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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17. 2016

05. 호주에서 망하던 스타벅스의 생존비결

<당신은 유일한 존재입니까>

커피 업계를 대표하는 브랜드인 스타벅스(Starbucks)도 고객섬과 같은 독점 지대를 누리고 있다.

     
첫 번째 독점 지대는 ‘제3의 공간’이라는 콘셉트에서 비롯된다. 제3의 공간이란 집과 일터가 아닌 중간의 휴식처와 같은 공간, 그리고 따뜻한 인간적 교류와 낭만이 있는 곳을 뜻한다. 물론 이전에도 누구나 자기만의 제3의 공간을 누려왔지만 이런 공간을 사업화한 곳은 없었다. 미국인이었던 하워드 슐츠는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 바에서 편안한 기분을 만끽하며 자신이 느낀 편안함이 미국에 없지만 진정 미국인이 필요로 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결국, 그의 바람대로 스타벅스는 ‘집처럼 편안한 제3의 공간’이라는 공간적 독점을 누리게 되었다.
     
두 번째 독점 지대는 ‘맛있는 커피’라는 이미지에 기인한다. 스타벅스가 영업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미국의 커피 시장은 질이 떨어지지만 대량 생산이 가능한 브라질산 로부스타 품종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아라비카 품종이 맛이 뛰어나고 질이 좋지만, 생산량과 가격 변화가 극심해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국 소비자들은 수십 년 동안 별다른 선택권 없이 맛이 떨어지는 로부스타 품종으로 내린 커피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이에 스타벅스는 여러 가지 사업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향과 맛이 월등한 아라비카를 과감하게 도입했다. 이러한 선택은 롤러코스터 같은 아라비카 품종의 가격 변동 때문에 엄청난 경영위기를 초래하기도 했지만, 스타벅스를 맛있는 커피의 대명사로 만들어주었다.
     
이 외에 스타벅스의 성공 요인으로 소비자의 감성에 접근한 마케팅을 들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는 《스타벅스 감성 마케팅》이라는 책이 나올 정도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5,000원이 넘는 고가의 커피 한 잔에 소비자가 지갑을 여는 비결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스타벅스의 성공을 알기 위해서는 더 큰 시야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가맹점들은 물류와 관리의 편이성 때문에 하나의 점포를 세우면 인근 지역으로 출점해나가는 방법을 택한다. 하지만 스타벅스는 이 같은 상식에 완전히 역주행했다. 시애틀에 첫 점포를 낸 뒤 무려 3,200km 이상 떨어진 시카고로 향했다. 여기에 스타벅스 전략의 승부수가 있다. 스타벅스는 영업상의 편리를 포기한 대신 자신들의 커피를 가장 잘 알아줄 잠재적인 독점 고객이 있는 곳을 찾아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대상으로 한 독점 고객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것은 스타벅스의 출생과 관련이 있다.
     
스타벅스의 창업주인 제리 볼드윈, 제프 시글, 고든 보커는 소위 여피족이라 불리는 생활 방식을 갖고 있었다. 제리는 영어교사였고, 제프는 역사교사, 고든 보커는 작가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미각과 후각을 만족하게 해줄 커피 브랜드를 찾아다녔지만 결국 실패했고, 직접 카페를 경영하기로 했다. 이것이 스타벅스의 탄생 줄거리다. 
     
사업을 확장하기로 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과 같은 취향을 가진 이들이 몰려 있는 도시를 대상으로 삼았다. 스타벅스와 취향을 공유할 이들이란 학생과 예술가, 고등교육을 받은 여피족들이었고, 이들이 거주하는 도시는 다른 지역에 비해 자유롭고 낭만적인 색채가 강했다.
   

  
스타벅스가 자신들의 독점 공간을 찾아가는 전략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그들의 출점 위치를 지켜보면 알 수 있다. 시애틀에서 시카고로 점프한 스타벅스는 대륙을 가로질러 서부 LA에 세 번째 매장을 열었다. 마치 아무렇게나 지도에 점을 찍듯 미국 여기저기에 점포를 개설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스타벅스가 이들 도시에 매장을 열자 스타벅스 매장에는 시애틀, 시카고, LA, 보스턴과 같은 도시 분위기가 덧씌워졌다. 스타벅스가 원했던 것은 여피족으로 상징되는 자유롭고 낭만적인 이미지를 독점하는 것이었고, 매장에 수많은 ‘제리, 제프, 고든’을 불러 모음으로써 이 전략은 날개를 달았다.
     
스타벅스가 이처럼 ‘지식․예술인 라이프스타일’을 독점하자, 커피뿐만 아니라 연관 상품으로 영업이 확대되는 보너스를 누렸다. 전통적으로 라이프스타일을 공략하는 것은 제품 확대를 위한 효과적인 도구인데, 스타벅스는 커피와 더불어 텀블러, 머그잔 등의 관련 상품까지 성공적으로 판매하게 되었다. 스타벅스는 지식 ․ 예술인이 즐기는 아이콘이 되었고, 이는 내외부적으로 건전한 영향을 주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일반인에 비해 까다로운 고객을 만족하게 하려는 노력 덕분에 다른 브랜드보다 맛있는 커피를 제공한다는 이미지를 선점하게 되었고, 외부적으로는 대중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지식․예술인을 고객층으로 점유함으로써 일반 고객으로의 확대가 폭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길을 열었다. 이렇듯 스타벅스의 신화는 두 가지 독점 공간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독점 공간은 역설적으로 스타벅스가 처참한 패배를 맛보면서 밖으로 드러났다.
     
2014년, 스타벅스는 야심 차게 진출했던 호주의 84개 매장 가운데 80%에 해당하는 60개 매장의 문을 닫으며 체면을 구겼다. 호주 사람들이 특별히 스타벅스에 반감을 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서 적중했던 독점 방식이 먹히지 않았을 뿐이다. 스타벅스는 학생, 예술가, 작가 등 소위 엘리트 계층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수준 높은 커피를 제공했으니 ‘① 형편없는 커피’, ‘② 안목 높은 소비자층의 존재’라 두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질 때 위력을 발휘하는 구조였던 셈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호주의 커피는 이미 매우 훌륭했다. 플랫화이트(Flat White)라는 호주만의 커피 레시피까지 만들어냈을 정도로 커피 문화의 수준 역시 상당히 높았다. 시드니에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아침, 호텔 밖으로 걸어나가 맛보았던 노천카페의 플랫화이트 커피 맛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그러니 호주에서는 이미 여피족들의 수준 높은 취향이 충족되고 있었다.
     
스타벅스가 독점할 공간이 호주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훌륭한 커피 문화를 누리고 있는 호주 사람들에게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는 분위기 좋은 커피 바’라는 스타벅스의 슬로건은 생뚱맞기까지 한 것이었다. 실제로 멜버른에서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택시기사가 커다란 스타벅스 잔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사람들은 모두 아메리칸”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저렇게 스타벅스 잔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호주 사람일 리 없다는 뜻이었다. 호주 사람들은 스타벅스의 프리미엄을 느끼지 못할뿐더러 스타벅스를, 커피 문화를 제대로 모르는 미국인들이나 찾는 수준 낮은 문화의 하나라고 오히려 낮추어볼 정도였다. 결국, 스타벅스는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서라면 상상할 수 없는 취급을 당하며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커피의 천국이었지만 스타벅스에는 지옥이었던 호주에서 스타벅스는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스타벅스는 천신만고 끝에 ‘새로운 독점 지대’를 찾은 덕분에 기사회생했다. 새 독점 지대의 고객들은 호주인이 아니라 호주로 몰려드는 엄청난 관광객이었다. 정보에 어둡고 낯선 시도를 두려워하는 외국인에게는 호주의 커피보다 이미 눈과 혀에 익은 스타벅스가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실제로 시드니, 멜버른 등의 대도시에는 지역주민들이 거주하는 곳보다 관광지에 스타벅스가 더 많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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