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술래>
아는 사람 중에 롯데에서 영업하는 사람이 있다. 나하고 비슷한 나이 같은데 아이들이 어리다고 해서 대충 나보다 어리다고 짐작만 한다. 스포츠형 머리라기보다는 빡빡이라고 하는 게 맞다. 머리 스타일도 조폭 같고 키는 좀 작아도 사람이 짱짱하다.
물건을 팔 때는 배구 리시브하는 자세로 적극적으로 영업하는데 뭔가 상대방과 말이 맞지 않을 때는 한발 물러서는 버릇이 있다. 작은 키지만 상대방 머리 위를 보듯이 고개를 들고 살짝 뒷걸음치듯이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말한다.
그는 주변 상황을 일단 철저하게 파악하고 시작하는 스타일이다. 상대방이 주문하지 않은 물건을 은근슬쩍 팔아치울 때가 많은데 상대방이 거절하지 않을 정도의 경계선을 아주 잘 안다.
최근에 편의점이 많이 생기면서 거래 중인 슈퍼들이 매출 부진으로 폐업을 많이 하는 모양이다. 영업사원별로 판매목표가 있는데, 상황이 좋지 않을 때면 꼭 이발하는 것 같다. 슈퍼 세 군데가 동시에 폐업했을 때는 아예 파르라니 삭발했다. 이 삭발은 상황이 어려울 때 자신의 전투력을 끌어올리는 혼자만의 의식인 것 같다.
회사에서도 영업사원을 줄이려는 눈치라면서 힘들다고 힘들다고 하면서도 눈빛을 보면 항상 살아있다. 아무리 어려워도 헤쳐 나간다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붙어보자는 눈빛이다.
영업사원에게는 판매와 수금이 전부인데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있던 눈빛이 초점을 잃고 떨리는 걸 보게 된다. 한 번도 같이 술 한잔 먹어본 적 없지만 이런 사람 아닌데 싶다. 말을 걸어도 대답에 힘이 없다. 뭔 일 있냐고 물었더니 담배를 물면서 집에 대출을 5천 받았단다. 전세를 살고 있었는데 집을 산 모양이다. 축하한다고 말해본다.
“무슨 축하요?”
“전세에 5천 보태면 집 산 거 아니에요?”
말도 말란다. 전세금을 5천 올려준 거란다. 어제까지 살던 집이 오늘부터는 5천만 원이 더 있어야 살 수 있단다. 알아볼 만큼 알아본 모양이다. 전세가 없다고. 있어도 요즘 다 그렇더라고.
원래 있던 3천에 추가 5천, 그리고 거래처에서 수금 문제가 생길 때 보충하려고 손에 쥐고 있는 비상금까지 1억 아닌 1억이란다. 집 사면서 장사 밑천 장만하면서 1억이라는 빚을 내 본 적이 있어서 안다. 1억의 의미를. 빚으로 1억이 뭔지.
그동안 세상에서 짱짱하게 맞붙어 싸우면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그 결과물이 1억이라는 빚이 될 때, 눈에 초점이 없어진다. 말에 힘이 없어진다.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삭발이라도 하면서 근성을 발휘하던 사람인데 영업하면서 이미 삭발을 해버렸다.
담배 한 개비 더 피워 문다. 말이 전세지 돌려 말하면 은행에 월세 내는 건데. 가족을 안전지대로 데려가지 못하고 있는 가장에게 내가 해줄 게 커피 한잔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