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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변 Nov 16. 2020

뜻밖의 우울

군법무관 이야기 (4)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게 갑자기 어렵게 느껴져 한 달 정도를 쉬었다. 어떻게든 써 보려고 창을 띄워 놓았다가도 왠지 모를 중압감에 무서워 창을 닫은 지도 몇 번 있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글이라는 것을 잊어 보려고 애쓰는 나를 발견하고, 그럴 때마다 내가 너무 한심스러워 자존감은 밑바닥을 치게 된다. 요 한 달 정도 간, 옮긴 사무실에서의 정신없던 적응기간이 끝나 살짝 매너리즘에 빠졌었는데, 역시 글은 내 정신 상태를 가장 잘 반영한다. 그러나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내가 지금 수렁에 갇혀 있음을 직시하는 것이다. 진흙을 뒤집어쓰고 눈이 가려진 채로 괴로워하다가, 충분히 괴로워하고 나서,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을 정교하게 묘사하다 보면, 수렁 밖으로 몸을 반쯤 빼내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는 어렵지 않다. 그러려면 내가 우울해진 이유-매너리즘-부터 써야 할 것이다.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곳은 소총을 든 초병이 지키는 여느 군부대가 아니라, 서울 한복판에 있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이다. 군복무 중 억울하게 사망한 국군 장병들의 사망에 관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특별법으로 설립되었다. 나는 공군 소속 법무관으로서, 이 위원회에 파견되어서 군 관련 법령과 판례를 해석하고, 조사결과보고서와 결정문을 검토한다. 이런 업무의 특성은, 내가 맡은 사건들에 대해 의견서만 쓰면 되고, 다른 법무관이나 직원들과 의견을 나눌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자연히 좁은 파티션 안에서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전에 있던 공군본부에서보다 업무량도 확연히 적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내 행복지수는 '떡상'해야 사리에 맞다. 객관적으로 업무 환경이 향상되었으니까. 그런데 실상 그렇지가 않다. 앞뒤 안 맞고 무례한 민원인들의 전화가, 항상 눈치를 보던 장기 법무관님들이, 냄새나고 불편한 전투화가, 그게 싫어 슬리퍼 신은 걸 들킬까봐 눈치 보며 지나가던 복도가 그립다. 이런 이야기들을 동기 법무관들에게 하면 정말 몰매 맞기 딱 좋은 소리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섵불리 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나를 가장 괴롭히고 있는 고민에 대해서 이야기할 곳이 없었다. 나 자신도 배부른 고민이라는 걸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다 보니, 이 고민을 직시하는 것을 꺼려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이 흘렀다. 사족으로, 혹시나 법무관님들이 이 글을 보신다면, 너무 노여워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다. 는 말을 붙여야 내 마음이 좀 편할 것 같다. 







그래서 조금 후련한 마음으로, 내가 다시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찬찬히 생각해 본다. 

많이 읽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많이 웃어야겠다. 술도 많이 마셔야지. 

춥다고 움츠려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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