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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n 21. 2018

05. 이 세상 곳곳에 누군가는 분투하고 있다.

<당신의 재능이 꿈을 받쳐주지 못할 때>



나는 일요일 아침에는 지하철에 자리가 많을 테니 부족한 잠을 자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지하철 입구에 도착하자 오가는 사람들과 아침거리를 파는 노점상들로 북적였다. 평일 오전 8, 9시에 출근할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하철이 붐비지는 않았지만, 빈자리가 없어서 서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놀랍기도 하고 좀 의아했다. 다들 이 새벽에 잠도 안 자고 어딜 가는 걸까?

이 도시에서 8년을 사는 동안, 나는 주말에 일찍 일어나서 어딜 가본 적도 없고, 밤늦게까지 야근하고 온 적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곤히 자는 동안, 누군가는 일어나서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몇 년 전에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러 갔을 때가 생각났다. 5시에 집을 나섰는데 저 멀리 매일 지단꽌빙(鷄蛋灌餠, 중국 길거리 음식)을 파는 노점상 부부가 보였다. 아침 장사를 준비하는지 머리 위로 커다란 파라솔을 펴고 있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부부가 새벽 5시에 장사를 시작하고, 내가 출근에 나서는 9시에는 장사를 접고 귀가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부부의 표정에는 삶의 희망이 가득해 보였고, 졸려서 멍한 내 얼굴과는 달리 생기가 돌았다. 잠시 후, 그들의 첫 지단꽌빙은 출근길을 서두르던 청년에게 돌아갔다. 부부가 일찍 일어났던 건 자신들이 먹고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졸린 눈으로 출근하는 이 도시의 청년들에게 조금이나마 따뜻한 위로를 전해주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자주 받는다. ‘세계 500대 기업에 다니거나 공무원이 아니면 별 볼 일 없는 것 같고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 5시에 퇴근하는 일이 아니면 남들한테 말하기가 부끄럽고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들의 기분을 충분히 이해한다.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고, 바라던 대로 유명한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아지면서 나는 생각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야간 비행기를 타러 가거나 한밤중에 공항에 도착하면, 보안검색 요원들, 세관 검사를 하는 사람들, 여기저기 바쁘게 뛰어다니는 지상 근무원들을 보게 된다. 그들은 밤낮없이 일하는 이 직업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나라면, 밤 12시에 어떤 물건을 비행기에 갖고 타면 안 되는 이유를 참을성 있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한겨울에 TVC를 촬영하려면 새벽 4시까지 촬영장에 도착해야 했다. 3시 반에 나는 침대 속에서 확 때려치울까 고민하며 괴로워하다 결국 촬영장으로 향했다. 촬영장에서 군용 외투를 두르고 내게 따뜻한 차와 빵을 건네주던 촬영기사의 아내, 시원시원한 말투로 모든 게 다 준비되었다고 알려준 호텔 직원 덕분에 나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내가 하는 일과 다른 성격의 일,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이라고 별 볼 일 없거나 비천한 게 아니다. 그 일을 하는 사람들도 우리처럼 중요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하는 일들이 우리처럼 가만히 사무실에 앉아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면 일 처리가 끝나는 직업보다 더 중요하다.

자기 스펙이 괜찮다고 해서 자신을 스스로가 세상에서 중요한 사람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자기가 남들보다 돈이나 다른 게 더 많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이 세상에는 누가 누구보다 훌륭하다는 건 없다.

아침에 지단꽌빙을 파는 사람도 없고, 한밤중에 공항 화장실을 청소하는 사람도 없는 삶을 상상해보자. 묵묵하게 일하는 그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편안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도시 곳곳에서 각자의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영혼과 신념은 모두 평등하다. 그 사람들이 하는 일이 지금은 보잘것없고 볼품없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다 그런 시절을 겪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난주 토요일에 나는 지하철에서 내려 다시 택시를 타고 겨우 학교에 도착했다. 너무 피곤했는지 택시에서 그만 곯아떨어졌는데, 택시 기사가 뒤돌아서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가씨, 개강해서 힘들죠? 난 5시부터 나와서 일하고 있어요! 아가씨는 집에서 그냥 자도 될 텐데, 그러면 아무것도 배울 수가 없겠죠? 그래도 2년 후면 대학원을 졸업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이 세상 곳곳에서 누군가는 분투하고 있다. 그러니 울지 마라. 당신 혼자만 애쓰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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