 없는 분이었는데, 어쩌다가 결혼 피로연에 초대받아 축사를 할 기회가 한 번 있었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됐던 나도 함께 초대받은 자리였다. 신랑은 엘리트였고 대기업 중역이던 그의 부친이 차기 사장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도는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어떤 이야기를 할까 조마조마했었는데 내용은 “평범하고 아무 특별한 일 없는 하루만큼 행복한 날은 없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그 당시 아버지의 생활은 특별히 대단한 수입이 있다든가, 커다란 업적을 세웠다든가 하는 것과는 인연이 없었다. 아무 특별한 일도 없는 평범한 일상이라니, 그러면 진보도 발전도 없지 않나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아버지의 말은 어린 내게 왠지 진지하게, 그리고 강한 설득력을 갖고 다가왔었다.

파리에 출장 갔을 때의 일이다. 좁은 골목에 면한 호텔 창문을 열자 근처 건물 앞에 위장복으로 몸을 감싸고 기관총을 든 군인 둘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출장 업무를 마치고 파리에서 일본으로 돌아온 날 밤, 구마모토에서는 진도 7의 지진이 일어났다.

테러와 지진.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아주 조금이라도 시간과 장소가 어긋났더라면 직접 겪었을지도 모를 위기를 피해가며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든 순간, “아무것도 특별히 달라진 것 없는 하루가 행복”이라는 아버지의 말이 기억 위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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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그렇게 말한 이유가 무엇인지 안 것은 당신이 세상을 뜨고 난 뒤였다.

전쟁 중 피난지로 향하다가 히로시마에서 구조 활동에 참가했던 아버지는 방사능 피폭이 원인이 된 면역 결핍으로 중증 결핵에 걸렸다. 물론 이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안 사실이다.

히로시마 이야기는 아버지의 마음속에 깊이 봉인되어서 직접 그 참상을 들은 적이 없다. 구조 활동에 참가했다면 아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지옥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아무 특별할 것 없는 하루’의 고마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 그런 평범한 하루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산다. 살아있고, 가족과 친구가 있고, 생활의 장이 있는 대수롭지 않은 하루가 실은 ‘특별한 하루’라는 것을 깨달을 때, 세상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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