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태스킹>
“여러분의 삶을 위해 시간을 보내라.”는 말은 아주 흔한 속담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말을 조언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최악의 상황에 빠진 것처럼 생각한다.
1982년에 일 중독(Workaholic)을 묘사한 글을 읽어보자. “다음 질문의 대답에 따라 여러분의 일 중독을 파악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업무를 종종 집까지 가져갑니까? 중요한 업무를 하고 있을 때도 전화를 받습니까? 언제 휴식을 취합니까? 휴가를 보내는 것을 주저합니까?”
그 후로 약 36년이 지난 지금, 일에 대한 기대감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생각해보자. 이전에는 위험한 수준의 일 중독이라고 여겨졌던 행동들이 지금은 거의 모든 전문직 종사자들이 주기적으로 하는 보편적인 것이 되었다. 야근은 물론이고 업무 중 온갖 방해를 다 받으며 전자기기로 답변을 보내는 등의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더 전문적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실이 되었다. 이는 절대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항상 대기 중인’ 상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효과적이라고 인지한다. 과학기술은 우리를 하루도 빠짐없이 잠재적인 대기 상태로 만들고 있다. 또한, 사람들에게 그런 상태를 기대하게끔 한다. 그래서 숨 가쁠 정도로 바쁜 상태를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 시간을 절약하는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보다 훨씬 더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1928년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는 2028년도의 삶을 예측하는 「우리 손자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이라는 에세이를 썼다. 그는 2028년까지 유럽과 북미의 생활 수준이 매우 높아질 것이며, 사람들은 하루에 3시간만 일하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 시간도 필요 이상의 시간이라고 보았다. 케인스는 여유가 생기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게 될 중요한 문제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케인스는 지금의 이 상황을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분주한 것일까? 도대체 뭘 하기에 이렇게 바쁜 걸까?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이렇게 말했다. “성실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개미라 해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은 무엇에 성실합니까?”
모든 것을 더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고안된 현대의 기술은 사실 큰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 집과 직장에 있는 멀티미디어 기기들은 끊임없는 요구들로 묶여 있는 우리를 해방하는 대신 시간에 쫓기도록 부추기고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만약 시간을 절약해준다는 전자기기가 정말로 시간을 절약해준다면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고작 몇 년 전보다 더 시간이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시간을 절약해준다는 기기가 없는 곳에 가면 참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그곳에서는 시간이 엄청나게 남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는 여러분이 일하는데 바빠서 시간을 절약해준다는 기기들의 사용료도 낼 시간이 없다. 그렇다면 사실 그렇게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시간 절약에 관한 강박관념의 주요 문제는 매우 간단하다. 결국, 여러분은 시간을 아낄 수 없다는 것이다. 그저 쓰기밖에 못한다. 하지만 시간은 현명하게 쓸 수도 있고 어리석게 낭비할 수도 있다.
시간을 절약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시간을 절약해준다는 이 모든 기기를 다 가지면 그 결말은 과연 무엇이 될까? 일을 열심히 하고, 뭔가를 많이 사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너무 바빠서 즐기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멀티태스킹을 시도하지만, 이는 실수고 계산착오이다. 자칭 멀티태스커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시간이 거의 없다. 여러분에게 숨 쉴 공간을 마련해주는 궁극적 해결책은 싱글태스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