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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02. 2016

00. <헤세를 읽는 아침> 연재 예고

<헤세를 읽는 아침>

헤르만 헤세의 이름은 유명하다. 일본에서 헤세는 스위스 자연을 칭송하며 순수하고 서정적인 시를 쓰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헤세의 시와 수채화 일부만 본 사람들의 이야기가 잘못 퍼져서 생긴 이미지다.


미소를 띤 마른 노인 모습의 초상화도 그런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가운데 『수레바퀴 아래서』가 유명한 이유는 교과서에 일부가 실렸기 때문이다. 헤세의 초기 소설만 읽고 그를 풋풋한 청춘 소설을 쓰는 작가로 착각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실제의 헤르만 헤세는 서정적이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았으며 온건한 사람도 아니었다. 시인이었고 세상을 피해 은둔 생활을 하긴 했지만,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하는 그런 얌전한 사람은 또 결코 아니었다.

후기 작품인 『데미안』 『황야의 이리』 『유리알 유희』 등을 읽어보면 명확히 알 수 있듯이 그는 반(反) 권위주의자로 타협을 용납하지 않는 강한 정신과 현실적 자아를 통해 역경을 이겨내는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

헤르만 헤세는 1877년 독일 남부의 작은 마을인 칼브에서 태어났다. 그 무렵 영국은 화려한 빅토리아 왕조 시대를 지나고 있었고 러시아에서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가 출간되었다. 그리고 1962년, 헤세는 출혈성 백혈병을 앓다 여든다섯의 나이로 스위스 남부 몬타뇰라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른바 ‘쿠바 위기’로 미국과 소련이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았던 해였다.

헤세가 어렸을 적, 어머니 마리는 아들에 대해 편지에 이렇게 썼다.

“헤르만은 모든 분야에 재능을 타고났다. 그는 달과 구름을 관찰하고, 긴 시간 오르간에 앉아 즉흥적으로 연주를 한다. 연필이나 펜으로 깜짝 놀랄 만한 그림도 그린다. 마음이 내키면 제대로 된 창법으로 그럴싸하게 노래도 부른다. 그리고 시를 쓰는 재능까지 있다.”

마리가 너그러운 어머니였기에 한 말이 아니다. 헤세는 확실히 많은 재능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훗날 그 재능을 마음껏 발휘했다.

소년 시절의 헤세는 여느 아이들처럼 감수성이 풍부하고 섬세했지만 교사에게는 골칫거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19세기 말의 학교는 심하게 권위주의적이었고, 몰이해와 체벌, 억압이 팽배해 있었다.

당시 교사들은 재능을 믿고 거만하게 굴거나 규율을 따르지 않는 학생을 싫어했다. 그건 교사들의 통찰력 부족과 좁은 도량, 소시민적인 성향 때문이었다.

열두 살의 헤세는 “시인이 되지 못하면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시만 써서는 먹고살기 힘든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가장 적은 학비로 공부할 수 있는 곳은 신학교였다. 헤세는 먼저 라틴어를 공부해 마울브론 신학교에 합격했다.

“내가 경건하게 지냈던 건 열세 살까지였다. 열네 살이 되어 견진성사를 받을 때는 이미 기독교에 상당히 회의적이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사고방식은 완전히 세속적으로 변했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컸지만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경건주의(Pietismus) 신앙 의례에 무언가 부족함과 비굴함, 심지어 저속함마저 느꼈다. 때문에 그 시절의 나는 자주 격하게 반항하곤 했다.”

마울브론 신학교에서 벌어진 일들을 그린 소설이 『수레바퀴 아래서』다. 헤세는 이곳 수도원을 도망쳐 나와 매서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한데서 밤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서 쫓겨났다. 헤세는 그 무렵 일곱 살 연상의 여자에게 첫사랑을 느끼지만 실연을 당하고 만다. 자살 시도를 했지만 미수에 그치고 심각한 신경병을 앓다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1915년에 출간된 시집 『고독한 자의 음악』에 실린 이 시는 헤세가 겪은 뼈저린 실연의 아픔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다.




아름다운 사람

장난감을 받고
그것을 바라보고 얼싸안다 기어이 부서뜨리고는
내일이면 그것을 준 사람조차 잊어버리는 아이처럼
당신은 내가 준 마음을
귀여운 장난감처럼 조그만 손으로 장난할 뿐
고뇌에 떠는 내 마음은 살피지 않네



헤세는 이듬해 김나지움(상급고교)에 입학하지만 불량한 상급생들과 어울리며 방탕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결국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 퇴학을 당한 후 서점에서 점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괴테를 시작으로 국내외의 많은 고전을 독파했다. 열일곱 살에는 시계 공장에 취직했지만 일 년 만에 그만두고 서점의 수습 점원이 되었다. 스무 살부터는 니체의 책을 열심히 읽었다. 또 이때부터 시와 산문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해 스물두 살에는 첫 시집을 냈다. 혼자 여행을 즐기며 서점 일과 시 쓰기를 병행하는 나날을 보내다 스물여섯에 출간한 장편소설 『페터 카멘친트』가 성공하면서 일을 그만두고 글쓰기에만 전념했다. 스물일곱에는 첫 번째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았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스물아홉에 출간됐다. 마흔 살에는 베스트셀러 『데미안』을, 쉰에는 다채롭고 자유로운 필체가 인상적인 『황야의 이리』를 냈고, 파격적인 최후의 장편소설 『유리알 유희』를 출간한 것은 예순여섯이 되던 해였다. 노벨상을 수상한 건 예순아홉 살 때였다.

헤세가 내면 깊은 곳에서 쌓아온 사상을 이 짧은 지면에서 간단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부족하나마 다음과 같이 요점을 정리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사람은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운명이란 자신의 성격, 재능, 삶의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누구나 나 자신으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 자신으로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소중한 것이며,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이기도 하다.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는 것도 가능하다. 이른바 ‘평범한 시민’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뜨뜻미지근하고 안전한 삶을 사는 방법이긴 하나, 그들은 선함도 성스러움도 이해할 수 없다. 예술 작품도 그 가치를 가격과 명성으로만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사상에서 알 수 있듯, 헤르만 헤세는 소극적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여전히 일으켜 세우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 연재 목차    

매일 연재합니다.

00.<헤세를 읽는 아침> 연재 예고
01. 절대 아무도 따르지 마라. 
02. 나의 길을 가라.
03. 자신을 인정하라.
04. 나를 충분히 사랑하라.
05. 고독하라.
06. 고민은 소중한 것
07. 불안의힘
08. 원하는 것을 찾는 법
09. 시간이라는 개념
10. 아이다움을 잃지 않도록
11. 죽음을 뛰어넘어
12.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13. 자유로운 삶에는 각오가 필요하다.
14. 인생을 포기해봐라.
15. 힘든 건 모두 혼자 힘으로
16. 식물처럼 살 수 없을까?
17. 솔직하게 기뻐하라.
18. 한 가지 재능의 다양한 얼굴
19. 숲이 아름다운 이유
20. 사람은 자신을 속이며 살아간다.
21. 어리석은 젊은이들
22. 내 생각만 하면 고독해진다.
23. 무리를 짓는 이유
24. 사랑하는 자가 승리한다. 
25. 사랑에 이유는 없다.
26. 사랑의 대가
27. 오래된 연인들
28. 여행자의 특권
29. 독서를 위한 마음가짐
30. 절대적 종교란 없다.
31. 살인에 대하여
32. 하찮은 일은 웃어념겨라.
33. 행복이란 시간에 지배당하지 않는 것(마지막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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