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머릿속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일이 나를 아프게 할 때>

by 더굿북

환각과 망상이라고 하면 누가 봐도 명백한 증상이 아니냐고 생각할 것이다. 확실히 제삼자가 들으면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의 머릿속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바로 알아챌 수 있다. 그러나 본인은 그것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또 증상에 따라서는 제삼자라도 지식이 없으면 그것이 환각과 망상의 증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는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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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환자는 환청을 듣는다.


환각 증상 중에서 가장 빈도가 높고, 조현병에서 많이 나타나는 증상이다. 다만 환청이라고 해도 단계와 내용이 다양하다. 가장 흔한 증상이 험담과 소문이 들리는 것이다. 웃음소리나 자신을 비웃는 소리 혹은 ‘죽어라.’라든지 ‘죽이겠다.’와 같은 소리가 들리 는 것에서 여러 명이 자신의 소문을 퍼뜨리고 있고 자기가 하는 일에 일일이 한마디씩 하면서 훼방을 놓는다고 한다.

소리가 지시와 명령을 하거나, 자신이 생각한 것이 그대로 소리가 되어 들리는(사고화성) 것도 조현병의 주요 증상이다. 가벼운 증상으로는 누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다든지, 목소리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자신에게 무슨 소리를 하는 것 같다든지, 환풍기나 에어컨 소리 밑으로 어떤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는 등 모호한 것도 있다. 음악이 들리거나 이명처럼 물리적인 소리만 나는 경우도 있다.


약물과 알코올은 없는 벌레를 보이게 한다.


환청에 이어 많은 것이 환시다. 환시는 조현병에서도 보이는 경우가 있지만, 오히려 빈도가 높은 것은 약물이나 알코올에 의한 정신장애다. 알코올로 인한 정신질환에서는 작은 벌레가 보이는 환시가 전형적이다. 각성제나 마약 등의 약물에 의한 것으로는 사람 형체가 보이거나 벽에서 손이 튀어나오고, 적이 습격을 해오는 등 아주 무시무시하고 소름 끼치는 것이 많다.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려고 갑자기 뛰어가다 추락사하거나 차에 치이는 예도 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냄새를 느끼는 예도 있다. 이것은 환후라고 하는데, 가장 많은 것이 간질에서 나타나는 환각이다. 발작적으로 짧게 환후가 나타날 때에는 간질 전문의와 상담하는 것이 좋다.

체감환각이라고 부르는 것도 있다. 이것은 몸을 만지거나 몸에 무언가가 들어오는 것 같은 조현병의 주요 증상이다. 한편 몸 위를 벌레가 기어 다니는 느낌이 드는 것은 의주감(蟻走感)이라고 하며 환각과는 구별된다.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으로는 하지불안 증후군이 있다. 특히 밤이 되면 다리에 불쾌한 느낌이 들어 잠들지 못하는 것으로, 중년층에서 발생 빈도가 높다. 의주감은 신부전이나 간부전, 당뇨병과 같은 내장 질환에서도 나타난다.


피해망상, 나쓰메 소세키도 괴로워했다.


망상 중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이 피해망상인데, 주위 사람이 자신을 의도적으로 괴롭히고 있다고 믿는다. 피해망상은 관계망상을 자주 동반한다. 관계망상은 실제로는 자신과 관계가 없는 사람을 자신과 연결하는 것이다. 웃음소리나 뚱한 표정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고 받아들이거나, 우연히 순찰차가 지나가거나 자기가 신경 쓰고 있는 것이 어쩌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에 나오면 거기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우연히 일어난 일을 우연이 아니라 의도된 것, 계획된 것이라고 믿는다.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마침 옆 칸 문이 닫힌 것도 자신에게 보란 듯이 한 행동인 것처럼 생각한다.

나쓰메 소세키는 영국 유학 시절에 피해망상으로 괴로워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화장실 창틀 위에 동전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하숙 집 주인 자매가 자기를 놀리려고 그렇게 했다는 생각에 불쾌함을 느낀다. 그런 식의 일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신경증이 낫지 않아 결국 귀국하게 됐고, 아내가 마중을 나갔는데 당시에는 언뜻 보기에 병이 심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집에 와 화롯불을 쬐는데 어린 딸이 화로 뚜껑에 동전을 올려놓자, 그것을 보고 소세키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딸을 내리쳤다. 아내가 놀라서 이유를 캐묻자 하숙집 화장실 사건과 겹쳐져 어린 딸이 자신을 우롱하는 것 같아 화가 치밀었다고 설명했다.

딸이 런던 하숙집의 화장실 창문에 놓인 동전 사건을 알 리도 없는데, 전혀 상관없는 일이 본인의 머릿속에서는 연결되고 마는 것이다. 망상이라는 것의 집요함과 관계망상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피해망상은 다양한 형태로 분화한다. 누가 지켜보고 있다고 믿는 감시망상,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고 믿는 추적망상,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는 관찰망상, 독을 탔다고 믿는 피독망상 등이 있다.


과대망상, 자신을 만능이라고 믿는다.


과대망상도 빈도가 높다. 자신의 위대함과 만능을 뒷받침할 공상을 사실이라고 믿는다. 자기가 거물이나 권력자라든지 황실 출신이라고 믿거나, 유명인의 애인이나 배우자라고 믿기도 하고, 거액의 현금과 재산이 있다고 믿기도 한다. 그런 망상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때도 있는가 하면 망상만 할 뿐 어떤 일도 하지 않고 그저 그런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때도 있다. 이런 과대망상은 지속적이며 제거하기가 어렵다. 만성화된 조현병에서 전형적으로 보이는 증상이다.

한편 대범해져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조증 상태에서 전형적으로 보인다. 황당무계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이 실현 가능하다고 믿으며 실행하려고 한다. 사업을 추진하려고 하거나 연예계에 데뷔하려고 하고, 엉뚱한 사람에게 청혼하기도 한다. 무모하게 투자하거나 빚을 내 즉흥적인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해 막대한 손해를 보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조증에 따른 과대망상은 조증 상태일 때만 나타나며, 조증 상태가 끝나면 꿈처럼 사라져버리고 후회만 남는다.

과대망상도 마음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을 때는 해롭지 않다. 그 사람에게 살아가는 힘이 되는 때도 있다. 그러나 행동으로 옮기면 피해가 커지기 시작한다. 자신감이 과한 상태로 행동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면 괜찮지만, 의욕이 넘칠 때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행동이 과하지는 않은지, 현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제삼자에게 확인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과대망상의 반대는 미소망상이다.


과대망상과는 반대로 ‘자신은 무가치한 인간이다(미소망상),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인간이다(죄악망상).’라고 믿는 일도 있다. 돈이 궁한 것도 아닌데 파산할 것이라는 둥 더는 살 수가 없다는 생각(빈곤망상)에 사로잡히는 예도 있다. 이런 증상은 우울 상태가 심해졌을 때 자주 나타난다.

망상이라고 설득하려고 하면 역효과가 나는 경우도 있다. 우울증이라도 이런 망상이 나타나면 자살 위험이 크니 주의해야 한다. 항우울제를 이용한 치료로는 효과가 없고, 비정형 항정신병약이 더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자신과 남의 생각을 구별하지 못한다.


환각, 망상이라고 깨닫기 힘든 증상으로 자아장애가 있다. 자아장애란 자아의 벽이 약해지면서 주위의 영향을 받기 쉬워지고, 자기 생각과 타인 생각의 구별이 모호해짐에 따라 일어나는 증상이다.

타인이 자기 생각을 빼앗아버렸다든가(사고탈취), 자기 생각이 주위에 퍼졌다고 믿거나(사고전파), 거꾸로 상대의 생각이 읽히고 전해진다고 믿는 경우(사고취입)도 있다. 자기 뜻이 아니라, 타인의 뜻에 따라 조종된다고 느끼는 작위체험도 조현병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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