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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13. 2018

09. 60세부터의 인생 정리학

<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




“아니? 이럴 수가?”

도쿄의 지하철에서 다니구치 가즈미 씨가 놀라면서 다가와서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나 역시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행선지를 바꿔서 도쿄 중심부 긴자의 유라쿠초로 갔다. 장소는 호텔 이름표를 달고 있는 자그마한 바였다. 카운터 테이블에 앉아서 칠레산 하우스 와인 두 잔을 주문했다. 다니구치 씨는 유명 출판사에서 잔뼈가 굵어서 책에 대한 정보가 많은 사람이다. 와인으로 건배를 하고서 물었다.

“ 『너희들은 어떻게 살아가지?』라는 오래된 책에 대해서 아시죠?”
“물론입니다. 아시다시피 80년 전에 나온 책입니다.”
“오늘 한 서점에서 보니 밀리언셀러가 되었더군요.”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한 나머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누구에게나 절실한 문제이지요. 그래서 뒤늦게 독자들의 시선이 집중된 것이지요.”

그러면서도 다니구치 씨는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 역설했다.

“일본 사회가 큰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정치가들은 확고한 이념이 없고, 젊은이들은 도덕성이 없어요. 덧붙여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겸허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또한 우리와 다르지 않는 현실적인 문제였다. 우리 사회가 지금 이념과 도덕성 문제로 가슴앓이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100세 시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시대의 흐름에 부합되고 모두가 공감하는 재교육을 받아야 할 듯싶다. 100세 시대의 건전한 완주를 위해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생각 없이 말을 던지고 함부로 행동을 한다. 그러한 것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가정교육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나의 경험에 의해서다. 항상 어른들로부터 배우고 익힌 사랑과 예절이 근본이다. 인간의 삶은 지식만이 아니라 지혜의 삶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남을 이해하는 배려라는 깊은 마음이 우러나는 것이다. 이렇게 자란 사람은 인상도 좋다. 물론, 예외가 있겠지만 인상이 넉넉한 사람은 마음도 넉넉하다. 그런 가운데 재산도 넉넉해진다.

노동은 축복이라네. 그것을 통해 우리의 행동을 돌아볼 수 있다면 말이야. 그러나 일에만 매달려 삶의 의미를 도외시한다면 그것은 저주야.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흐르는 강물처럼』에 흐르는 글이다. 그렇다. ‘사람이 노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축복을 좇아 지나치게 일에만 매달리다 보면 삶의 가치를 잃어버릴 수가 있다.

“자넨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분주히 사는가?”
“책임감 때문이지요.”

소설의 주인공이 꿈속에서 천사와 나눈 대화도 마음에 와닿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임감이라는 멍에를 지고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일본의 우치다테 마키코의 소설『 끝난 사람』을 펼쳐 봤다. 소설에는 샐러리맨의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나라는 인간, 무엇 하나 특별히 사회에 영향을 끼칠 만한 일도 없이 그저 가족이나 부양하다가 끝나 버린 하찮은 인생인가? 설사 본부 임원이 되었던들, 은행장이 되었던들 ‘떨어진 벚꽃’ 신세였을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명문 도쿄 대를 졸업한 후 일본 굴지의 은행에 취직한다. 오로지 일에 매달리면서 앞만 보고 달린다. 그러나 임원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자회사로 밀린다. 결국 고작 30여 명의 자회사에서 정년을 맞은 것이다.

정년퇴직이라… 이건 뭐 생전 장례식이다.

주인공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을 실컷 할 수 있다는 기대도 한다. 하지만 마음속은 왠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아아! 나는 ‘끝난 사람이다’라는 생각에 다시 한 번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 들었다”는 대목에서 느낄 수 있다. 정년퇴직 날의 소설 속 묘사는 압권이다.

펑펑 폭죽이 터지고 남녀 직원 둘이 앞으로 나와 꽃다발과 기념품 같이 생긴 것을 내밀었다. 전 직원이 승용차에 둘러서서 큰소리로 인사하고 손을 흔들고 난리다. 차가 움직이고 나서 조금 있다 돌아보니 이미 개미 새끼 한 마리 남아 있지 않았다.

모두 서둘러 사무실로 돌아가 자기 업무를 시작했겠지. 내가 없어졌는데도 말이다. 누구 한 사람, 아무것도 곤란할 일이 없이….

소설을 넘어 현실적 상황이기도 하다. 연말연시 인사 철을 맞아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년이라는 ‘시계의 축’이 과거와 달리 더욱 빠르게 흔들리고 있으니….

‘정년퇴직을 했으나 아직 머리도 팽팽 돌아가고 몸도 건강하다. 일도 다른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주인공. 그러한 주인공에게 재기의 기회가 올 수 있을까? 우리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 그날을 기대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내가 잘 아는 A 씨는 지금 마을버스 운전을 하고 있다. 대기업에 공채로 입사해서 28년 동안 근무한 간부가 회사에서 나와 어느 누구에게도 청탁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한 운전사의 길이다. 처음에는 아는 사람을 만날까 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선글라스로 위장을 했으나, 지금은 모두 벗어던졌단다. 그의 멘트에 인생사가 녹아 있다.

“버스 운전을 하다 보니 상대하는 사람들이 대기업의 직원들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단지 쓰는 언어가 다소 세련된 것과 막 내뱉는 정도랄까요? 요즘 만나는 사람들이 대기업 시절보다 훨씬 정이 많아서 좋습니다. 치열한 경쟁도 없고요.”

아무리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대기업의 간부 출신이 마을버스 운전을 한다는 것은 일반인으로서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삶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가치관이 달라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샐러리맨들이 자신의 나이와 관계없이 회사의 흥망에 따라 크게 흔들린다. 그래서 은퇴 후에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운전사 양반! 바나나 하나 먹어요.”

나이 든 할머니가 운전석 옆에 놓고 가는 바나나를 먹으면서 감동했다는 A 씨의 말이 오래도록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메아리쳤다.

‘운전사 양반! 바나나 하나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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