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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02. 2018

04. 침착함과 느슨함을 유지하기

<천재들의 생각 수업>



누구나 한 번쯤은 위대한 창조적 발견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봤을 것이다. 어떻게 듣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런 이야기에는 예외 없이 거부할 수 없는 극적인 부분이 나 온다. 좀 더 큰 극적 효과를 위해 나래이터는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한다. “바로 그때 폭풍우를 몰고 오는 새까만 구름이 몰려오고, 밝은 빛 한 줄기가 내려와 흔들리는 수면 위로 떨어졌다. 바로 그 순간 사랑스럽고 신비로운 뭔가가 떠올랐다.” 

뉴턴의 머리에 떨어진 운명적인 사과에서부터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의 널리 알려진 서사시 《쿠빌라이 칸(Kubla Khan)》에 이르기까지. 이 시는 어느 날 새뮤얼이 아편에 취해 몽상을 즐기고 있을 때, 그에게 갑자기 전체 시가 떠올랐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항상 극적 강조에 크게 무게를 둔 모든 이야기에 미화되어 나오면서 영감이 나타나는 결정적 순간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있다. 

이러한 생생한 발견 이야기의 압권은 호도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놀랄 만큼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는 점이다. 다만 그러한 이야기가 충분히 강조하지 않거나, 때때로 언급도 하지 않는 부분은 마법 같은 통찰의 순간에 선행하는 기나긴 불확실성의 시간이다. 이는 단순히 오랫동안의 노력을 간과한다는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창의력이라는 돌파구를 찾으려 하는 결정적 순간을 위해서 미리 선행되어야 하는 불확실성과의 긴 몸부림을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는다면, 그러한 이야기들은 창의력이라는 꽃을 피울 수 있는 토대를 외면하는 셈이다. 이러한 몸부림을 지속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창의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며, 혼돈의 방황을 끌어안지 못한다면 상상력이 자라는 토대도 상실해 버리고 말 것이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은 느슨하게 가만히 있는 것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느낀다. 심지어 이 상태가 오래간다면 더욱 그러하다. 모호함은 사람을 혼란스럽고 심지어 불안하게 만든다. 우리가 뭔가를 조사할 때에 선명한 윤곽이 그려지는 틀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리고 ‘예’ 또는 ‘아니오’로 결정할 수 있는 깔끔하고 분명한 해답을 선호한다. 애매한 상황, 오합지졸, 매일매일 반복되는 불확실성, 이런 것들은 우리를 지치게 한다. 흐릿한 회색의 중간지대를 완전히 배제하고 검거나 희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상황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창의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일을 시작하는 데 따르는 모호한 상황에 훨씬 더 관대한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체계적으로 정비되어 있지 않은 시간을 더 잘 받아들이고 심지어 반기기도 한다. 그들은 빠른 결론이나 최종적인 결말을 간절히 바라지는 않는다. 예상하지 못한 어떤 흐름이 그들을 어디로 데려갈지 궁금해하면서 느긋하게 방황하는 오랜 시간을 기꺼이 즐긴다. 이러한 정신적 여유가 창의적 상상력의 산실이다. 나중에 힘들게 노력하며 땀을 흘릴 시간은 충분할 것이다. 



이처럼 모호하게 보내는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서 많은 맥아더상 수상자들도 언급했다. 시인 더글라스 크레이즈가 시를 쓰기 시작할 때 느끼는 ‘흐릿하고 감상적인 순간’ 그리고 마야 문명을 연구하는 젊은 이인 데이비드 스튜어트가 특별한 생각 없이 상형문자로 된 글 무더기를 무작위로 골라내는 시간들이 바로 그렇다. 신경생리학자 로버트 샤플리가 반은 농담조로 좋은 실험실과 그렇지 않은 실험실을 구별하는 방법을 얘기할 때도 그렇다. 필요할 때 적당히 떼어내서 사용할 수 있는 고물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 좋은 실험실이라고 그는 얘기했다. 정치학자 로버트 액슬로드가 잡지를 볼 때 소위 자신의 분야와 관련된 기사가 없을 때도 일상적으로 훑어보는 경우도 그런 것이다. 그리고 영화감독인 프레드릭 와이즈먼도 그렇다. 불확실성의 대가이자 다큐영화의 최고 대가인 그가 영화 제작을 구상하는 방식도 정확히 그런 식이다. 사실 느슨함을 유지하는 것은 와이즈먼 이 영화를 제작하는 방식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따라서 그의 작업 방식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게 상당히 가치가 있을 것 같다. 

하나의 기준틀을 과감히 벗어난다는 것은 대부분의 맥아더상 수상자들에게 익숙한 일이다. 시인이자 에세이 작가인 브로드스키는 종종 음악, 특히 하이든 음악을 즐겨 듣는다고 한다. 문학을 하는 학생이라면 작곡가로부터 작품에 관한 많은 암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눈이 어떻게 음영과 색을 인식하는지 알아내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 신경생리학자 로버트 샤플리는 이탈리아의 화가 카라바조의 작품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프레드 와이즈먼은 자신이 처한 문제와 비슷한 문제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해결하는지 알기 위해 시를 읽고 예술작품을 감상한다. 연극 감독 피터 셀라스도 마찬가지이다. 환경운동가 레스터 브라운은 자신의 워싱턴 D.C. 싱크탱크인 ‘월드 워치’에서 일할 사람을 채용할 때 원칙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은 전문가를 채용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야 ‘범주의 고착화’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느슨함을 유지하고 배회할 자유를 자신에게 허락하며, 외부의 영향력에 자신을 기꺼이 내맡기는 것, 그리고 어떤 종류의 개념이나 수단도 기꺼이 즐길 수 있도록 유연한 사고를 가꿔나가는 것, 바로 이것이 새로움을 창출하고자 하는 어떤 목적 있는 일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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