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을 지배하다>
나는 사실 ‘20년 무패 신화’라는 수식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를 홍보하려는 출판사를 비롯하여 매스컴이 마음대로 붙였을 뿐, 나는 솔직히 그런 문구가 없는 편이 후련하다. 이미 과거의 일인 데다 승리의 전적을 대놓고 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20년간 무패’라는 홍보 문구가 제멋대로 퍼진 탓인지 사람들은 나에 대해 절대적인 자신감이 넘치는 승부사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승부에 임하기 전의 마음은 늘 격렬한 불안과 싸우고 있다. ‘이번에야말로 지지 않을까?’ 하는 숨 막히는 불안이 마음속에서 고개를 치켜들면, 이어서 그것을 부정하듯이 ‘나의 강인함이 있으면 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나타나서 감정을 계속해서 흔들어댔다.
하지만 막상 승부에 들어가면 그런 불안과 갈등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평온한 상태에서 담담하게 패를 움직였다. 물론 거기에는 이기겠다는 오기도 없다. 소리 없는 긴박감 속에서 내가 있던 곳은 아무런 사고도 감정도 솟구치지 않는 불가사의한 장소가 되었다. 이것을 나는 ‘중립 감각’이라고 부른다.
최근 스포츠 선수들이 ‘플로(flow)’라는 말을 사용할 때가 있는데, 중립 감각은 이 플로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플로 단계에 들어가면, 사고나 감정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극도의 집중 상태가 되며 동시에 상당히 안정된 기분이 든다고 한다. 몸에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듯하고 몸과 마음이 완전히 일체화되어 일이 자신의 생각대로 진행되는 느낌이 들며 가슴이 두근거리면서도 몸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등 불가사의한 감각을 체험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야구에서 투수가 머릿속에 그리던 대로 공을 계속 던져서 주자를 한 사람도 내보내지 않는 퍼펙트게임(perfect game)을 달성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바로 완벽한 플로 상태에 들어간 것이라 할 수 있다.
플로 상태나 중립적인 감각은 말로 설명되기는 어렵지만, 감각을 ‘중립 상태’에 두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강인함과 에너지가 내면에서 뿜어져 나온다는 것은 확실하다. 분노, 불안, 기쁨을 비롯한 모든 감정이 사라진 제로의 지점. 분발심이나 전략 등의 모든 사고가 정지된 제로의 지점. 나는 그런 제로의 지점을 발판으로 삼아왔기 운을 끌어와서 계속 이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