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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n 11. 2018

02. 존 러스킨과 깊게 보기

<슬픈 날엔 샴페인을>



와인 감상법을 이야기할 때마다 세 수도사 이야기가 생각난다. 옛날 독일의 어느 수도원에서 한 수도사가 와인에서 나무의 냄새가 난다고 느꼈다. 몇 번이고 계속해서 맛을 봐도 분명히 와인 통의 나무에서 나는 맛이 아니라 다른 것에서 나는 나무 맛이었다. 그는 자신의 감각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동료 수도사를 불렀다. 그는 진지하게 맛을 보고 나서 “그러네요. 이 와인에는 분명 다른 맛이 있어요. 그런데 나무가 아니라 무슨 쇠붙이 맛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래서 또 다른 수도사를 불렀다. 그도 심각하게 맛을 보고는 나무나 쇠붙이가 아니라 가죽 맛이 난다고 했다. 세 사람 모두 다른 사람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어서 계속해서 맛을 보았고, 마침내 와인 통이 비어 버렸다. 그들은 왜 서로 다른 맛을 느끼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급기야 와인 통을 깨보기로 했다. 그런데 깨진 와인 통의 밑바닥에는 나무 조각에 가죽끈으로 매달려 있는 녹슨 열쇠가 놓여 있었다. 믿기 어렵다면 기록에 남아 있는 다른 이야기를 보자.
  
미국에서 금주령이 내려지기 전인 1920년경, 캘리포니아 주에 알몬드 모로우(Almond Morrow)라는 전설적인 와인 전문가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어느 와이너리의 와인 맛이 유난히 평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 이유가 분명 일정한 면적에서 품질은 생각지 않고 최대한 많은 양을 산출하기 위해 농사를 지은 결과일 것이고, 그럴 경우 그 포도밭의 주인은 분명히 땅을 담보로 은행에서 빚을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빚의 규모까지 예측했는데, 실제로 빚의 액수는 정확했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보고, 냄새 맡고, 맛보는 일반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샘플의 맛만 기억할 수 있고, 거기에다가 약간의 전문적인 테크닉만 숙지한다면 당신도 와인을 품평하는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감각은 늘 조금씩 다르다. 색깔을 감지하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는 감각은 매일 매일이 다르고, 하루 중에도 아침과 낮과 저녁이 다르고, 방의 온도에 따라 다르고, 잔의 크기나 모양에 따라 다르고, 조명의 상태에 따라 다르고, 심지어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와인 한 잔을 마실 때 우리의 감각은 보통 한 가지로 모아진다. 그래서 보통은 좋다, 괜찮다, 아니면 부드럽다, 목 넘김이 좋다는 것과 같이 총체적인 느낌만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종합적으로 모인 그러한 느낌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나눈다. 와인을 전문적으로 감상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영국의 수채화가이자 미술평론가, 비평가, 사상가인 존 러스킨은 사람들에게 데생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그 방법을 가르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었다. 데생은 인류에게 글을 쓰는 기술보다 현실적으로 더 중요하며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모든 아이들에게는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 기술이라고 주장했다. 데생은 아이들에게 보는 법을 가르쳐주는데, 그냥 눈만 뜨고 보는 것이 아니라 살피게 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눈앞에 놓인 것을 우리 손으로 재창조하는 과정을 통해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깊이 이해할 수 있고 그 아름다움의 구성요소들에 대해 좀 더 확고한 기억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이나 루브르 박물관, 영국의 대영박물관 같은 곳을 가보면 실제로 어느 그림 앞에서 열심히 그것을 따라 그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바로 그런 이유에서 와인을 감상하는 것도 러스킨의 주장과 다를 것이 없다. 단순하게 마시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녹아 있는 세계를 하나씩 분석하고 음미하면서 느껴보는 것, 다시 말해 ‘깊게 보기’라고 할 수 있다.



깊게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시간과 공간을 잊어버리게 된다. 들여다보고 있는 자신도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한 순간을 자꾸 경험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그 나를 보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게 진짜 나다. 진아(眞我), 참나 혹은 여여(如如)라고도 표현한다. 진짜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우리들은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사랑과 슬픔과 고통을 안고 현실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그 나를 진짜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진짜 나라는 것이 내 안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가짜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며 산다는 것은 상황이나 환경으로부터 휘둘리지 않고 살 수 있는 매우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다. 깊게 보면 삶은 지금 여기에, 행복도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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