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언젠가는 모두 헤어진다는 사실이

<시 읽는 엄마>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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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_김영산

그가 죽자, 그의 어머니는 미인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젊었다. 그의 어머니는 식당일을 하며 아들 삼 형제를 홀로 키웠다. 장남인 그가 죽자 고향에서 화장을 시켰다. 우린 대학시절을 함께 보냈다. 그는 졸업을 못하고 죽은 것이다. 그때 화장터를 처음 간 나는 불아궁이 앞에서 꺽꺽 울었다. 왜 그랬는지 화장장 굴뚝 연기를 바라보며 울음을 그쳤다. 갑자기 주변의 나무들이 출렁거렸다. 그 회오리바람을 나만 보았을까. 그 칠 년을 병상에 누웠다 죽어서인지 청년들은 조용했다. 어머니는 울지 않는 차가운 석상 같았다. 나는 상복 입은 여자를 좋아하는가 보다. 나는 미인을 껴안고 울었다. 그가 죽었을 때 그녀는 인근에서 소문이 자자한 미인이었다.

1월에 엄마가 하늘나라로 가신 즈음, 나는 참으로 큰 상실감에 시달렸다. 엄마를 잃고 난 이후 한없이 화나고 헤매던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정신이 아득해지도록 감정이 폭발하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했던 애정이 그렇게 깨져버리고 말았다. 눈에 비치는 풍경마다 눈물이 어려 제대로 바라보기 힘들 때도 얼마나 많았는지……. 상실감에 시달리던 내 마음을 친구는 충분히 이해해주며, 이런 말로 나를 감싸주었다.

“난 시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도 3개월이 넘도록 기분이 이상하고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는데. 넌 지금 얼마나 힘들겠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상황을 이해해주고 격려해주던 친구들. 그런 자매들과의 긴밀한 소통이 없었더라면 나는 가슴이 새카맣게 타서 산화되고 말았을 것이다.

엄마가 의식 불명으로 쓰러져 돌아가실 때까지, 나는 병원 침대 옆에서 번역한 원고를 다듬고 있었다. 앨리스 카이퍼즈의 소설 『포스트잇 라이프』였다. 지금 딸이 사춘기에 접어드니 더 깊이 와 닿는 소설이기도 하다.

산부인과 의사인 솔로맘과 열다섯 살 10대 소녀인 딸이 냉장고 문 위에 붙이는 메모를 통해 삶과 사랑, 그리고 죽음에 대해 주고받는 이야기. 소설이 참으로 그때 내 상황과 닮아 있었다. 그때 나의 엄마도 1년째 의식 불명인 상태에서 죽음과 사투를 벌이며, 최선의 삶을 희망한 상태였다. 우리 엄마 얘기 같아 비감 속에서 눈물을 줄줄 쏟으며 번역한 책이었다.

딸을 다 키워놓고 이제 좀 여유를 갖고 살겠구나 싶을 때, 클레어의 엄마는 유방암에 걸렸다. 엄마의 병이 심각한지도 모른 채 딸 클레어는 엄마에게 투덜대고, 급기야 남자친구 마이클과의 문제에서는 상처가 되는 말까지 한다. 보통의 자식들처럼 클레어도 엄마를 여자가 아닌 엄마로만 여기며 지낸다. 바쁜 엄마는 휴대폰도 없고, 딸 클레어와 대화할 시간도 없다. 기껏 소통할 수 있는 도구란 짧은 메모와 편지뿐이었다. 여기서 클레어 엄마의 이야기는 애달프고 가슴 저렸다. 그녀의 무력감과 슬픔은 바로 내 엄마의 것이었으므로.

“기운도 없고 몹시 두려워. 나의 삶은 무엇이었을까? 수많은 세월 동안 내 꿈을 살아야 했는데. 다 지나가버렸어. 시간들을 낭비하고 중요한 걸 놓친 것만 같구나. 그래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딸, 네가 있구나.”

“나는 아프리카도 못 가봤고, 프루스트도 읽지 못했어. 피아노 연주도 할 줄 모르고, 악보도 볼 줄 몰라. 스카이다이빙도 해본 적이 없어. 사막도 본 적 없어.”

“그런데 피곤하구나. 정말 피곤해. 그리고 오늘은 몸이 아주 안 좋단다.”

구절구절 가슴이 찢어지도록 와 닿는 대목이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죽음을 마주하게 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었다.

만일 우리 엄마가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다면,
어떻게 작별 준비를 하겠는가?

‘저를 잊어주세요’라고 말하며 커피 한 잔을 사약처럼 마시듯 간단히 죽을 수는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평상시에 죽음을 준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엄마와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죽음과 친구 되는 법을 익히면, 서로를 더욱 사랑하게 되고 삶은 풍요로워진다. 텔레비전이나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남편을 잃고 실의에 빠진 나머지 정신을 놓거나 우울증에 빠져 허덕이고, 너무 상심해 병을 얻는 경우도 많다. 이것은 죽음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슬픔에 매어 있기 때문이다.

때가 되면 우리 모두 소멸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생긴 슬픔이다. 만약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편안해졌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으리라.

오늘만 해도 전화 통화를 하던 후배에게 들려온 소리가 나를 각성시켰다.

“선배, 이모가 암에 걸려 입원하셨어요.”
“몇 살이신데?”
“58세요.”
“아, 우리 인생이 참 짧네.”

이렇게 불쑥, 그 누구라도 시한부의 삶이 될 수 있다.

나부터 진작 죽음과 친구 되는 법을 익혔다면
엄마를 그렇게 빨리 보내드리진 않았으리라.
죽음 후에 우리가 다시 함께할 것이란
희망을 단단히 했다면
엄마가 슬픔에 덜 흐느꼈으리라.

죽음과 친구 되는 법을 익히면 삶을 좀 더 강하고, 편안하고, 성숙하게 만들 수 있다. 목회자인 내 여동생은 나에게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메일로 전해왔다.

“언니, 죽음을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정말 슬프고 끔찍한 일로 생각하지 말고,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준비로 여긴다면 그렇게 괴로운 게 아닐 거야. 후회 없는 생을 위해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부터 덕을 품고 살아가야겠지. 이기심을 버리고, 선과 덕을 실천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방법은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나누는 거야.”

김영산 시인은 울산의 화장장에서 겪은 일을 바탕으로
「미인」이라는 시를 썼다. 자신의 대학교 후배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것이었다. 시인의 말을 듣자면 이렇다.

“나는 울지 않는 어머니를 보며 너무 많이 울었다. 후배의 어머니는 죽음과 싸우고 있었다. 세월호 사건이 터진 후, 그 안간힘으로 버티는 어머니들을 보며 후배의 어머니와 오버랩 되었다. 그녀들이 미인이 아니고 누가 미인이랴. 죽음을 통과하지 않으면 미인이 아니기에.”

죽음을 대하는 방식은 모두 다를 것이다. 엄마는 울지 않았지만, 가슴속에서 통곡했을 게 분명하다. 무너지지 않으려 울지 않는 엄마. 엄마의 죽음을 통해 내가 깨달은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인생이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때의 죽음은 비관주의나 허무주의가 아니다.

언젠가는 모두 헤어진다는 사실이
살을 에는 듯 아프지만,
죽음을 생각하면
우린 더 많이 사랑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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