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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08. 2016

02. 적당하고 평범한 인생에서 벗어나라.

<한계는 내 머릿속에만 있다>

희망하는 직종이 있으면서 이를 위한 실질적인 공부도 하지 않고 그저 시간이 없다는 핑계만 대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목표를 향해 착실하게 나아가고 있는가? 실패를 겪었다면, 그것은 행동으로 실천했기에 겪은 ‘경험’인가, 아니면 미숙함에서 비롯된 ‘잘못’인가?

     
나의 행동이나 사고방식이 정말 내가 희망하는 모습에 어울리는 것인가 늘 꼼꼼하게 확인하라. 혹시 내 얘기가 너무 추상적이라 이해하기 어려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그냥 실천해보라. 이런 말들이 어떤 의미인지 보자마자 깨닫는다면 고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맹숭맹숭한 인생을 목표로 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신도 평범하고 싱거운 인생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갑자기, 이제부터 남은 인생 동안 내 능력 가운데 일부만을 사용해 그 성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누구도 성취감이나 만족감 없이 무의미하게 일하고 싶지 않다. 충실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무것도 얻을 게 없는 직장이나 학교에 다니고 싶지도 않을 터다. 그러나 실제로는 98%에 이르는 사람이 평범한 것을 받아들이고, 못마땅하고 지루한 나날에 대충 만족하며 적당히 일하고, 가족과 그럭저럭 매일을 보낸다. 그런 삶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적당한 나이가 되면 자립을 하고, 마음의 스위치를 끈 채 운명이 가져다주는 미래에 매여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본디 선행되어야 하는 ‘인생 설계’를 철저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가 믿는 범주에서 ‘열심히’ 일하고, 내가 믿는 ‘충성’으로 충성을 다하고, 내가 믿는 ‘약속’의 정의로 책임을 다한다. 그리고 그 같은 책임과 충성, 중노동이 성공적인 커리어나 좋은 미래를 가져오길 바란다. 물론 바람대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운명에 자기를 맡기고 있다. 이런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운명(運命)에 인생을 맡길 뿐이라면 운(運) 이상은 기대할 수 없다. 이미 생명과 함께 부와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제어할 능력과 힘을 갖고 태어났는데도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신의 최대치(Max of God)’라 불리는 일이 때때로 일어난다. 그건 제어할 수 없으며 사전에 알아차릴 수도, 저지할 수도 없는 종류의 일들 말이다. 마치 일본에 밀려들었던 쓰나미처럼 무시무시하고 파괴적이며 예측 불가능하다.

   
그러나 자기 인생에서 제어할 수 없는 그런 일은 불과 2%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98%의 문제는 얼마든지 제어할 수 있다. 어떻게 발전시켜 어떤 결과를 맞는가? 기쁨도 불만도 최대한의 성공도 비극적인 실패도 모두 제어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믿음의 문제가 아니다. 인생에서 획득한 능력이나 요소를 어떻게 인식하고 이용하는가, 그것을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하는가에 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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