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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변 Oct 22. 2020

무지개 소년과 양자역학

<김상욱의 양자 공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라는 격언을 좋아한다.

그만큼 나는 이 세계의 불확실성을 믿는다. 아니 '불확실성'을 '믿는다'고 말하는 건 모순적이다. 불확실성에 완전히 침잠하는 순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순리대로 흘러가 뒤통수를 빡, '후리는' 것이 또 세상사 이치이기 때문이다.


삶에서 한 발 떨어져서, 불꽃 튀는 불확실성을 관찰하고 그것이 나를 어디로 데려왔는지 살핀 다음, 대안을 마련한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이렇게 객관화해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 주체를 객체화하는 것이 메타-적 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친애하는 김형이 나를 두고 메타적으로 말한다 고 발언해 알게 되었다. 썩 맘에 들었다.



이와 반대되는 인생관은, 뚜렷하고 확실한 목표를 설정한 다음에 그 목표에 맞추어서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이다. 예쁜 원피스를 산 다음, 다이어트를 시작하는 사람들. 메타적이지 않고, 어떤 회의나 잡념 없이 목표를 향해 살아가는 사람들. 나는 전혀 그런 타입이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내 시각에서 그런 태도는 궁극적인 행복의 상태에 이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런 도발적인 주장에 대해서는 꼭지를 바꿔 다시 쓰기로 하고, 이제 그만 양자역학 이야기로 돌아가야 한다.





정치학과 법학을 공부했지만, '문송하게도' 나는 물리학을 무지개 소년처럼 선망한다. 그래서 읽기 쉬운 물리학 관련 서적이 있으면 망설임 없이 집어 든다. 이 책 역시 그렇게 만났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굉장히 좋았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양자역학의 역사, 기본적인 관념들은 내가 몇 번이고 다른 책에서 접한 내용들이다. 그런데 이 책만큼 친절하고 재미있게 설명한 책은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야 비로소, 아 이게 그 말이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던 개념들이 많았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내가 양자역학에서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개념이다. 너무 작은 입자는 측정하려고 시도하는 순간 그 위치와 운동량이 그 측정 시도에 영향을 받아서,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것. 그래서 그 물리적 존재 여부는 확률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는 것. 내가 어째서 이 개념을 좋아할까? 감이 오신다면 당신은 눈치가 빠른 사람. 이 불확정성 원리는 내가 생각하는 삶 그 자체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세계를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이 문장은, 삼라만상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입자의 내부를 정의하는 원리와 일맥상통하고 있는 것이다. 양자역학과 인생. 전자와 우주. 이 완벽하고 아름다운 수미상관 관계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작은 전율을 느낀다. 잡으려 하면 할수록 잡히지 않는. 그것이 바로 진리 아닐까.



(전자는 매우 작기 때문에) 전자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면 (그만큼) 짧은 파장의 빛을 사용해야 한다. ... 문제는 파장이 짧아지면 빛의 운동량이 커진다는 사실이다. 빛의 운동량이 커지면 빛과 충돌하는 전자가 받는 충격도 커진다. 따라서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알기는 불가능하다.  - 김상욱, 김상욱의 양자공부
비가 개었다. 동시에 저 편 들판 건너 숲 뒤에는 둥그렇게 무지개가 뻗쳤다. 오묘하신 하느님의 재주를 자랑하 듯이, 칠색의 영롱한 무지개가 커다랗게 숲 이 편 끝에서 저 편 끝으로 걸치었다. 소년은 마루에 걸터앉아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나절을 황홀히 그 무지개를 바라보고 있던 소년은 마음 속으로 커다란 결심을 하였다.  '저 무지개를 가져다가 뜰 안에 갖다 놓으면 얼마나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인가?' - 김동인,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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