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Jul 26. 2018

05. 의사도 포기한 병을 자연 속에서 치유하다.

<우리 앞의 월든>



11월 말이었다. 서늘하고 안개까지 낀 가을날이어서 야외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근무 일정은 빡빡했고 성탄절 연휴를 앞두고 학부모의 밤이라든가 각종 행사가 줄줄이 예정돼 있어 느긋한 저녁 산책이나 아침 조깅을 할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있기 일쑤였다. 더욱이 올라프는 심한 감기에 걸려 기침을 그치지 않았고 “괜찮아지겠지!”란 말만 반복했다. 하지만 괜찮아지지 않았다. 

1월에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조깅 생각은 접은 지 오래였고 온갖 기침약을 다 써보았지만 나을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달리기는 중요한 위안거리였는데 그것을 못하니 일상의 기쁨이나 에너지도 생기지 않았다. 따라서 그런 식으로 계속 방관할 수는 없었다. 결국 의사의 진찰을 받고 항생제를 복용했으며 열심히 증기흡입기도 사용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은 전혀 효과가 없었다.

건강은 날로 악화되었고 갈수록 의사는 속수무책에 난감한 표정이 되어갔다. 마침내 어느 날 그는 솔직히 털어놓았다. “더 이상 치료하지 않겠습니다. 폐렴도 아니고요, 지금까지의 처방이 아무 효과도 없으니 말이에요. 여기까지가 제 지식과 능력의 한계인 것 같습니다.”

의사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반드시 무슨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좌우명을 충실히 따르며, 도움이나 해결책을 찾는 데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환자는 의사에게 치료를 거부당하고 괴로운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계속 전문가를 찾아다니며 새로운 치료를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낙담한 채 포기할 것인가? 여기서 올라프는 완전히 독특한 방법을 선택했다.

그는 그때까지 자신에게 삶의 에너지와 건강, 상쾌한 기분을 제공한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것은 숲에서 달리는 것과 자연 속에서 지내는 것, 즉 자연의 힘이었다. 환자로서 조깅은 논외였지만 적어도 오래된 조깅 코스에서 편안한 속도로 숲속을 산책하는 것은 가능했다. 그래서 올라프는 다년간 몸에 밴 일종의 의식처럼, 아침 숲길 산책을 시작했다.

우리는 요즘은 개를 한 마리 키우기 때문에 날씨가 어떻든 산책을 망설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구간의 거리가 문제가 될 뿐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개도 없었고 꼭 산책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것은 아주 의도적이고 스스로 책임을 걸머지는 치료법이었다. 

올라프는 매일 아침 느린 속도로 비가 오나 해가 뜨나 혹은 춥거나를 가리지 않고 숲길을 한 시간 동안 산책했다. 형편이 되면 나도 따라나섰는데 이렇게 몇 주가 계속되는 동안 우리 두 사람은 변화를 감지했다. 아침 산책은 활기를 불어넣고 긴장을 풀어주었다. 우리는 꽃봉오리가 더 팽팽해지고 새들의 지저귐이 갈수록 또렷해지며 햇볕이 더 따뜻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대지에 봄이 찾아온 것이다. 올라프는 여전히 기침을 했지만 활기를 되찾았다.

때로는 몸을 움츠린 채 집에 돌아오자마자 메모장을 꺼내 산책 중에 떠오른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적고는 했다. 숲에서 돌아올 때는 언제나 집을 나설 때보다 더 생기가 돌았다. 나는 그러한 자기규율과 바람직한 생활리듬에 감탄했다. 

아침에 숲속을 달리는 일과는 빼놓을 수 없는 하루의 필수 일과로 탄탄히 자리 잡았고 다른 일정은 다 여기에 맞추어졌다. 그러던 중, 끈질긴 병은 여름이 되자 올 때처럼 어느샌가 슬며시 사라졌다. 저절로 사라졌다고 말하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00. <나는 대한민국의 여성 과학자입니까?>연재 예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