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Nov 10. 2016

02. 감정으로 이해하는 뜨거운 공감능력

<내 옆에는 왜 양심 없는 사람들이 많을까>

1848년 9월 13일, 철도 건설현장의 감독관으로 일하던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Gage)는 바위에 구멍을 내고 화약을 넣은 후, 쇠로 된 막대로 화약을 밀어 넣는 작업을 하던 도중 폭발하는 바람에 쇠막대가 왼쪽 눈 밑을 뚫고 두개골을 관통하는 상처를 입었다. 모두가 죽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놀랍게도 그는 병원으로 실려 가는 동안에도 의식은 멀쩡한 채로 대화하면서 갔다. 치료 도중 감염으로 인하여 죽을 고비가 찾아왔지만, 결국 그는 회복되어 집으로 왔고 사람들은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여겼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이 그때부터 겪은 게이지는 더는 이전의 게이지가 아니었다. 평소 성실하고 예의 바른 성격이었던 그가 전과 달리 화를 참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욕을 하거나 비하하는 말을 하는 등 충동적인 성격이 되었다. 사람들과 쉽게 시비가 붙는 등 사회적 억제력을 보여 주지 못하고 비타협적인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는 일상적인 생활에 필요한 기능은 그대로 유지되었으나 공감능력은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가 사망한 후 그를 치료했던 의사는 현명하게도, 나중에 그의 두개골이 두뇌 연구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짐작하고 유가족을 설득해 그의 두개골을 보존하도록 했다. 이후 여러 뇌과학자가 그의 두개골을 컴퓨터로 복원하면서, 그의 뇌에서 다친 부위가 복내측전전두엽이라고 밝혔다. 물론 양쪽 복내측전전두엽이 모두 손상이 되었는지 왼쪽만 손상되었는지 논란이 있었으나, 중요한 건 복내측전전두엽이 사회적 기능과 사람다운 인격에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복내측전전두엽이 건강하다면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으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도 선택할 수 있다. 즉, 미래를 상상한 뒤 감정이나 충동대로 행동하지 않고 더 좋은 결과를 내는 행동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없다면 자신의 미래를 고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에 대해 생각할 때 이 부위가 활성화된 것으로 미루어, 복내측전전두피질은 자기인식에 매우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인식할 수 있는 기초가 된다. 앞서 거울뉴런에 대한 설명에서 다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할 때 마치 자신이 같은 행동을 하는 것처럼 뇌가 반응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인식이 내면화되어 있어야 상대방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듯이, 자기 생각에 대한 인식이 내면화되어 있어야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기인식이 없으면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자기 자신을 갖다놓을 수 있는 능력도 없다. 
     
그러나 복내측전전두엽이 ‘뜨거운’ 공감의 중심이 되는 데는 감정이라는 요소가 필요하다. 아이오와 대학교의 신경과학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a Damasio는 복내측전전두엽이 손상된 환자들의 경우 고통스럽거나 혐오스러운 장면을 보여 줬을 때, 심장박동 증가나 발한과 같은 자율신경계 반응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을 관찰하였다. 마치 감정을 못 느끼는 냉혈한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복내측전전두엽이 뜨거운 공감을 일으키도록 온도를 부여하는 곳은 변연계limbic system, 그중에서도 특히 편도체Amygdala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부위가 공감할 때 감정을 같이 느끼는 과정에 관여하는 것이다. 
     
분명한 건 공감제로들에게는 감정에 대한 이해가 감소되어 있다. 로버트 헤어 박사는 사이코패스와 정상인에게 일련의 문자열을 보여 준 후 단어로 구성되어 있는지 아닌지 판단하게 하면서 뇌파를 측정하는 실험을 했다. 그러자 정상인은 감정적으로 강한 의미를 지닌 단어를 중립적인 단어보다 빨리 알아차렸지만, 사이코패스들은 두 종류의 단어 간에 별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더 놀라운 건 그들의 뇌파 결과였다. 정상인들이 졸리거나 잠을 잘 때 나오는 세타파가 평상시에도 나올 뿐만 아니라 심리적 자극을 받았을 때에도 나온 것이다. 이 때문에 뭔가 실험이 잘못되었다는 오해를 받고 학술지에 논문 게재를 거절당하기도 했다. 사이코패스에게는 단어는 그냥 단어일 뿐이다. ‘사랑’이나 ‘죽음’과 같은 단어가 ‘볼펜’이라는 단어와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물론 전전두엽과 편도체가 바로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 전전두엽은 가장 나중에 형성되었기 때문에, 뇌 깊은 부위로부터 직접적인 연결을 받지 못하고 대상피질cingulate cortex이라는 부위의 중계를 받는다. 대상피질은 전두엽과 변연계의 중간에 위치하면서 이성과 본능의 조절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령 이 부위가 손상된 사람들은 현실에 대한 검증능력이 떨어져 비현실적인 감각이나 생각을 걸러내지 못한다. 그래서 환각이나 비현실적으로 불안한 생각을 떨치지 못해 정신분열병이나 강박장애로 고통받는다.

특히 전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은 공감회로의 한 부분으로서, 고통을 직접 경험하거나 다른 사람의 고통을 관찰할 때에 활성화된다. 어떻게 생각하면 공감을 할 때,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낀다는 것이 자아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자아 경계가 무너지면 자신의 사고와 감정이 지나치게 확대되어 망상과 환각으로 나타나기 쉽다. 대표적인 질병이 정신분열병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정신분열병 환자처럼 자아의 경계가 무너지지 않고 현실에 대한 감각이 유지되는 것은 바로 전대상피질 덕분이다. 
     
사이먼 베런-코언과 동료들은 안구 바로 위에 얇은 뼈 조각을 사이에 두고 위치한 안와전두피질orbito-frontal cortex 역시 공감회로의 중요한 부위임을 확인하였다. 감정과 관련된 단어를 볼 때 역시 활성화되는 것을 관찰하였던 것이다. 이후 다른 연구에서도 바늘로 손가락을 찌르는 장면을 봤을 때 정상인들은 안와전두피질이 활성화되면서 몸을 움찔하거나 인상을 찡그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 부위가 손상된 환자들은 사회적 판단력이 손상되어 남의 감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충동억제가 안 되는 행동을 보였다. 이렇게 뜨거운 공감능력의 기초가 되는 공감회로가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다. 복내측전전두엽과 안와전두피질, 전대상피질과 편도체를 잇는 회로가 뜨거운 공감의 중심회로인 것이다.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독일 튀빙겐 대학교의 뇌과학자인 아메드 카림Ahmed A. Karim의 연구팀은, 경두개자기자극법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TMS을 통해 강한 자기장으로 전전두엽을 자극하면 재미있게도 거짓말 능력이 향상됨을 입증하였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분명하게 밝혀진 건 없지만, 실험대상자들은 자기장 자극을 받은 후 약 1시간정도는 거짓말을 하더라도 양심의 가책을 덜 느끼고 윤리적 압박에서 벗어나는 느낌을 가진다고 하였다. 이런 자기중심성은 마치 공감제로에게서 보이는 특징과 매우 유사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03. 왜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