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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과 카카오톡 선물하기

by 황변

스무살 이후로 항상 생일은 기다려지는 어떤 것이었다.

학부 시절 내 주위에는 항상 친구들로 가득했기 때문에, 생일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축하를 건네고, 선물을 받느라 눈코뜰 새 없었다. 그 날만큼은 내가 주인공이었다.

로스쿨 때도 학부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크게 다르지 않았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친구들과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언제부터인지 모를 '카카오톡 선물하기' 유행을 통해서 나의 사회적 관계를 1년에 한 번씩 실감할 수 있었다.

괜시리 도착한 선물들을 모아서 한 번에 사진도 찍고,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려서 나 아직 죽지 않았음과 나의 인맥을 자랑하기도 했다.


생일에 받는 선물은 내게는 꽤 큰 의미가 있었다.

인간관계를 매우 중시하는 나였기에, 1년에 한 번 연락할까 말까 하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선물들은 '그들이 나를 잊지 않았음'을 1년에 한 번 상기하는 값진 기회였기 때문이다.

한편, '오는 정이 있어야 가는 정이 있기' 때문에, 나 역시 카카오톡 친구 창에 뜨는 친구들의 생일을 놓칠세라 부단히 선물을 1년 내내 챙겼다. 물론 내가 선물을 줬는데 얘가 내 생일에 선물을 주었는지 안 주었는지를 체크한 것은 아니지만, 악착같이 1년 내내 친구들의 생일을 챙긴 내 심보에 내 생일에 선물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리라.

어쨌든 간에, 한번이라도 더 연락을 주고받으며 샘솟는 기쁨은 내 일상에 큰 부분이었음 역시 거짓이 아니니까.

아이러니한 건, 정말 친한 친구들끼리는 귀찮아서 선물을 주고받지 않고 적당히 친하거나, 업무상 알게 된 사람들과 열심히 선물을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2024년 생일 이후로부터는 많은 것이 변했던 것 같다.

아마 그 변화는 결혼일 것이다.

결혼을 하고 나서, 나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중, 1년 내내 나는 친구들의 생일에 굳이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켜서 그들에게 선물을 챙겨 주지 않았던 것이다.

어차피 얼굴 보기 힘든 친구들이라고 생각했을까, 여자인 친구들은 더더욱 그래서였을까.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냥 나는 악착같이 챙기던 선물을 거의 챙기지 않았다.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

매년 거의 100개 가까운 '카카오톡 선물하기' 선물을 받아 처치 곤란이었던 내가 올 생일에 받은 선물은 채 10개도 되지 않았다.

가히 충격적인 결과.

내가 지금까지 받아왔던 그 숱한 선물들은 내가 베풀었던 선물의 당연한 반작용이었을 뿐이었을까.

마침 일이 너무 밀려들어온 날이라서, 신경쓸 틈 없이 지나갔지만 헛헛했던 것은 당연했다.


헛헛한 생일이 지나고,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아 그거, 카카오톡 친구 창 업데이트 하고 선물하기 매출이 엄청 줄었대 아마 그래서 그랬을 거야." 라고 위로인지 그냥 하는 말인지 툭 던지는 아내.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친구 창을 들여다보지 않은 지 한참 된 것 같기도 하다.

아마, 그래서 그랬을 거다.

사실 아니어도, 괜찮다.

이제 나는 명실상부한 어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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