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빛과 어둠의 분리>·<해와 달과 땅의 창조>·<물과 땅의 분리>
아치를 지탱하는 다섯 쌍의 리브에 의해 생겨난 천장 중앙의 직사각형 안에는 네 점의 큰 그림과 다섯 점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석조 들보들이 이루는 아치가 창세기의 장면들을 구분한다. 이 작품들은 모두 창세기에서 주제를 구한 것이며, 미켈란젤로의 눈으로 바라본 창세기이다.
미켈란젤로는 하나님이 손을 펴서 호령하자 불같은 오렌지빛 천체와 우윳빛 천체가 나타나는 모습으로 해와 달의 창조를 표현했다.
하나님은 돌아서서 땅을 창조한다.
미켈란젤로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모습을 다양하게 묘사했다.
<아담의 창조>
너무 유명한 <아담의 창조>의 구성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아담과 하나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왼팔에 안긴 성모 마리아와 그녀 오른쪽 옆 아기 그리스도는 아직 태어나기 전의 장면이다. 하나님의 라일락색 망토 뒤에는 천사들이 있다. 하나님 뒤로 펼쳐진 외투의 횡단면은 인간의 두뇌 모양으로 미켈란젤로가 당시 과학의 발견을 예술적 상상 속에 삽입시켜 두뇌 모양을 가지고 하나님이 누스nous(이성)임을 상기시켜준다.
<아담의 창조>, 280×570cm _하나님은 오로지 말씀으로 창조한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화가가 예술적 이미지를 창조하듯 하나님이 아담을 자신의 예술적 상상력으로 창조한 것으로 묘사했다. 그의 그림 속의 하나님은 누워 있는 아담 앞에 서 있지 않고 날아서 그에게로 다가간다. 바람에 펄럭이는 외투자락으로 천사들을 감싸안은 모습이다. 하나님과 아담의 손가락 끝은 몇 cm 떨어진 상태에서 닿지 않고 있는데 이는 시간의 위대한 정지이다.
창조는 접촉을 통해 이루어진다. 창조주는 축복을 가득 담은 손가락 끝으로 아담의 늘어진 손을 건드린다. 하나님과 아담의 이 몸짓은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 전체의 초점이 되는 부분이자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긴장시키는 장면이다. 언덕에 기대 누운 아담의 모습은 미켈란젤로의 창작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것이다. 그는 기독교인들을 위해 하나님의 이미지를 자신의 예술적 상상력으로 창조했다.
<아담과 이브의 유혹과 추방>
아담과 이브는 원래 한 몸에서 창조되었다.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은 진흙으로 아담을 빚었고 코에 입김을 불어 넣어 숨을 쉬는 사람으로 만들고서 에덴동산으로 데려가 살게 했다. 하나님은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의 일을 거들 짝을 만들어주리라” 했다.
성서에서는 들짐승 가운데 가장 간교한 동물로 뱀을 꼽는다. 하루는 뱀이 이브에게 “하나님이 너희더러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하나도 먹지 말라고 하셨다는데 그것이 정말이냐?”고 묻자 이브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들은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먹되,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 열매만은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셨다”고 응답했다. 그러자 뱀이 이브를 꾀었다. “그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될 것이다. 이에 하나님이 그렇게 말하신 것이다.” 결국 이브는 뱀의 꾀임에 빠져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 먹고 아담에게도 주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지면서 자기들이 벗은 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창세기 3:7) 아담과 이브는 죄를 통해 서로에게 성적인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추방하면서 그 두 사람에게 원죄에 대한 벌을 내렸다. 이브에게는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하고 벌했으며 아담에게도 벌을 내렸다.
낙원에서 추방된 아담과 이브는 이제 일시적인 삶을 살게 되는 운명에 처했다. 미켈란젤로는 두 사람이 죽음이 기다리는 삶을 향하여 걸어가는 것을 묘사했다. 과거 화가들은 아담과 이브를 원죄를 받고 서 있는 모습으로만 묘사했지만 미켈란젤로는 화면 중앙에 나무를 그리고 새로운 구성을 시도했다. 이브는 로마인처럼 게으른 모습으로 나무에 등을 기대고 누워 있고, 아담은 이브를 넘어 나뭇가지 쪽으로 손을 뻗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동작은 잘 이해되지 않고 팔다리의 부위도 명료하게 묘사되어 있지 않다.
<아담과 이브의 유혹과 추방>, 280×570cm _전통적인 방법으로 두 번에 걸쳐 묘사된 아담과 이브는 낙원에서 추방되기 전과 후의 모습이다. 왼쪽은 죄를 짓기 전이고 오른쪽은 죄를 지은 후 죽어야 하는 운명을 갖게 된 모습이다. 중앙에는 낙원쪽으로 기울어진 선악과 나무가 있고 뱀이 코일처럼 감고 있다. 다채롭게 변하는 듯한 피부의 뱀이 이브를 유혹하는 동안 아담은 금지된 선악과를 따려고 손을 뻗는다. 결국 아담은 이브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의 유혹에 빠져 이브와 함께 낙원에서 추방되는 운명을 맞이한다. 미켈란젤로는 낙원으로부터의 추방이 이브의 유혹 때문이라는 여성차별주의자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고 아담 역시 유혹을 받은 당사자임을 이 그림을 통해 말하려고 했다. 여기에서는 원죄와 유혹의 본질에 관해 사유하기를 촉구하는 듯하다.
<대홍수>·<노아의 제사>·<술 취한 노아>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에서 노아에 관한 세 점의 그림을 찾기란 쉽지 않다. 고개를 젖히고 올려다보아야 하기 때문에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목이 뻣뻣해지고 통증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너무 많은 그림들이 펼쳐져 있기 때문에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다 보면 어디가 어떤 그림인지 쉽게 분별 되지 않는다.
<최후의 심판>을 왼쪽 가장자리에 놓고 올려다볼 경우 왼쪽으로는 <대홍수>와 <노아의 제사>가 있고 오른쪽 끝이 <술 취한 노아>이다.
아담의 10대손인 노아는 당대의 의인이며 하나님과 동행했던 것으로 구약성서에는 적혀 있다. 구약성서 첫 장인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에 관한 이야기는 가장 유명하다.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 차자 하나님은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땅 위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모조리 없애버리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유일한 하나님의 사람인 노아만은 마음에 들었기에 그가 600살 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로 방주를 짓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창세기 6:13~4)
노아가 분부대로 하자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라.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취하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취하여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 하라.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창세기 7:1~4)
<대홍수>에는 60명 이상의 사람들이 재난을 피하고 있고 대부분 벌거벗은 모습이며 물에 빠진 아들을 건져낸 아버지의 모습도 보인다. 침수되지 않은 땅이라고는 화면 하단 왼쪽이 전부이다. 이 푸른 피난처에 비참한 인간들이 몸을 피하지만 곧 물이 불어 잠길 것이다. 오른쪽 작은 암석 위에도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 있지만 곧 물에 잠길 운명에 처해 있다. 이미 결정된 운명임에도 불구하고 한 젊은이가 나무 위로 오르려고 한다. 잎이 다 떨어진 나무 뒤로는 노아의 방주가 보인다.오직 그곳만이 안전하다. 방주 위 창문에서 희망의 상징인 흰 비둘기를 본 노아가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고 밝아오는 하늘을 향해 감사의 몸짓를 취하고 있다. 노아의 가족은 무사했으며,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야벳은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
노아에 관한 마지막 작품인 <술 취한 노아>는 포도원을 가꾸는 첫 농군이 된 노아와 포도주에 관련된 에피소드를 주제로 하고 있다. 노아는 대홍수 350년 후인 950살에 세상을 떠났다.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창세기 9: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