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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23. 2018

05. 글로벌 고객도 등한시하지 마라.

<나에게 불황은 없다>



오늘날 시장은 지구촌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명동 인근에 위치한 S백화점 본점은 외국 관광객이 유독 많이 온다. 그래서 판매사원들에게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을 무료로 가르쳐 주기도 한다. 관광객에게 좀 더 편하게 쇼핑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들이 한 해 쇼핑으로 전체 매출에 10프로 올릴 정도이다. 더구나 내가 있는 매장에서는 15프로를 넘기기도 했으니 외국인 손님이 백화점을 얼마나 많이 찾는지 짐작할 만하다. 물론 면세점이 때문에 더욱 세계 각지의 고객들이 방문하기도 한다. 생각보다 신사복 매장에도 많은 외국인 손님들이 방문한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체형이 다르고 좋아하는 패턴과 컬러가 다른 탓에 우리의 글로벌 고객은 재외 한국인인 경우가 많다. 신사복 한 벌을 사려고 해도 현지에서는 동양인 체형에 맞는 옷이 없어서 고민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런 고객이 많지는 않지만 나는 그분들이 방문을 하게 되면 어떻게든 옷을 팔려고 매달리지 않았다. 나는 외국인에게든, 재외 교민에게든 옷을 한 벌이라도 더 팔려는 욕심 때문에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망치는 게 싫었다. 내가 해외여행을 하면서 쇼핑할 때 가끔 눈살을 찌푸리고 그 나라에 대해서 나쁜 인상을 갖고 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되도록 해외에서 살고 있는 그들이 가장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고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심지어 고객이 원하는 최상의 상품이 없을 때는 타 브랜드를 소개해 주기도 했다.
  
그런 고객 중에 필리핀 고객이 한 분 계신다. 그분의 특성은 바지 욕심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었다. 그분은 처음 우리 매장에 들렸을 때 바지만 열두 개를 사 가셨다. 필리핀은 더운 곳이라서 정장 윗도리를 입을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바지만 구입한다는 것이었다. 더워서 땀을 많이 흘리는 탓에 자주 갈아입어야 하고 땀에 절어 찢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오실 때마다 바지만 엄청 사 가는 것이 이유였다. 그분과도 몇 년째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사실 처음부터 친구가 되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 인연을 맺은 후 SNS로 고객 관리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안부를 가끔 물으면서 서로 친분을 다져 나갔다. 필리핀 고객은 현지에서 사업을 하시는데, 1년에 한 번씩 업무차 한국에 나오곤 했다. 그분은 한국에 오기 전에 늘 미리 연락을 주어 방문 예정 사실을 알려 주었고, 나는 그 소식을 들으면 상품을 동영상으로 미리 보내 주어 그분이 한국에 왔을 때 옷을 고르고 입어 보는 시간을 절약하고 마음에 드는 옷을 제대로 고를 수 있게 준비를 해 놓았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는 상호 신뢰하는 관계로 성장했다.
  
호주 시드니에 거주하시는 고객 한 분은 현지 태권도 협회 회장님이셨다. 그분도 매년 한 번 정도 우리 매장을 찾으셨는데, 매년 만나다 보니 1년에 꼭 한 번은 봐야지 아니면 아쉬운 사이가 되었다. 고객과의 인연은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그분이 우리 매장을 찾았을 때 맞는 사이즈가 없어서 나는 타 브랜드 안내를 해 드렸다. 운동을 한 다부진 몸이라 특이 체형을 갖고 계셔서 일반 매장에서 쉽게 갖고 있는 사이즈가 아니었다. 그렇게 한번 스쳐갈 인연이라 생각하고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다음 해에 다시 우리 매장을 찾아 주신 것이다. 타 브랜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우리 매장을 찾아서는 ‘꼭 여기서 구매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런데 또 그분에게 맞는 사이즈가 없었다. 그날 바로 출국하신다고 하니 물건을 판매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결단을 내렸다.

“고객님, 그럼 해외 특송으로 보내 드리면 어떨까요? 물론 운임은 저희가 부담할게요.”

그분은 반색을 하며 좋아하면서 돌아가셨고, 다음날 나는 손편지까지 한 통 써서 넣고 옷을 항공편으로 보내드렸다. 그 덕에 고객분은 매년 한국에 오시면 우리 매장을 반드시 찾았고, 한 벌이라도 꼭 사가지고 돌아가셨다. 
  
나라를 구해야만 애국은 아니다. 나 역시 작은 매장이지만 글로벌 고객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기 위해 노력했고, 작은 매장에서 나도 나름의 작은 애국을 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그와 동시에 세계 각지에 친구들이 생기니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세계를 보는 나의 눈이 나도 모르는 새 넓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세계화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갖는 것도 중요한 요소라 생각되었다. 그런 면에서 토머스 프리스먼의 <렉서스와 올리브나무>가 적잖은 충격을 안겨 주었다. 렉서스로 상징되는 현대적 세계화 시스템과 올리브나무로 상징되는 오래된 문화, 역사 사이에서 생기는 긴장과 충돌을 묘사한 이 책은, 나에게 글로벌 시장에 대한 눈을 뜨게 해 주었다. 20년 전에 출간된 책이지만 저자가 세계 곳곳에서 보고 듣고 겪은 세계화에 대한 명쾌한 해석이 놀라웠고, 그가 진단하는 문제들을 고민하면서 국경이 사라지는 세계화 속에서 나는 어떻게 고객들을 상대해야 할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책에서 소개하는 재미있는 일화 중 하나는, 미국 남부 지방에 사는 사람이 콜센터에 전화를 하면 보통 그 지역 사투리 교육을 받은 상담원이 응답을 한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건 사람이 자기 지역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다. 고객이 최대한 편하게 쇼핑하도록 돕기 위해 영어, 중국어, 일본어를 가르치는 것도 모자라 사투리까지 가르칠 생각을 하다니 몹시 놀라운 사례였다. 물론 빠른 세계화로 인해 지나치게 많이 연결되거나, 단절되거나, 간섭하는 문제들이 생겨 중국에서 한국으로 전화해 보이스피싱 등의 사기가 벌어지는 사건이 생기기도 하지만, 나에겐 세계화와 문명의 발전 덕분에 외국에 있는 고객들과 SNS 등으로 편하게 소통하고 고객의 니즈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 현재 지구 반대편에 있던 고객이 내일 당장 내가 근무하는 매장에 방문할 수 있다는 가정만 생각해도 정말 놀랍지 않은가. 세계는 결코 좁지도, 동시에 넓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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