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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12. 2018

01. 말 때문에 망해본 적 있나요?

<말기술>




말은 어떻게 결정을 망치는가?

회사에는 무엇을 구매하고, 누구를 채용하고, 어떤 자원을 어디에 분배할지를 결정하는 여러 팀이 있다. 지난 20년간 나의 전문 영역은 주로 위탁 지출 관리였지만, 그 외에도 임원, CEO 고문, 컨설턴트, 이사 등 다양한 자리에서 결정 과정을 주도했다. 그간 함께 일한 조직은 연 매출 수천억대 기업부터 스타트업, 국제비영리단체까지 다양하다. 

성격은 제각각이었지만, 어느 조직이든 똑같은 목표를 추구했다. 투자한 자원 대비 최대의 가치를 얻어낼 것! 이 목표를 위한 의사결정 과정 역시 대체로 비슷하게 시작된다. 먼저 목표를 정하고, 정보를 수집하며, 비용-편익 관련 데이터를 분석한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 이르면 추진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체계적으로 분석하기보다 일부 결정권자가 특정 아이디어에 매달리게 된다. 그 아이디어가 하나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늘 비슷한 결과를 낳는다. 다른 고려사항들은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게 되고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러한 패턴의 핵심에는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장과 표현이 있었다. 이른바 인사이더만이 알 수 있는 정보와 지식을 강조하는 태도다. 

“그 업체가 이 분야 최고라니까.” 
“지금 와서 결정을 바꾸기엔 너무 늦지 않았나요?” 
“우리는 다르잖아. 그 방법은 우리에게 맞지 않아.” 

또는 다음과 같이 좀 더 일반적인 통념이 상황을 좌우할 때도 많다. 

“돈은 쓴 만큼 값을 하지.” 
“강물 한가운데서 말을 갈아탈 수는 없다.” 
“고객이 왕이다.”

듣기에는 그럴듯하다. 들을수록 맞는 말 같고, 딱히 반박할 방법이 없다. 회의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순간, 논의가 중단되고 최종 결정이 내려진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악수를 나누고,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면서 회의를 끝낸다. 
  

나의 첫 번째 비싼 문장

내가 비싼 문장에 처음 눈뜬 것은 금융회사에서 조달부서 부장으로 일하던 때였다. 당시 우리 팀은 회사가 특정 거래처에 매년 10억 원이 넘는 대금을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그 거래처의 이름이나 맡은 일에 대해서 들은 바가 없었기에 해당 지출과 관련이 있는 인사부 부장에게 문의했다. 그의 답은 이러했다. 

“우리 팀이 신원조사를 외주하는 곳이죠. 일을 꽤 잘해요. 그쪽에서 지출을 더 줄일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왜 그렇죠?” 
“8년 전 가격을 그대로 유지해주고 있거든요.” 
그렇군. 

별문제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신원조사라는 업무가 뭔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인사부의 부서장을 만나 한 번 더 물었다. 

“아, 그 업체? 우리하고 잘 맞는 곳이죠. 특히…….” 
특히 뭘까? 
“8년 전 가격을 그대로 유지해주고 있거든요!” 

흠, 같은 대답을 두 번 듣게 되자 호기심이 솟구쳤다. 나는 신원조사가 어떤 일인지, 적당한 가격은 얼마인지를 여전히 잘 몰랐다. 그래서 부서장의 이야기를 들은 뒤 우리 팀은 쇼핑에 나서기로 했다. 즉, 시장을 조사하고, 유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업체들을 만나고, 현재 우리가 적당한 지출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나는 현 거래처의 영업부서에 전화를 걸어 우리가 다른 업체를 검토할 계획임을 전했다. 

“왜 굳이 다른 곳을 알아보시려고 하는지 모르겠네요.” 
상대는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희와 좋은 관계를 맺고 계시잖아요. 게다가…….” 
게다가 뭘까? 
“저희는 8년 전 가격을 그대로 유지해드리고 있죠!” 

나는 바로 그 순간 큰돈이 새어 나가고 있었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아직 내 감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예정대로 검토를 진행했다. 시장을 조사하고, 다른 후보 업체를 선정하고, 거래를 위한 공식 문의를 수행했다. 그렇게 이 분야에 대해 알면 알수록 “8년 전 가격 그대로”가 정말 좋은 조건인지 의심이 깊어졌다. 

그건 거짓말이었다.

우리는 현재 금액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더 좋은 품질의 솔루션을 찾아냈다. 그 결과, 연 지출이 10억에서 5억으로 대폭 줄었다.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는 말

그러나 이야기를 되짚어보면, 우리 회사가 지난 몇 년간 매해 수십억 원을 초과로 지불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의 거래처는 사기를 쳤다고는 할 수 없어도 분명 고의로 우리에게 품질 면에서나 가격 면에서 시장 기준에 못 미치는 서비스를 판매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가격 인상 없는 거래가 좋은 거래’라는, 많은 사람이 곧이곧대로 믿지만 완전히 틀린 경험칙 때문이었다. “그 업체는 8년 동안 가격을 인상하지 않았다”라는 말은 알고 보니 아주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한 문장이었다. 

우리는 속고 있다. 전통적인 교훈, 경험에서 찾은 지혜, 누구나 아는 상식을 책으로 쓰면 도서관 하나를 너끈히 채울 정도다. 그런 말은 자주 인용되고 널리 인정받고 또 가끔은 들어맞지만, 어울리지 않는 상황에 적용하면 막대한 피해를 낳을 수 있다. 단순한 조언이 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을 수 있고, 오히려 우리를 기만할 수도 있다. 어떤 상황에서는 맞는 말이 다른 상황에서는 틀릴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말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방해를 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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