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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18. 2016

06. 초대형 비행선 힌덴부르크 폭발 원인

<당신은 유일한 존재입니까>

오, 신이시여, 이것은 역사상 최대의 참사입니다!

     
비행선의 착륙 장면을 중계하던 아나운서가 울먹이며 겨우 말을 이어갔다. 1937년, 세계 최대의 비행선이었던 독일의 힌덴부르크가 뉴욕으로 향했다. 축구장 3배 크기의 이 비행선은 독일 나치의 자랑이었다. 1937년 5월 6일 오후 7시 21분경, 라운지와 도서관, 산책로까지 갖춘 ‘하늘 위의 호텔’ 힌덴부르크에서의 환상적인 여행을 즐긴 승객들은 뉴욕에서의 멋진 밤을 기대하며 착륙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꼬리에서부터 큰 폭발음이 들리며 비행선이 화염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불과 몇 분이 지나지 않아 거대한 비행선은 완전히 불에 타서 세상에서 가장 큰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이 거대한 비행선은 왜 폭발했을까? 이유는 미국이 제조 특허권을 가지고 있던 헬륨가스의 수출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비행선은 특성상 내부를 채우는 기체의 안정성이 중요하다. 그래서 힌덴부르크 역시 헬륨가스를 쓰는 것으로 설계되어 있었는데 문제는 이 헬륨가스를 미국이 독점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 의회는 전략 자원인 헬륨가스를 독일에 수출할 수 없도록 막았고, 어쩔 수 없이 힌덴부르크는 헬륨 대신 수소를 썼다가 최악의 참사를 당했다. 이후 비행선은 아예 개발 자체가 중단되었다. 독점적 위치의 제품과 기술은 이처럼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인류 역사의 첫 번째 특허는 15세기 이탈리아에서 생겨났다. 이탈리아 예술가이자 건축가인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리버보트(Riverboat)로 1421년에 특허를 받았다. 리버보트는 이탈리아의 특산물인 대리석을 아르노 강을 거슬러 한 번에 수십 톤씩 운반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탈리아에서는 기술 개발자가 특허권을 가짐으로써 노력을 보상받을 수 있었고, 이러한 프로세스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개발에 몰두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했다. 특히 미국은 특허를 통한 개발 이익의 독점이 나라의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고 초기 헌법에 이를 명문화시켰다.
     
“저작자와 발명자에게 그들의 기술과 발명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일정 기간 확보해줌으로써 과학과 유용한 기술의 발달을 촉진한다.”  _ 아메리카 합중국 헌법 제8절 8항
   
미국은 이처럼 발명가의 권리를 헌법에서부터 강하게 보호하는 뜻을 천명함으로써 아메리칸 드림을 제도화시켰다.
     
획기적인 발명이 국가의 부강에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는 사실은 강국들의 사례를 들여다보면 명백해진다. 영국은 증기기관과 조면기(면화추출기)를, 네덜란드는 청어 나이프(한 어부가 개발한 청어 손질 나이프로 네덜란드는 청어 수출 강국이 되었다.)를, 고구려는 독자적인 수레를 개발하고 대량 생산하여 당대의 강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이처럼 새로운 발명은 생산의 비약적인 증대를 가져오고 기존의 판도를 바꾸어버리는 확실한 디딤돌이다. 그래서 각 나라는 새로운 도전과 경쟁을 장려하는 한편 건전한 독점은 보호함으로써 새로운 발명의 결과물을 국가의 자산으로 축적해나갔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전 세계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엄청난 진보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기술 발전은 역설적이게도 부메랑으로 작용해 1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증폭시켰고, 이 전쟁에서 무려 9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독일에서는 중화학공업이 크게 발전하고 있었는데, 1880년대 중반부터 독일의 화학 회사 베이어, 바스프, 훼히스트, 이게파르벤 등이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이들은 자국 기업끼리 연대하여 기술이나 영업기밀, 인력 등이 다른 회사나 타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철저히 봉쇄함으로써 오랫동안 독점적 위치를 구가했다. 
     
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군은 승전 전리품의 하나로 독일 회사들의 특허를 몰수했다. 덕분에 독일의 앞선 기술이 순식간에 승전국으로 이전되었고, 이는 듀폰 같은 회사가 탄생하는 배경이 되었다. 만약 1차 세계대전이 없었다면 승전국들의 기술 진보는 더뎠을 것이다. 독일은 앞선 기술력으로 독점 장벽을 쌓는 데 능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칼 자이스, 슈나이더 같은 독일 회사들은 여전히 광학기 분야에서 독점적 위치를 지키고 있다.
     
역사 속에는 전쟁을 통해 다른 나라가 독점한 기술을 전략적으로 빼앗은 사례가 무수히 많다. 평상시에 군침을 흘리던 기술을 전쟁이라는 아수라장에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에 왜군은 수백 명의 조선 도공을 일본으로 납치해갔다.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부르는 이유다. 일본은 조선의 도자기 제작기술을 모두 흡수해 세계 3대 명품 도자기 중의 하나라고 대내외에 자랑하는 ‘카라츠 도자기’를 만들어냈다.
     
역사의 시계가 근대에 가까워지면서 국가 간의 전쟁은 영토 분쟁에서 기술과 시장 독점을 위한 전쟁으로 성격이 변화했다. 근대 이후 전쟁의 이면에는 독점을 지키느냐, 빼앗기느냐는 이슈가 항상 자리하고 있었다. 근대 열강들은 자신들이 독점한 것에 대해서는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또 독점하지 못한 것은 빼앗기 위해 몰두했다. 특히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만들었던 영국은 유달리 특허에 대한 관념과 제도적 뒷받침이 철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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